몸에 귀기울이는 법

러닝 이코노미, 달리기로 내몸 이해 하기.

by 밀잠자리


주말 정기 러닝 세션이 막 끝난 직후의 풍경은 언제나 활기가 넘치면서도 묘한 안도감이 흐른다. 거친 호흡을 가다듬으며 땀에 젖은 서로의 어깨를 두드려주고, 시원한 이온 음료를 나눠 마시는 이 시간이야말로 러너들이 일주일 중 가장 기다리는 순간일 것이다. 엔돌핀이 혈관을 타고 흐르는 이 평화로운 시간에, 종종 세상에서 가장 억울한 표정으로 나에게 다가와 질문을 던지는 멤버들이 있다.


저 진짜 억울해요. 오늘은 정말 회복 러닝이라서 마음먹고 천천히 뛰었거든요. 평소보다 페이스를 1분이나 늦췄어요. 그런데 왜 심박수는 안 떨어지고 몸은 물 먹은 솜이불처럼 더 무겁게 느껴지는 거죠. 제 심장이 고장 난 걸까요. 아니면 가민 시계가 맛이 간 걸까요.


그들의 하소연을 듣고 있으면 나는 빙그레 웃음이 나온다. 그것은 그들이 달리기를 못해서가 아니라, 우리 몸의 아주 정교하고도 까다로운 메커니즘을 온몸으로 체험했기 때문이다. 우리는 흔히 속도와 심박수는 정비례한다고 생각한다. 수학적으로는, 그리고 일반적인 상식으로는 그게 맞다. 엑셀을 살살 밟으면 기름을 적게 먹고, 세게 밟으면 많이 먹는 것이 세상의 이치니까. 천천히 걸으면 편하고, 전력 질주하면 숨이 턱 끝까지 차오르는 것은 당연한 물리 법칙이다. 하지만 우리 몸은 단순한 내연기관이나 전기 모터가 아니라, 수만 년의 진화를 거쳐 최적화된 아주 복잡 미묘한 생체 유기체다. 그래서 여기엔 효율이라는 아주 까다로운 변수가 숨어 있다. 오늘은 억지로 천천히 뛰는 것이 왜 때로는 전력 질주보다 더 고통스러운 노가다가 될 수 있는지, 그 비밀을 한번 풀어보려 한다.


첫 번째 키워드는 바로 스프링이다. 우리는 달리기를 단순히 허벅지와 종아리 근육의 수축과 이완으로 땅을 박차고 나가는 근력 운동이라고 생각하기 쉽다. 하지만 효율적인 달리기의 핵심은 근육의 힘이 아니라 탄성 에너지의 활용에 있다. 우리 몸, 특히 아킬레스건과 종아리 근육, 그리고 족저근막은 아주 훌륭한 생체 스프링이다. 달리기는 착지할 때 이 스프링들이 늘어났다가 줄어드는 반동 에너지를 이용해 다음 발을 내딛는, 일련의 연속적인 도약 과정이다.


문방구에서 파는 통통 튀는 탱탱볼을 생각해보자. 적당히 힘을 주어 바닥에 던지면 공은 그 반동으로 자연스럽게 다시 튀어 오른다. 이때 튀어 오르는 힘은 공이 스스로 만들어낸 것이 아니라, 바닥에 충돌하며 저장했던 에너지를 되돌려 받는, 일종의 공짜 에너지다. 우리가 리듬을 타고 달릴 때 편안함을 느끼는 이유가 바로 이 공짜 에너지를 적극적으로 활용하기 때문이다.


그런데 회복 러닝을 하겠다며 의식적으로 속도를 너무 늦추면 어떻게 될까. 공을 조심스레 바닥에 살살 내려놓는 상황을 상상해 보라. 공은 튀어 오를 생각은 안 하고 바닥에 철푸덕 붙어버린다. 탄성이 죽어버린 것이다. 바닥에 붙어버린 공을 다시 공중으로 띄우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 손으로 잡아서 들어 올려야 한다. 즉, 탄성 에너지가 사라진 자리를 온전히 내 근육의 힘으로 채워야 한다는 뜻이다.


