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른이 미처 보지 못한 본질에 대하여
아이를 키우다 보면,
아무렇지 않은 순간에
마음이 멈추는 듯한 깨달음이
조용히 스며들 때가 있다.
얼마 전,
아이에게 에디슨 위인전을 읽어주던 날이 그랬다.
위대한 발명가의 삶을 들려주고 있던 그때,
아이는 확신에 찬 목소리로 말했다.
“엄마, 에디슨은 스포츠카야!”
순간 웃음이 터졌다.
‘스포츠카라고?’
뜻을 가늠하지 못해 고개를 갸웃한 것도 잠시,
이어진 아이의 설명을 듣는 순간
나는 조용히 말을 멈췄다.
아이가 말한 스포츠카는
에디슨이 세상에 불어넣은
‘속도’와 ‘변화’를 가리키고 있었다.
한 발명의 불빛이 멈춰 있던 시대를
순식간에 앞으로 밀어 올렸다는 뜻이었다.
작은 입에서 나온 그 비유는
놀라울 만큼 정확했고,
어른인 내가 미처 보지 못한 본질을 단숨에 짚어냈다.
아이의 언어는
종종 어른의 이성을 훌쩍 넘어 먼 곳을 향한다.
우리는 배운 만큼만 이해하고,
익숙한 틀 안에서만
세상을 바라보려 하지만
아이들은 처음 보는 눈으로 세상을 다시 그린다.
어른은 배운 만큼만 이해하고,
아이는 처음 보는 눈으로 세상을 다시 그린다.
사실 아이가 건네는
이 짧은 문장들이야말로
내가 글을 멈추지 못하는 이유인지도 모르겠다.
아이의 시선 속에서
사랑의 언어가 자연스럽게 피어오르고,
나는 그 꽃이 피고 지는 모습을
기록하는 사람일 뿐이다.
아이들은 매일
새로운 꽃을 피워 주고,
나는 그 꽃을 바라보며 다시 한 문장을 꺼낸다.
그렇게
내 마음의 정원은
조용하지만 분명한 방향으로 자라난다.
그리고 나는 오늘도
아이의 한마디 앞에서
잠깐 멈춰 선다.
그 멈춤이
내가 잊고 지낸 가장 중요한 것들을
다시 바라보게 해 주니까.
그 멈춤 덕분에
나는 다시 바라볼 수 있었고,
이제는 오래 머무르지 않아도 될 것 같았다.
어떤 장면은
붙잡기 위해 있는 게 아니라,
충분히 건너가기 위해
잠시 멈춰 서는 곳이라는 걸 이제는 알기 때문이다.
나는 그렇게 이 장면을 마음에 남긴 채,
조용히 다음 걸음을 준비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