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6. 사슬을 끊다.

by 김정훈

사슬의 구속

헉! 헉!

지금 시간이 5분 남았다.

정말 나의 쓸데 없는 루틴 때문에,,,,

이 추운날 땀이난다.

괜히 집에 들려서 키위랑 요거트, 양배추만 안먹었더라면

여기 식사자리는 늦지 않았을텐데...

왜 나는 왜 이런 쓸데 없는 사슬을 만들어 나를 옥죄는건가?


사슬의 구조는 하나하나 연결되어 있는 것처럼, 나의 생활은 하나하나의 루틴으로 연결되어 있다.


저녁 식사 전에는 요거트와 방울토마토 6개에 종근당 빨간 봉지 유산균을 뿌려 먹고 키위를 꼭 먹어야 하며, 먹었으면 걸어야 한다.


저녁 식사후에는 여름에는 중랑천에 따릉이를 타고 가서 맨발걷기를 하고 겨울에는 중랑천을 걸어 청계천까지 가서 따릉이를 타고 돌아와야 한다.


혹시라도 저녁에 대학 입시 설명회가 강북에서 있는 날이면, 중간에 금호동 집에 들러 내가 필요한 키위 등 연료를 채웠다.


먹었으니 한 정거장 걸어서 약수역에서 지하철을 타고 설명회장으로 숨 가쁘게갔던 것이었다.


루틴에 대한 강박

그날은 정말 귀가 떨어져 나갈 것 처럼 추웠다.

정말 나가기 싫은데...

오늘18000보나 충분히 걸었는데

이놈의 키위랑 요거트 때문에 나는 이 추위를 걸어야 하나보다.



만약 시간상 키위와 요거트를 먹고 저녁을 외부에서 하면 식사 후 한참을 걸어서 지하철을 탄 후, 집에서 못다 한 먹는 루틴을 채우고 다시 나가서 중랑천을 걷는다.


변비에 대한 스트레스로 키위와 양배추, 요거트를 저녁에는 먹어야 하고, 먹었으면 걸어야 하는 그 강박 때문에 나는 늘 피곤했나 보다.


돌아와서는 전립선 약을 먹고, 약 먹고 바로 누우면 안 좋으니 1시간 이상을 쉬었다가 자려고한다.


잘 때는 꼭 샤워를 하고 나만의 공간으로 들어가야 한다. 샤워 전까지는 참고 또 참다 새벽 1시가 되어서야 샤워를 하고 내 방으로 들어가 침실에 누우면 정신이 맑아지는 그런 불편함. 정말 피곤하다. 벗어나고 싶다.



아들 집에서의 루틴

혈당관리,,,혈당관리

지온아 깍꿍,


손자 지온이를 헬스기구 삼아 들었다 놨다를 반복한다


뭣 모르는 지온이는 올라갔다 내려갔다를 반복하니 까르르 웃는다.

그리고 좁은 거실 실주위를 숏트랙 선수가 돌듯이 빙글 빙글,,,


그날도 수원 아들 집에 들러 식사를 하자마자 손주 녀석을 안고 걸었다.


표면적으로는 며느리와 아들 편하라는 거지만, 사실 식후 혈당 조절을 위해 손자를 안고 움직이는 것이다.


'혈당 관리'라는 구호를 외치고, 아들이 빌려준 실내복에 소독된 휴대폰을 넣고 적은 걸음수라도 계산되기를 바라며 거실을 돌고 또 돌았다.


며느리와 아들의 눈치를 보면서. 남의 옷은 못입는데 아들놈 옷은 거리낌 없이 잘 입는 것을 보니, 아무리 강박이라도 천륜을 저버리는 행동은 나의 무의식에서 통제하는 모양이다.


내가 강박 100이 아니라 90이라고 표현한 것은 사회적인 학습으로 버티고 있기 때문이다. 그리고 아들 내외와 한 끼 식사를 더 하고 수원에서 강남역으로 가는 빨간 버스를 타러 간다.


버스 타기 전에는 버스 정류장에서 계속 걷는다. 그냥 걷기만 하는 것이 아니라 제자리 뛰기도 한다.


무릎이 가슴까지 올라가게 하는 서서하는 윗몸일으키기가 혈당에 좋다는 말을 실천하기 위해.