속도가 일정 수준 이하로 떨어지면 우리 몸의 스프링 시스템은 작동을 멈춘다. 아, 주인님이 지금 뛸 생각이 없구나 하고 절전 모드로 들어가 버리는 것이다. 그러면 우리는 오로지 허벅지와 종아리 근육의 물리적인 힘만으로 묵직한 몸뚱이를 들어서 앞으로 옮겨야 한다. 마치 깊은 진흙탕 속을 걷는 것처럼, 매 발걸음이 노동이 된다. 속도는 느린데 근육은 열일하고 있으니, 심장은 근육에 산소를 공급하느라 과부하가 걸린다. 지금 도대체 뭐 하시는 겁니까라며 심장이 화를내고, 심박수는 요동을 친다. 스포츠 과학에서는 이를 두고 러닝 이코노미, 즉 달리기 경제성이 떨어졌다고 표현한다. 100원을 투자해서 120원을 뽑아내야 하는데, 100원을 투자해서 50원밖에 못 건지는 적자 운영을 하고 있는 셈이다.


두 번째로 이해해야 할 것은 접지 시간이다. 발이 지면에 머무르는 시간을 말한다. 탄력 있게 달릴 때 우리 발은 지면을 스치듯 차고 나간다. 하지만 천천히 뛰려고 의식하는 순간, 우리 몸은 중력의 지배를 더 오래 받게 된다. 발이 지면에 닿아있는 시간이 길어진다는 것은, 그만큼 내 체중을 다리로 지탱하고 있어야 하는 시간이 늘어난다는 뜻이다.


쿵, 하고 착지해서 발바닥 전체로 지면을 누르고, 다시 밀어내는 과정. 이것은 달리기가 아니라 한 발 스쿼트의 연속 동작에 가깝다. 지면에 발이 붙어 있는 시간이 길어질수록 에너지는 바닥으로 줄줄 샌다. 게다가 느리게 뛰면 수직 진폭, 즉 몸이 위아래로 출렁거리는 폭이 커지는 경향이 있다. 앞으로 나가는 데 써야 할 에너지를 위아래로 점프하는 데 낭비하는 것이다. 그러니 속도는 안 나는데 다리는 후들거리고 숨은 차는, 총체적 난국에 빠지게 된다.


자동차를 좋아하는 분들이라면 고속도로 연비와 주차장 연비의 차이를 금방 이해할 것이다. 자동차가 시속 100km로 고속도로를 항속 주행할 때와, 시속 20km로 꽉 막힌 시내나 주차장을 기어 다닐 때, 언제가 연비가 더 좋을까. 당연히 전자다. 너무 느리게 가면 기어 변속도 애매해지고, 엔진 회전수가 불안정해져서 기름만 길바닥에 버리게 된다. 엔진은 적정 회전수에서 최고의 효율을 내도록 설계되어 있기 때문이다.


사람도 똑같다. 개개인에게는 자신에게 최적화된 고유의 리듬, 즉 공명 주파수가 있다. 이 리듬이 깨지면 에너지가 샌다. 특히 오늘은 천천히 뛰어야지라고 머리로 생각하고 몸을 제어하려 들면, 부작용이 생긴다. 자신도 모르게 자세가 구부정해지고, 골반이 뒤로 빠지며 엉거주춤한 자세가 된다. 이렇게 되면, 무릎과 발목 관절에 가해지는 하중이 늘어난다. 회복하러 나갔다가 오히려 무릎 부상이라는 불청객을 초대해서 돌아오는 경우가 바로 이런 케이스다.


그렇다면 도대체 어쩌란 말인가. 회복 러닝은 불가능한 신기루란 말인가. 천천히 뛰면서도 심박수를 안정시키고 몸을 회복하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 핵심은 무조건 속도를 늦추는 게 아니라, 가장 편안한 리듬을 유지하면서 강도를 낮추는 기술에 있다.


