같은 이카로스, 우리가 선택하는 시선
누군가의 추락보다
그가 날아오르던 순간을 먼저 기억하고 싶다.
어느 주말, 아이들과 함께 명화 책을 펼쳤다.
페이지를 넘기다 문득 시선이 멈춘 그림이 있었다.
같은 신화 속 인물,
이카로스를 그린 두 장의 그림이었다.
한 장은 마르크 샤갈,
다른 한 장은 앙리 마티스의 작품이었다.
같은 이야기였지만
그림이 전하는 온도는 전혀 달랐다.
샤갈의 이카로스는
이미 추락이 시작된 순간에 머물러 있었다.
아버지의 경고를 따르지 않은 대가,
넘쳐버린 욕망이 부른 비극.
녹아내린 날개와 아래로 향하는 몸.
그 그림 앞에서
마음이 자연스레 무거워졌다.
반면 마티스의 이카로스는 달랐다.
그는 이카로스를 실패로 남겨두지 않았다.
태양을 향해 날아오르던 순간,
미지의 세계를 향한 충동,
넘어질 것을 알면서도 스스로 선택한 도약.
마티스의 이카로스는 비난의 대상이 아니라
자기 삶을 직접 선택한 존재처럼 보였다.
같은 이야기, 같은 인물.
그런데 왜 이렇게 다르게 느껴질까.
나는 그 차이가
‘사건’이 아니라
‘시선’에서 비롯된다는 사실을 그때 깨달았다.
우리는 늘 누군가를 바라보며 살아간다.
그리고 그를 이해했다고 말한다.
하지만 어쩌면
그 사람을 본 것이 아니라
내가 가진 기준으로
해석했을 뿐인지도 모른다.
아이들을 키우며
나 역시 그런 시선을 가질 때가 많았다.
앞서 나가는 아이에게는
“너무 성급해”라고 말했고,
한참을 망설이는 아이에게는
“왜 이렇게 소극적이야”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이카로스를 보며 알게 되었다.
그것은 성급함이 아니라 용기일 수 있고,
소극적임이 아니라 신중함일 수 있다는 것을.
아이들은 잘못된 것이 아니라
각자 다른 방식으로
자기 삶을 살아가고 있었을 뿐이었다.
시선이 바뀌면 평가가 달라지고,
평가가 달라지면 관계의 온도도 달라진다.
샤갈의 이카로스도 진실이고,
마티스의 이카로스도 진실이다.
우리는 다만
어느 장면에 오래 머물 것인지를 선택할 뿐이다.
이 시선이
아이들의 마음에 조금 더 따뜻한 색으로
남기를 바란다.
누군가의 추락보다 그가 날아오르던 순간을
기억해 주는 사람으로.
부모로서, 그리고 한 사람으로서
나는 그런 장면에
오래 머무는 쪽을 선택하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