참 좋은 세상이다. 타이어 공기압이 낮아졌으니 확인하라는, 차와 연동된 모바일 앱이 즉시 내 손목의 워치로 알림을 보냈다. 수치를 확인해보니 네 바퀴 중 유독 오른쪽 뒷바퀴 녀석만 기압이 뚝 떨어져 있다. 아침저녁으로 쌀쌀해진 탓에 발생하는 환절기 기온 차에 의한 자연스러운 수축 현상이 아니다. 다른 세 녀석들이 멀쩡한데 이 녀석만 유독 기운이 빠져 있다는 건, 녀석에게 무언가 물리적이고도 특별한 사건이 발생했다는 뜻이다.
이 판단이 서는 순간, 어김없이 두 갈래 길이 펼쳐진다. 얌전히 서비스 센터에 예약을 잡고 전문가에게 맡길 것인가, 아니면 직접 원인을 규명하고 집도를 할 것인가. 효율성을 따지자면 전자가 맞을지 모르나, 호기심과 해결 본능을 따지자면 후자가 압도적이다. 주변 사람들은 사서 고생하는 나를 답답이라 부를지 모르지만, 나는 이번에도 역시나 후자를 택했다. 내 차의 문제는 내가 가장 잘 알아야 한다는, 일종의 기술직 종사자로서의 오기이자 책임감 같은 것이 발동했기 때문이다.
어두운 차고에서 랜턴을 들고 나와 정차된 차의 타이어를 샅샅이 훑기 시작했다. 고무의 표면을 손으로 쓸어가며 이물질을 찾는다. 겉보기엔 멀쩡하다. 사이드월도 깨끗하고, 림 부분에 손상도 없다. 그렇다면 범인은 지면과 맞닿은 바닥 쪽에 숨어 있을 확률이 99퍼센트다. 나는 바닥에 닿아 보이지 않는 부분을 제외한 나머지 영역을 확인한 뒤, 바닥 닿은 곳 바깥쪽에 초크로 표시를 했다. 그리고 운전석에 올라 차를 아주 살짝, 반 바퀴 정도 움직여 범인의 은신처를 노출시켰다. 다시 랜턴을 비췄다. 타이어 트레드 깊은 곳에서 무언가가 반짝였다. 은색 나사 못 하나가 아주 얄밉고도 견고하게 박혀 있다. 찾았다, 요 녀석.
범인은 확보했으나 처리가 문제다. 지금 당장 나사를 뺐다간 그나마 남아있던 공기가 순식간에 빠져나와 타이어가 완전히 플랫 되어버릴 것이다. 그렇게 되면 휠까지 상하게 되어 일이 커진다. 나는 차고에 쭈그리고 앉아 즉시 아마존 앱을 켰다. 휴대용 타이어 공기 주입기와 수리 키트를 주문했다. 미국 땅덩어리가 넓다지만, 물류망이 혈관처럼 촘촘하게 뻗어있는 이곳 산호세, 실리콘밸리는 웬만하면 당일 또는 익일 배송이다. 주문 버튼을 누르고 몇 시간 지나지 않아 거실에 있는 인공지능 스피커 알렉사가 무심한 톤으로 알린다. 타이어 공기 주입기가 현관 앞에 도착했다고. 참으로 기가 막힌 속도다.
택배 박스를 뜯고 공기 주입기를 연결했다. 전동 모터가 요란한 소리를 내며 타이어에 생명을 불어넣는다. 적정 공기압 수치에 도달하자 기계를 멈추고, 롱노즈 플라이어를 손에 쥐었다. 심호흡 한 번 후, 박혀있던 나사를 단숨에 뽑아냈다. 피이이익. 작지만 분명하고 날카로운 파열음이 차고를 울렸다. 나는 절대음감은 아니지만, 음계로 따지면 높은 시샵 정도 되려나. 8분 음표가 쉼표 없이 끊임없이 이어지는 아주 긴박하고 불안한 악보가 내 귀 옆에서 연주되고 있었다. 그 연주가 끝나버리면 내 타이어도 끝이다. 공기가 다 빠지기 전에 승부를 봐야 한다. 나는 미리 준비해 둔 타이어 플러그, 일명 지렁이라 불리는 끈적한 고무 심을 공구에 끼워 재빨리 구멍 난 곳에 꽂아 넣었다. 있는 힘껏 밀어 넣고, 구멍을 메웠다. 거칠게 새어 나오던 공기 소리가 뚝 그쳤다. 다행히 긴장감 넘치던 연주는 멈췄고, 이어, 공기 주입을 마저 하니, 타이어는 다시 빵빵한 모습을 되찾았다. 응급처치는 성공했다. 하지만 타이어의 공기압은 채워졌을지언정, 내 마음속 공기압은 여전히 불안정했다.
