애착 티셔츠

달리기 그리고 사람.

by 밀잠자리


달리러 나갈 채비를 할 때면 무의식적으로 손이 가는 티셔츠가 있다. 옷장을 열면 나이키니 아디다스니, 혹은 큰 맘 먹고 지른 고가의 기능성 의류들이 있고, 개중에는 유명 마라톤 대회 완주 기념 티셔츠도 있고, 꽤 비싼 값을 주고 산 한정판도 있다. 하지만 내 손은 묘하게도 구석에 개어 둔, 동네의 작은 대회에서 받은 그 녀석에게로 향한다.


파랑 바탕에 노랑으로 대회로고가 프린트된, 아주 평범하게, 아니 어찌 보면 좀 촌스럽게 디자인된 녀석이다. 브랜드 로고 하나 박혀 있지 않고, 등판에는 대회의 스폰서였던 지역 맥주집 로고가 박혀 있는 그런 옷이다. 그런데 이상하다. 이 옷만 입으면 몸이 가볍다. 목둘레가 조이지도 않고, 겨드랑이 부분이 쓸리지도 않는다. 무엇보다 파랑과 노랑의 그 원색적인 조합이 캘리포니아 산호세의 쨍한 하늘과 내리꽂는 햇살을 기막히게 대변해 주는 것 같아 기분이 좋아진다. 그리고 거울을 보면 이옷안의 내모습이 그냥 ‘나’ 같다.


이런 옷을 나는 애착 티셔츠라고 부른다. 특별한 의미가 부여된 옷은 아니지만, 그냥 내 몸의 일부처럼 편안한 옷. 매해, 매 시즌마다 러너들에게는 그런 아이템이 하나씩은 생긴다. 문제는 이렇게 자주 입다 보니 옷이 낡아간다는 것이다. 면과 폴리에스터가 섞인 이 얇은 천 조각이 세월의 풍파를 견디지 못하고 늘어나거나 보풀이 일어날까 봐 조바심이 난다. 입고는 싶지만 닳는 건 싫은, 아주 모순적인 감정이 든다. 그래서 이 녀석을 빨래통에 넣을 때는 유난을 떤다. 다른 운동복들은 그냥 세탁기에 쑤셔 넣어도, 이 녀석만큼은 꼭 ‘세탁용 망’에 고이 모셔 넣는다. 내 나름대로 이 옷에 표하는 최고의 예우이자, 수명 연장을 위한 처절한 몸부림이다.


비단 티셔츠뿐만이 아니다. 서랍을 열면 아직 포장도 뜯지 않은 새 양말들이 수두룩하다. 발바닥에 미끄럼 방지 실리콘이 붙어 있고, 아치를 잡아준다는 최첨단 기능성 양말들이다. 하지만 내가 찾는 건 뒤꿈치가 살짝 얇아지기 시작한, 몇 번을 빨았는지 기억도 안 나는 그 검은색 양말이다. 새 양말 특유의 뻣뻣함이 없고, 내 발가락 모양대로 이미 자리가 잡혀 있는 그 녀석. 신발 끈을 꽉 묶어도 발등을 압박하지 않는 그 적절한 두께감. 그리고 발가랑 구멍이 나기 직전의 아슬아슬함이 있지만, 그 양말을 신어야만 비로소 달릴 준비가 끝난 것 같은 기분이 든다. 모자도 마찬가지다. 챙이 반듯하고 로고가 선명한 새 모자들은 어딘가 어색하다. 바람이 조금만 불어도 날아갈까 신경 쓰이고, 땀이 차면 이마가 간지럽다. 반면 햇볕에 바래서 색이 좀 빠지고, 챙도 구부러진 내 오래된 모자는 머리에 얹는 순간 진공 포장된 것처럼 착 달라붙는다. 땀을 닦으려 벗었다가 다시 써도 거울을 볼 필요가 없다. 그냥 내 두상 그 자체가 되어버린 물건이다.


