믿음이 감정 조절 능력을 결정한다
그런데 여기서 한 가지 선행 조건이 있다. 재평가를 쓰려면 먼저 그것이 가능하다고 믿어야 한다. "어차피 감정은 안 바뀌어"라고 생각하는 사람은 재평가를 시도조차 하지 않기 때문이다.
2007년 보스턴 칼리지의 심리학자 마야 타미르(Maya Tamir)와 스탠퍼드 대학교의 제임스 그로스(James Gross) 연구팀은 흥미로운 질문을 던졌다. 사람들은 감정에 대해 어떤 믿음을 갖고 있는가?
연구팀은 Carol Dweck이 지능 연구에서 발견한 구조를 감정에 적용했다. Dweck은 지능에 대한 믿음이 두 가지로 나뉜다는 것을 보여줬다. 지능은 고정된 것이라는 믿음(entity theory)과 노력으로 바꿀 수 있다는 믿음(incremental theory). 그리고 어느 쪽을 믿느냐가 학업 성취와 적응에 실질적인 차이를 만들었다.
타미르 연구팀은 이 구조가 감정에도 똑같이 적용된다는 것을 보여줬다. 어떤 사람들은 감정을 고정된 것으로 본다. "나는 원래 불안이 많은 사람이야", "나는 화가 나면 어쩔 수 없어." 반면 어떤 사람들은 감정을 변할 수 있는 것으로 본다. "감정은 노력하면 조절할 수 있어", "나는 이 감정을 다루는 방법을 배울 수 있어."라고 말이다.
연구팀은 스탠퍼드 대학교 신입생들을 대상으로 종단 연구를 진행했다. 대학 입학 전 감정에 대한 믿음을 측정하고, 1년에 걸쳐 감정 경험과 사회적 적응을 추적했다.
결과는 일관됐다. 감정이 변할 수 있다고 믿는 학생들은 1년이 지났을 때 긍정적인 감정을 더 많이, 부정적인 감정을 더 적게 경험했다. 사회적 적응도도 더 높았고, 외로움도 덜 느꼈다.
흥미로운 것은 그 메커니즘이었다. 감정이 변할 수 있다고 믿는 학생들은 재평가를 더 많이 사용했다. 반면 감정이 고정됐다고 믿는 학생들은 억압에 더 많이 의존했다. 믿음이 전략 선택을 결정하고, 전략 선택이 결과를 만든 것이다.
생각해보면 당연한 이야기다. 어차피 바뀌지 않는다고 믿는데 재평가를 시도할 이유가 없다. 반면 바꿀 수 있다고 믿으면, 바꾸는 방법을 찾게 된다.
그렇다면 이 믿음은 어디서 오는 걸까?
일부는 어릴 때부터 형성된다. "넌 원래 예민한 애야", "그건 어쩔 수 없어, 우리 가족이 다 그래"라는 말을 반복해서 들으면, 감정이 고정된 것이라는 믿음이 조용히 자리 잡는다. 반대로 "지금 화가 많이 났구나, 어떻게 하면 좀 나아질 것 같아?"라는 질문을 받으며 자라면, 감정은 다룰 수 있는 것이라는 경험이 쌓인다.
문화도 영향을 미친다. "원래 그런 사람이야"라는 표현을 자주 쓰는 문화는 사람과 감정을 고정된 것으로 보는 경향이 있다. 반면 과정과 노력을 강조하는 문화는 변화 가능성을 더 자연스럽게 받아들인다.
코칭에서도 이 믿음의 차이가 선명하게 드러난다. "저는 원래 이런 사람이라서요"라고 말하는 사람과 "이게 왜 이렇게 되는 걸까요, 어떻게 바꿀 수 있을까요"라고 묻는 사람의 출발점은 이미 다르다. 전자는 변화 가능성 자체를 닫아두고 있고, 후자는 이미 문을 열어두고 있다.
코칭에서 만난 한 분의 이야기다. 직장 동료가 부정적인 말을 할 때마다 불편한 감정이 올라왔는데, "직장에서 이런 감정을 느끼는 건 어쩔 수 없는 일"이라고 생각하며 매번 그냥 모른 척했다. 감정이 달라질 수 있다는 생각 자체가 없었기 때문이다. 그런데 억압된 감정은 사라지지 않았다. 동료와 같은 공간에 있는 것만으로도 신경이 쓰였고, 비슷한 상황이 반복될 때마다 스트레스가 쌓였다. 대처 방법을 찾지 않았으니 같은 상황은 계속 반복됐다. 감정이 바뀌지 않는다는 믿음이 바꿀 수 있는 시도 자체를 차단하고 있었던 것이다.
다행히 연구들은 이 믿음이 바뀔 수 있다는 것을 보여준다.
Dweck의 성장 마인드셋 연구에서 보여 줬듯이, 지능이 변할 수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되면 실제로 더 많이 노력하고 더 좋은 결과를 낸다. 감정도 마찬가지다. "감정은 뇌가 만들어내는 것이고, 뇌는 경험과 훈련으로 변한다"는 정보를 접하는 것만으로도 믿음이 조금씩 달라질 수 있다.
실제로 코칭에서 종종 이런 순간을 만난다. 오랫동안 "저는 원래 불안이 많은 사람이에요"라고 말해 온 분이, 감정이 해석의 산물이라는 것을 이해하고 나서 조금씩 달라지는 경우가 있다. 믿음 자체가 바뀌면, 시도하는 것들이 달라진다. 재평가를 해 보고, 감정 어휘를 넓히려 하고, 몸의 신호에 귀를 기울이기 시작한다. 결과가 달라지면 믿음은 더 단단해진다.
이 시리즈를 읽는 것 자체가 그 과정의 일부다. 우리는 감정이 해석의 산물이라는 것, 억압보다 재평가가 효과적이라는 것, 감정 어휘가 넓을수록 감정을 더 잘 다룰 수 있다는 것, 몸이 먼저 신호를 보낸다는 것을 배웠다. 이 모든 내용이 결국 "감정은 다룰 수 있는 것"이라는 믿음을 조금씩 키우는 방향으로 작동할 것이다.
참고문헌
Tamir, M., John, O. P., Srivastava, S., & Gross, J. J. (2007). Implicit theories of emotion: Affective and social outcomes across a major life transition. Journal of Personality and Social Psychology, 92(4), 731–744.
Dweck, C. S. (2006). Mindset: The new psychology of success. Random House.