문제는 이번 주말이다. 차로 1시간 거리에서 열리는 하프 마라톤 대회에 참가 신청을 해둔 상태다. 새벽같이 일어나서 엑스포에 참여해 배번을 받고, 21km를 달리고, 다시 운전해서 돌아와야 하는 스케줄. 왕복 운전 시간만 족히 2시간이 넘고, 대기 시간까지 합치면 차는 4시간 이상 도로 위에 있어야 한다. 과연 내가 급하게 지렁이로 때운 이 타이어를 믿고 고속도로를 시속 100km로 달릴 수 있을까. 혹시라도 주행 중에 지렁이가 빠지거나 타이어가 터지면 어떡하지. 인근 정비소에 연락을 돌려봤지만, 주말이라 예약이 꽉 찼고 가장 빠른 예약은 대회 당일 오후란다. 타이밍 한번 기가 막히다.
그런데 사실 문제는 차에만 있는 게 아니었다. 내 몸 상태도 타이어 못지않게 펑크가 난 상태였다. 지난주, 러닝 클럽 회원들과 즐거운 동반주 훈련을 할 때였다. 화기애애한 분위기 속에서 담소를 나누며 달리다 보니 주의력이 흐트러졌고, 트레일 바닥에 튀어나온 작은 턱을 미처 보지 못하고 밟았다. 으악 하는 소리와 함께 발목이 꺾였다. 순간적인 통증에 주저앉았지만, 1분 정도 지나니 또 괜찮은 것 같았다. 러너 특유의 미련함이 발동했다. 에이, 뛰다 보면 풀리겠지. 나는 툭툭 털고 일어나 다시 달렸고, 훈련을 마칠 때까지는 신기하게도 멀쩡했다.
하지만 몸은 정직했다. 뒤풀이 장소에 도착해 자리에 앉아 쉬고 있으니, 아드레날린이 빠져나간 자리에 통증이 밀고 들어왔다. 발목이 시큰거리고 따끔거리기 시작했다. 집에 와서 얼음찜질을 하며 생각했다. 하루 이틀 쉬면 낫겠지. 나는 내 몸의 회복력을 과신했다. 이틀 뒤 화창한 아침, 나는 내 몸에 테스트를 강행했다. 발목의 내구성을 검증하겠다는 명목으로 천천히 조깅을 시작했다. 초반엔 괜찮았다. 욕심이 생겨 후반부엔 대회 페이스로 속도를 올려보았다. 심지어 마지막엔 전력 질주에 가까운 점진주까지 해봤다. 걸을 땐 특정 각도에서 따끔했지만, 달릴 땐 통증이 느껴지지 않았다. 됐다, 이 정도면 내구성이 검증됐다. 이번 대회 나갈 수 있겠어.
그것이 얼마나 어리석은 오판이었는지 깨닫는 데는 그리 오랜 시간이 걸리지 않았다. 그날 오후, 내 몸이 파업을 선언했다. 무리한 테스트 주행 탓에 발목 접질림의 충격이 종아리와 정강이 윗쪽 근육까지 타고 올라왔는지, 다리 깊숙한 곳에서 묵직하고 기분 나쁜 통증이 느껴졌고, 급기야 제대로 걷기조차 힘들 정도로 절뚝거리게 되었다. 겉으로 보이는 붓기는 없었지만, 내부의 인대나 근육 어딘가가 확실히 잘못됐음을 직감했다. 나는 병원을 극도로 싫어하는 전형적인 자가 치유 신봉자지만, 이번엔 사태의 심각성을 인지하고 의사 친구들에게 SOS를 쳤다. 증상을 설명하고 조언을 구했다. 그들의 소견을 종합한 결과는 냉혹했다. 최소 2주에서 3주는 절대 안정. 달리기는커녕 걷는 것도 최소화해야 한다는 진단이었다. 지금 무리해서 뛰면 만성적인 발목 불안정증으로 이어질 수 있다는 무시무시한 경고와 함께.
