달리기 업그레이드.

내 몸은 소중 하니까.

by 밀잠자리


운동깨나 해봤다는 사람들은 입을 모아 말한다. “달리기가 최고야. 가성비 끝판왕이지. 신발만 신고 나가면 되잖아?” 맞는 말이다. 이론적으로는 그렇다. 하지만 막상 달리기에 진심이 되려는 순간, 우리는 깨닫게 된다. 그 신발만이라는 전제 조건이 얼마나 거대한 빙산의 일각이었는지를.


새내기 러너들은 보통 집에 굴러다니는 면티에 헐렁한 트레이닝복, 그리고 출퇴근길에 신던 운동화로 시작한다. 아주 바람직한 출발이다. 하지만 작심삼일의 고비를 넘기고 좀 더 자주, 멀리 달릴 각오가 섰다면, 이제 업그레이드가 필요하다. 이는 단순히 장비빨을 세우기 위함이 아니다. 물집, 쓸림 같은 자잘한 부상부터 무릎, 햄스트링 같은 큰 고장으로부터 내 몸을 보호하기 위한, 일종의 생존 키트 업그레이드다.


함께 달리는 친구들이 생기면서 가장 많이 오가는 주제는 단연 운동화다. “어떤 게 좋아요?” 이 질문은 마치 “점심 메뉴 뭐 먹을까요?”만큼이나 난해하면서도 중요하다. 사람마다 발 모양, 쿠션 취향, 심지어 발볼의 너비까지 천차만별이기 때문이다. 게다가 의외로 많은 러너들이 기능보다 디자인에 영혼을 판다. (나도 그중 하나임을 부정하지 않겠다.)


그래서 매장 방문은 필수다. 맘에 드는 녀석을 골라 신고, 눈을 감고 발끝의 감각을 곤두세워보자. 뛸때 거슬리는 부분은 없는지 셜록 홈즈처럼 수사해야 한다. 요즘 어떤 매장들은 3D 스캐너로 발 사이즈와 모양까지 분석해 주니, 과학의 힘을 빌리는 것도 좋다. 매장 가격이 부담스럽다면? 사이즈만 확인하고 온라인 주문이라는 합리적인 우회로를 선택해도 된다. 꿀팁 하나 더. 인생 신발을 찾았다면, 쟁여두기를 시전하자. 내 발에 꼭 맞는 그 모델이 내년에 단종되거나 이상하게 업그레이드(?)되어 배신할지도 모르니까.


운동화가 해결되었다면 다음은 복장이다. 여기서 제발 피해야 할 것이 있다. 바로 면소재. 땀 흡수는 잘 되지만 배출을 안 하는 이기적인 소재다. 땀에 젖어 축축해진 면티는 피부를 사포처럼 긁어대며 쓰라린 화상을 남긴다. 그러니 나일론, 폴리에스테르 같은 합성섬유를 입자. 각회사 마다 다른 신소재에 여러 이름을 붙혔다. 달리기 전용 티셔츠라면 무엇이라도 괜찮을 것 같다. 다만, 좀 더 쾌적한 런을 위해, 통기성 좋은 싱글렛(민소매)을 추천한다. 그리고 초보들의 흔한 실수, 너무 따뜻하게 입는 것. 2km만 뛰어보라. 우리 몸은 금세 용광로가 된다. 집 밖을 나설 때 “어우, 좀 쌀쌀한데?” 싶어야 뛰기 시작하면 딱 맞다.


자, 이제 다음은 러닝 팬츠. 여기서 호불호가 갈린다. 나는 과감하게 타이즈를 추천한다. 남자가 타이즈라니, 민망하다고? 나도 처음엔 그랬다. 쫄쫄이 타이즈를 입고 거울 앞에 섰을 때의 그 적나라함이란. 마치 발레리노가 된 것 같기도 하고, 어딘가 벌거벗은 기분이랄까. 하지만 타이즈에 달린 포켓의 위력을 맛보면 돌아올 수 없다. 요즘 러너들은 스톱워치 대신 스마트폰으로 기록하고 인증샷을 찍는다. 거기에 차 키, 에너지젤까지 챙기려면 주머니가 필수다. 일반 헐렁한 바지에 이걸 넣고 뛰면? 덜렁거리는 차 키가 허벅지를 강타하고, 스마트폰이 춤을 추며 엉덩이를 때린다. 러닝 벨트도 뛰어보면 헐거워져서 거슬린다. 타이즈는 모든 걸 꽉 잡아준다. “내 몸매가 좀 드러나면 어때? 나는 달리러 나왔지, 패션쇼하러 온 게 아닌데!” 이 뻔뻔함이 장착되는 순간, 타이즈는 세상에서 가장 편안한 전투복이 된다. 정 민망하면 티셔츠를 한 사이즈 크게 입거나 (가려줌), 반바지가 덧대어진 디자인을 고르면 된다.


다음은 선글라스. 아침 햇살은 눈부시고 저녁노을은 따갑다. 자외선 차단은 기본이고, 눈을 찡그리지 않게 해 주니 눈가 주름 방지라는 미용 효과까지 덤으로 얻는다. 땀이 눈으로 들어가는 걸 막아주는 기능성 제품도 많다. 다만 귀에 닿는 부분이 편한지 꼭 확인하자. 모자 쓰고, 이어폰 끼고, 선글라스까지 끼면 귀 뒤쪽은 이미 만원 버스다. 역시 선글라스는 기능도 기능이지만, 간지가 생명이다.


이어폰은 러닝의 BGM 담당이다. 지루한 조깅을 뮤직비디오로 만들어준다. 단, 노이즈 캔슬링은 절대 금물! 세상 소리를 차단하면 뒤에서 오는 자전거도, 빵빵거리는 차 소리도 못 듣는다. 게다가 땀 찬 귓구멍은 외이도염의 지름길이다. 그래서 나는 골전도 이어폰을 강력 추천한다. 귀를 열어두니 안전하고 땀도 안 찬다. 음악과 세상의 소리가 적절히 믹싱 되는 묘미가 있다.


그 외에도 모자, 헤어밴드, 스포츠 브라, 러닝 앱, 러닝 벨트, 니플 패치(남자분들, 피눈물 흘리기 싫으면 꼭 붙이자!), 바세린 등등 챙길 건 끝이 없다. 장거리 러닝을 위한 물과 에너지젤 같은 연료도 필수다.


하지만, 이 모든 장비보다 중요한 최종 병기가 하나 있다. 바로 당신을 문밖으로 나가게 만드는 원동력. 이건 백화점에서도 살 수 없다. “누가 하라고 해서” 시작한 운동은 “누가 말려서(관절 나간다더라 등)” 그만두기 쉽다. 결국 내가 하고 싶어서, 내가 해낼 수 있을 것 같아서라는 내부의 불꽃이 있어야 한다.


그리고 그 불꽃을 꺼뜨리지 않게 해 주는 건, 옆에서 함께 달려주는 사람들이다. 혼자 달성한 기록은 고독하지만, 함께 나눈 성취는 축제가 된다. 내가 완주했을 때 진심으로 기뻐해 주는 가족, 친구, 동료가 있다면 그 힘은 절대적이다.


오늘도 나는 민망한(?) 타이즈를 입고, 폼 나는 선글라스를 끼고, 골전도 이어폰으로 흥을 돋우며 나간다. 그리고 이 즐거움을 함께 나누는 우리 팀원들에게 감사의 하이파이브를 보낸다. 장비는 거들뿐, 결국 달리는 건 우리들의 뜨거운 심장이니까.


IMG_7500.JPG


토요일 연재
이전 10화자전거 타기 처럼 달리기 하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