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 느끼는 그 감정이 내 감정이 아닐 수 있다
회사에 다니기 시작한 초반에 사수가 정서적으로 예민한 분이었다. 외부 통화를 끊고 나서 한숨 쉬며 신경질적으로 말하고, 리더와 의견이 다를 때면 공개적으로 푸념했다. 그 무렵 나는 출근할 때마다 괜히 날이 서 있고, 조급하고, 심장이 조여드는 것 같았다. '내가 원래 기질적으로 불안도가 높아서 이렇게 예민하게 반응하나 보다'라고 생각했다.
그런데 얼마 지나지 않아 그분이 퇴사했다. 그리고 회사가 조용해졌다. 신기하게도 나의 업앤다운도 많이 줄었다. 그때서야 내가 느꼈던 긴장과 조급함이 내 것이 아니었다는 것을 깨달았다.
우리는 대부분 자신의 감정이 자신의 내부에서 온다고 생각한다. 뭔가 불안하면 내 안에 불안의 이유가 있을 것이라고, 무기력하면 내 상황이나 내 성향 탓일 것이라고. 그런데 지금 내가 느끼는 이 감정, 정말 내 것이 맞을지 질문해 볼 필요가 있다.
1993년 하와이 대학교의 일레인 해트필드(Elaine Hatfield)와 동료들은 감정 전염(emotional contagion)의 메커니즘을 이렇게 설명했다. 우리는 타인과 대화할 때 자동적으로, 그리고 무의식적으로 상대방의 표정, 목소리 톤, 자세, 몸짓을 따라 한다. 그리고 그 모방이 실제 감정을 만들어낸다.
즉 순서가 이렇다.
1. 상대가 슬픈 표정을 짓는다.
2. 내 얼굴 근육이 자동으로 따라간다.
3. 뇌가 그 근육 신호를 받아 슬픔으로 해석한다.
4. 나도 슬퍼진다.
이 과정은 내가 의도하지 않아도, 심지어 의식하지 못해도 일어난다.
핵심은 표정이 감정의 결과물이 아니라 원인이 될 수도 있다는 것이다. 얼굴 근육이 먼저 움직이고, 그것을 뇌가 감정으로 해석한다. 11화에서 살펴본 제임스-랑게 이론, 즉 울기 때문에 슬프다는 주장과 같은 구조다. 우리가 타인의 표정을 따라 할 때, 그 사람의 감정도 함께 따라오는 것이다.
갓난아기가 어른의 표정을 따라 하는 것, 누군가 하품을 하면 나도 하품이 나오는 것, 웃고 있는 사람 옆에 있으면 왠지 기분이 나아지는 것. 이것들이 모두 감정 전염의 흔적이다. 우리는 이것을 본능적으로 경험하면서도, 정작 자신의 감정이 전염된 것이라는 생각은 잘 하지 않는다.
감정 전염이 문제가 되는 건, 그것이 너무 자연스럽게 일어나기 때문이다. 우리는 대부분 자신의 감정이 자신의 내부에서 왔다고 생각한다. 그런데 사실 그 감정의 상당 부분이 주변 사람들에게서 전염된 것일 수 있다.
나처럼 만성적으로 불안이 높은 상사 옆에서 일하다 보면, 어느 순간 나도 이유 없이 불안해진다. 늘 부정적인 말을 하는 동료와 오래 앉아 있으면, 나도 그 무기력감을 느끼기 시작한다. 가족 중 누군가가 오랫동안 무거운 감정 상태에 있으면, 집에 들어서는 순간 이유 모를 무거움이 내려앉는다.
이것이 전염이라는 것을 모르면, 그 감정을 내 것으로 받아들이고 내 문제에서 원인을 찾으려 한다. "왜 나는 이렇게 불안하지", "나는 왜 이렇게 무기력하지"라고 탓하기까지 한다.
그렇다면 이 감정이 나의 것인지 남의 것인지를 어떻게 구분할까? 완벽하게 구분하는 방법은 없지만, 몇 가지 질문이 도움이 된다.
첫 번째는 "이 감정이 언제부터 시작됐는가"다. 특정 사람을 만나거나 특정 공간에 들어선 뒤부터 감정이 달라졌다면, 전염 가능성을 열어둘 수 있다.
두 번째는 "혼자 있을 때도 같은 감정을 느끼는가"다. 그 공간을 벗어나거나 그 사람과 떨어졌을 때 감정이 달라진다면, 그 차이가 중요한 단서다. 전염된 감정은 원인이 사라지면 함께 옅어지는 경향이 있다.
세 번째는 "이 감정이 내 상황과 연결되는가"다. 지금 나의 상황, 나의 관계, 나의 일과 연결고리를 찾을 수 없는데 이 감정이 올라온다면, 출처를 다시 한번 살펴볼 필요가 있다.
덧붙이자면, 감정 전염에 대한 민감도는 사람마다 다르다. 어떤 사람은 타인의 감정을 훨씬 더 빠르고 강하게 흡수하고, 어떤 사람은 상대적으로 덜 영향을 받는다. 예컨대, 공감 능력이 높거나 타인에게 세심한 사람들이 전염에 더 취약한 경향이 있다. 배려심이 강점인 동시에, 타인의 감정 상태에 더 쉽게 끌려갈 수 있다는 의미이기도 하다.
또 한 가지 알아두면 좋은 것은 긍정적인 감정보다 부정적인 감정이 더 잘 퍼진다는 것이다. 불안, 분노, 우울은 기쁨이나 평온함보다 전파력이 강하다. 부정적인 감정이 위협 신호로 작동하기 때문에 뇌가 더 민감하게 반응한다. 그래서 감정적으로 소진된 환경에 오래 있다 보면, 나도 모르게 같은 방향으로 끌려가게 된다.
나는 내 감정을 잘 안다고 생각했다. 그런데 감정은 내가 생각하는 것보다 훨씬 복잡한 경로로 온다. 그리고 때로는 전혀 다른 사람에게서 온다. 따라서 감정의 출처를 묻는 것은 자기 자신에 대한 가장 솔직한 질문 중 하나다. 쉽지 않지만, 그 질문을 던질 수 있는 순간부터 감정은 더 이상 그냥 당하는 것이 아니라 집중해서 읽어내야 할 대상이 된다.
Hatfield, E., Cacioppo, J. T., & Rapson, R. L. (1993). Emotional contagion. Current Directions in Psychological Science, 2(3), 96–99.
Hatfield, E., Cacioppo, J. T., & Rapson, R. L. (1994). Emotional contagion. Cambridge University Pres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