하늘이 무너지는 것 같았다. 몇 달간 이 대회를 위해 흘린 땀방울들이 주마등처럼 스쳐 지나갔다. 새벽잠을 설쳐가며 쌓은 마일리지, 주말마다 포기했던 가족과의 시간들. 그 노력을 증명하고, 사람들과 소통하고, 피니시 라인에서의 성취감을 맛볼 기회가 눈앞에서 사라지게 생긴 것이다. 어떻게든 테이핑을 하고 진통제를 먹고 뛰어볼까 하는 유혹이 수십 번도 더 고개를 들었다. 하지만 절뚝거리는 다리로는 완주는커녕 출발선에 서는 것조차 민폐였다. 결국 나는 눈물을 머금고 대회 등록 페이지에 접속해 참가를 다음 해로 미루는 디퍼 버튼을 눌렀다. 클릭 한 번으로 몇 달의 노력이 유예되었다.
타이어에 박힌 못, 그리고 발목에 찾아온 통증. 처음엔 설상가상인 줄 알았다. 머피의 법칙도 아니고, 왜 하필 대회 직전에 타이어도 말썽이고 다리까지 이 모양이냐며 하늘을 원망할 뻔했다. 내가 전생에 무슨 죄를 지었길래 달리기를 이토록 방해하는 것인가.
하지만 차고에 쭈그리고 앉아 지렁이가 박힌 타이어를 멍하니 바라보다가, 곰곰이 생각해보니 타이어가 내게 말을 건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타이어는 단순히 공기가 빠진 게 아니라, 내게 신호를 보내고 있었던 것이다. 주인님, 지금 그 다리 상태로는 안 돼요. 그 다리로 대회주를 뛰었다가는 큰일나요. 그리고 저도 지금 상태가 메롱이라 장거리 고속 주행은 좀 불안하거든요. 우리 이번엔 좀 쉬어가면 안 될까요. 불안한 타이어를 믿고 고속도로를 달릴 수 있을까 하는 고민이, 불안한 다리를 믿고 21km를 달릴 수 있을까 하는 고민과 데칼코마니처럼 겹쳐졌다. 기계인 자동차와 생물인 내 몸이 동시에 멈춤 신호를 보내고 있었다. 이것은 우연이 아니라 필연적인 경고였다. 타이어 펑크 덕분에 나는 차를 점검하게 되었고, 그 덕분에 무리해서 운전대를 잡고 대회장으로 가는 위험을 피할 수 있었다. 만약 타이어가 멀쩡했다면, 나는 아픈 다리를 이끌고 고집스럽게 대회장에 갔을 것이고, 레이스 도중 더 큰 부상을 입어 앰뷸런스에 실려 왔을지도 모를 일이다. 덕분에 나는 답답이의 옹고집을 꺾고 멈춰 설 수 있었다.
어쩌면 이것은 악재가 아니라, 더 큰 사고를 막아준 누군가의 도우심이 아닐까 싶다. 못이 박혀 공기가 빠져나올 때 연주하던 그 날카롭고 긴박했던 시샵의 소리는, 단순히 타이어가 찢어지는 소리가 아니라, 내게 보내는 강력한 경고의 사이렌이었는지도 모른다. 제발 멈추라고, 지금은 달릴 때가 아니라 정비할 때라고.
나는 타이어 수리 키트를 정리하고, 거실로 들어와 소파에 다리를 올리고 누웠다. 이번 주말, 나는 대회장의 뜨거운 열기 대신 집안의 고요함을 선택했다. 아쉬움이 없다면 거짓말이겠지만, 마음은 한결 편안하다. 타이어도 새것으로 교체하고, 내 발목 인대도 다시 짱짱하게 붙을 때까지 충분한 시간을 주기로 했다. 엔지니어링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고장이 났을 때 즉시 멈추고 원인을 분석하여 근본적인 해결책을 찾는 것이다. 무리하게 가동하다가는 시스템 전체가 붕괴된다. 내 몸이라는 시스템, 그리고 내 차라는 시스템을 위해 이번 멈춤은 가장 현명한 유지 보수 작업이 될 것이다.
감사한 마음으로 며칠 푹 쉬어보려 한다. 타이어도, 내 발목도, 다시 단단해질 시간을 위해. 멈춤은 후퇴가 아니라, 다음 질주를 위한 가장 적극적인 준비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