달리기를 하면서 문득, 사람을 만나는 일도 이와 별반 다르지 않다는 생각이 든다. 우리는 살면서 수많은 사람을 만난다. 그중에는 명품 티셔츠 같은 사람들이 있다. 사회적으로 성공했거나, 배울 점이 많거나, 혹은 아주 매력적이어서 누구나 친해지고 싶어 하는 사람들이다. 그런 사람들과 이야기를 나누는 건 즐거운 일이고, 때로는 나를 돋보이게 해주기도 한다. 하지만 만남이 끝나고 집에 돌아오면 어딘가 모르게 피곤함이 몰려온다. 마치 사이즈가 맞지 않는 옷을 억지로 입고 있었던 것처럼, 혹은 너무 비싼 옷이라 뭐 하나 묻을까 봐 긴장했던 것처럼 말이다.


반면, 나의 파랑 티셔츠 같은 사람이 있다. 스펙이 화려하지도 않고, 언변이 뛰어나서 좌중을 휘어잡는 타입도 아니다. 내가 아주 좋아하는 취향을 가진 것도 아니고, 공통점이 엄청나게 많은 것도 아니다. 그런데 이상하게 그 사람 앞에서는 내가 무장 해제된다. 특별한 주제 없이 날씨 이야기나 점심 메뉴 이야기를 하는데도 대화가 뚝뚝 끊기지 않고 이어진다. 침묵이 흘러도 어색하지 않다. 내가 굳이 멋진 사람처럼 보이려고 애쓸 필요도 없고, 내 약점을 감추려고 오버페이스를 할 필요도 없다. 그냥 있는 그대로의 나를 보여줘도 오해가 생기지 않는 관계. 사이즈를 잴 필요도 없이 툭 걸치면 내 몸에 감기는 그런 사람 말이다.


우리는 종종 좋아하는 사람과 편한 사람을 혼동한다. 내가 머리로 좋아하는 사람은 내가 되고 싶은 이상향을 투영한 대상일 때가 많다. 하지만 몸과 마음이 반응하는 편한 사람은 내 결핍과 모나고 찌그러진 부분까지도 톱니바퀴처럼 맞물려 들어가는 상대다. 의외로 우리가 속마음을 털어놓고, 인생의 고민을 이야기하게 되는 상대는 전자보다는 후자인 경우가 많다.


달리기 장비나 사람이나, 결국 중요한 건 스펙이 아니라 핏(Fit)이다. 기능성 원단이 아무리 좋아도 내 겨드랑이를 찌르면 소용없고, 아무리 대단한 사람이라도 내 자존감을 갉아먹거나 나를 긴장시키면 오래 가기 힘들다. 겉보기에 화려하지 않아도, 남들이 보기엔 촌스러운 파랑과 노랑의 조합일지라도, 내 마음이 편하면 그게 명품이다.


그렇기에 낡아가는 것들이 아쉽고 애틋하다. 세탁기 안에서 빙글빙글 돌아가는 저 티셔츠의 목이 조금 더 늘어나지 않기를, 내 발에 딱 맞는 저 양말의 뒤꿈치가 구멍 나지 않기를 바란다. 그리고 무엇보다, 오랜만에 만나도 어제 만난 것처럼 편안하게 소주 한 잔, 커피 한 잔 기울일 수 있는 내 주변의 파랑 티셔츠 같은 친구들이 늙지 않고 오래오래 곁에 있어 주기를 바란다.


새것은 돈 주고 살 수 있지만, 내 몸에 맞게 길들여진 편안함은 돈으로 살 수 없다. 시간과 땀, 그리고 수많은 시행착오가 쌓여야만 만들어지는 결과물이다. 그러니 아껴줄 수밖에.


세탁기가 다 돌아갔다는 알림음이 울린다. 얼른 가서 녀석을 꺼내야겠다. 구겨지기 전에 탁탁 털어서 그늘에 잘 말려야지. 이번 주말 장거리 훈련 때도 입어야 하니까. 아무튼, 파랑 티셔츠야. 형이랑 오래오래 달리자. 너 구멍 나면 형 마음도 구멍 난다. 알았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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토요일 연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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