해답은 케이던스, 즉 발 구름 수에 있다. 속도를 늦추더라도 발을 구르는 박자까지 느리게 만들면 안 된다. 많은 초보 러너들이 천천히 뛸 때 보폭과 박자를 동시에 줄여버린다. 그러면 영락없이 터벅거리는 달리기가 된다. 속도를 줄이고 싶다면, 발을 구르는 횟수는 평소와 비슷하게 유지하거나 아주 조금만 줄이고, 대신 보폭을 과감하게 줄여야 한다. 발을 앞으로 멀리 뻗는 것이 아니라, 내 몸통 바로 아래에 가볍게 내려놓는다는 느낌. 보폭은 줄이되 발은 가볍게 총총총 구르는 느낌을 유지해야 우리 몸의 스프링이 녹슬지 않고 작동한다. 발이 지면에 닿자마자 바로 떼어내는 탄력을 유지해야 한다. 이렇게 하면 근육의 힘을 덜 쓰면서도 관성을 이용해 부드럽게 앞으로 나아갈 수 있다. 마치 빙판 위를 미끄러지듯, 혹은 구름 위를 걷듯 사뿐사뿐한 느낌. 그 느낌을 찾아야 한다.


자세 또한 중요하다. 심박수가 요동친다면 자신의 폼을 점검해보자. 땅을 보고 뛰고 있지는 않은가. 어깨가 잔뜩 웅크려져 있지는 않은가. 허리를 펴고 시선을 멀리 전방 50미터 앞을 응시해보자. 가슴을 펴면 눌려있던 폐가 확장되면서 산소 섭취량이 늘어난다. 자세가 바로잡히는 순간, 꽉 막혔던 호흡이 휴 하고 편해지는 지점이 반드시 온다. 그곳이 바로 당신의 경제 속도 구간이다. 이 구간에서는 뇌가 몸을 통제하려 들지 않는다. 다리가 알아서 굴러가고, 호흡이 발소리와 자연스럽게 박자를 맞춘다. 옆 사람과 대화를 나누어도 숨이 차지 않고, 노래를 흥얼거릴 수 있는 여유가 생긴다. 이것이 진짜 회복 러닝이다.


물론 이것은 말처럼 쉬운 일이 아니다. 천천히 달리는 것은 빨리 달리는 것만큼이나, 아니 어쩌면 그보다 더 고난도의 기술을 요한다. 빨리 달리고 싶은 욕망, 남들을 추월하고 싶은 본능을 억제하는 멘탈 관리도 필요하고, 무너지는 자세를 끊임없이 바로잡는 집중력도 필요하다. 역설적이게도, 힘을 빼는 것이 힘을 주는 것보다 훨씬 어렵다. 골프나 수영, 악기 연주 등 모든 예체능 분야에서 고수의 경지가 힘을 빼는 것에 있는 것과 같은 이치다.


가끔, 손목에 있는 시계의 숫자, 즉 페이스에 너무 집착하지 마시라. 1km를 5분에 뛰든 7분에 뛰든 그건 중요하지 않다. 중요한 건 내 몸의 소리에 귀를 기울이는 것이다. 내 발바닥이 지면과 어떻게 만나고 있는지, 내 호흡이 얼마나 편안한지, 내 어깨에 힘이 들어가 있지는 않은지. 가장 적은 힘으로 물 흐르듯, 내 몸의 스프링이 통통 튀어주는 그 기분 좋은 속도를 찾아야 한다. 그 속도는 날마다 다를 수 있다. 어떤 날은 그게 시속 10km일 수도 있고, 어떤 날은 시속 7km일 수도 있다. 내 몸이 원하는 그날의 최적 속도를 찾아내는 것, 그것이 러닝이 한 단계 성장하는 시작점이다.


천천히 달리는 기술을 익히면 러닝의 세계가 확장된다. 매일매일 기록 경신을 위해 헉헉거리는 고통스러운 달리기가 아니라, 주변 풍경을 즐기고, 사색에 잠기고, 몸을 치유하는 명상으로서의 달리기를 경험하게 될 것이다. 그것은 단순히 느린 것이 아니라, 여유로운 것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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