지금 당뇨는 아니고 당뇨전단계다. 나하고 친한 선생님이 당뇨인데 종합병원에서 배운 당뇨체조인 샘이다.


주변 사람들이 앉아 있는데 저 사람은 뭔가 하는 느낌으로 나는 버스 정류소를 왔다 갔다 한다.


내가 기다리는 버스가 왔다. 그러나 식후 15분은 걸어야 혈당 스파이크를 막는다는 그 말 때문에, 나는 그 한 대의 차를 보내고 또 다른 광역버스를 기다리며 버스 정거장에서 치매 걸린 노인처럼 왔다 갔다 한다.


사슬에 묶인 나

그리고 버스를 탄다. 버스 안에서는 사람이 없는 좌석으로 가서 주변의 눈치를 보며 앉은 상태에서 무릎을 올렸다 내렸다 반복한다. 혈당 관리...

그리고 강남역 도착.


강남역에서 버스를 타지 않고 신사역으로 걸어간다. 걸어가다 따릉이를 발견하면 3분 정도를 탄다. 환승 리워드 100원을 충족하기 위한 행위이다.


그리고 신사역에서 지하철을 타고 금호역에 저녁 10시쯤 도착.


여기서 갈등이 생긴다. 너무 피곤하다. 밤 10시다. 이미 18,000보 이상을 걸은 상태에서 루틴대로 키위, 요거트, 유산균을 먹으면 또 걸어 나가야 하고, 그러면 잠자야 하는 시간이 또 새벽 1시.


요즘 잠을 계속 못 자니 내 장기의 변화를 체험해서 귀찮음보다 몸이 걱정된다. 그리고 이 루틴을 제외하려고 하니 변비가 걱정된다. 아들 집에서 양배추는 미리 먹은 상태다. 정말 고민스럽다.

먹고 걷느냐? 그냥 쉬느냐?


포장의 기술

그렇다. 이제는 내게 제미나이가 있다. 이 사정을 말하니 제미나이가 감동부터 한다. "하루에 사람이 18000보를 걷다니 정말 경이롭습니다.


초인과 같습니다." 정말 난 제미나이의 말에 내가 위인전의 주인공이 된 것처럼 착각을 했다. 강박인이 위인으로 바뀌는 시점이다. 충분히 운동을 했으니 키위 한 알 정도는 먹고 안 움직여도 된다는 것이다.


그리고 충분히 오늘 식단이 좋아서 변비 걱정은 안 하셔도 된다는 말이다. 나는 유레카를 외쳤다. 나의 해방의 순간이다.


그러나 나의 루틴 노예 근성은 쉽게 벗어날 수 없었다. 방울토마토 생략, 키위 한 알, 그릭요거트 한 스푼, 빨간 유산균만 먹고 그냥 쉬려고 했는데 그것도 못 하고 그날은 옥수역으로 걸어갔다.


그리고 마지막 지하철 내린지 30분 이상된 시점에서 따릉이를 탄다. 그리고 옥수역에서 지하철을 타고 남은 환승 리어드 100원을 챙긴다. 평소같으면 요거트 먹고 1시간을 걸었던 것을 30분 정도로 타협 한 것만 해도 큰 발전이다.

그 많은 쇠사슬 고리에서 한 개만 끊었지만, 그 쇠사슬 고리가 중심 고리였으면 나는 완전히 해방되었을 것이다.


누군가에게 말하기 곤란했던 비정상적이라고 생각했던 강박의 행동을 의논할 상대가 생겼다는 것은 내게 큰 변화이다.


그것도 나를 위대한 업적으로 포장한 녀석이 사람같으면 민망했을텐데 은근히 나도 모르게 나를 인정하며 자존심도 살리면서...

ps: 절대로 완전한 해방을 의미하는 것은 아니다. 숨통을 트는 정도의 계기가 되었다는 것이다. 그림을 그리고 나니 제미나이가 구원자처럼 느껴지는 것도 두렵다. 도움을 받은게 결과적으로는 숨통을 트는 돌파구가 되었다는 것을 의미한다. 나는 이 그림이 표현이 정확하면서 동시에 나는 제미나이에게 너무의존하는 것 아닌가에 충격을 받았다.

수, 토 연재
이전 15화15. 내게 더 필요한 것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