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종이 환갑 넘어 1912년에 본 늦둥이 딸. 한일합방으로 폐위된 고종의 말년에 유일한 행복을 주었던 고명딸.
일본식 교육을 강요받던 시절의 덕혜옹주
그녀가 겨우 8살되던 해 고종이 돌아가신 뒤 백성들의 측은지심과 사랑을 받았으나, 이를 못마땅하게 여긴 일제에 의해 14세의 어린 나이에 강제로 일본행. 이후 일본 귀족과 정략 결혼으로 딸을 하나 낳음.
하지만 타지에서 오빠 순종와 어머니의 잇단 부고에 깊은 시름을 얻어 몽유병과 정신분열 증세를 얻음. 일본인 남편에게 버림 받음. 그녀의 딸은 25세가 되던 1956년 홀연 유서를 남기고 실종, 7년이 지나 사망처리.
해방 후 고국행을 원했지만 망국의 책임론과 왕정복고의 명분을 자르려는 이승만 정권에 의해 불허.
현직 기자 등이 주동이 되어 올린 탄원으로 박정희 정권 때인 1962년이 되서야 51세의 몸과 마음 모두 쇠약한 몸으로 귀국. 올케 영친왕의 부인 이방자 여사와 노년을 창덕궁 낙선재에서 함께 보냄.
1989년 78세를 일기로 세상을 떠남. 함께 노년을 같이 했던 이방자 여사도 9일 뒤 별세. 낙선재의 마지막 주인들은 그렇게 황망히 떠나갔다.
이런 기구한 삶이란... '덕혜옹주'의 인생이 손예진 주연의 영화로 8월 개봉을 했다. 영화 '암살'에 이어 일제시대를 넘어서는 슬픈 역사를 소재로 하는 영화가 상영되는 셈이다.
하지만 영화 덕혜옹주를 바라보는 시선이 모두 곱지만은 않다.
특히 영화적인 소재를 위해 실제 역사에 덧대어진 허구가 역사를 왜곡하는 수준으로 실제 덕혜옹주의 삶을 그대로 그리지 않았다는 비판이 제일 강하다.
독립 운동 세력과 손을 잡는다거나 조선의 주권 상실에 비탄함을 표현한다거나 하는 것은 실제 덕혜옹주의 삶을 또 다른 허구라는 틀로 두번 죽이는 것과 다름 없을 지도 모른다.
그저 한 여인이 망국의 나라에서 적국의 알량한 속셈으로 명맥을 존속하며 부모와 이별하고 타지에서 광인이 되어 슬픈 인생살이를 했다는 것으로도 영화의 소재는 충분했으리라 생각한다.
하지만 그것만으로는 최근 불고있는 역사를 소재로 하는 영화계의 흥행 공식으로는 모자랐는지, 덕혜옹주를 슈퍼 히로인으로 변색시키는 것으로 영화의 정점을 그리고 있다라는 평가이다.
영화 속 의복 오빠인 영친왕의 행보는 실제 역사와 한걸음 더 멀리 떨어져 있다고 보여진다. 물론 덕혜옹주의 일본 시절 서로 의지가 되었던 것은 사실일 것이다. 어머니가 다르더라도 조선의 왕가에 태어난 태생적 동질감이 그 둘을 이어주었을 것이라는 생각은 충분히 공감이 간다.
하지만 영친왕은 임시정부에 의해 납치 기도가 일어날만큼 민족 정서와는 동떨어져 철저히 일본의 꼭두각시 역할에만 충실했던 것으로 알려져있다. 영친왕이라는 명칭도 실은 한일합방 후 일제가 내세운 이씨왕조의 왕으로서의 그의 지위를 나타내는 말이다. 우리가 아는 조선의 왕가의 족보는 이미 그의 이전에 끊겨 있다.
이런 저런 이유로 이 영화는 흥행 성적 만큼이나 역사적 왜곡이라는 글레로 인해 계속 논쟁을 나을 듯 싶다.
그러나 불과 100년 남짓 지난 슬픈 역사가 내내 잊혀지다가 이렇듯 영화로 다뤄지고 흥행이라도 되고서야 관심을 받고 재조명이 되고 있다. 또 영화적 해석을 두고 실제 역사와의 비교가 되어 그 세세한 내용이 널리 알려지게 된다.
만약 감독이 부풀려지고 비틀려진 덕혜옹주를 통해 실제 마지막 조선 왕가의 실체가 더 알려지기를 원했다면 그는 천재일 것이다.
요즈음 긴 장마 속에서는 햇살 가득 맑은 하늘이 있기는 있었나 싶다.
하지만 비가 그치면 다시 본다는 희망으로 눅눅한 장마를 버텨내곤 한다.
일제시대 믿고 의지하던 가족들을 잃고 타지에서 외롭게 살며 의지할 곳 없이 스스로 피폐해갔던 덕혜옹주의 삶. 그녀에겐 마치 다시는 맑은 날이 오지 않을 장마속에서 숨쉬는 절망감이 있지 않았을까 헤아려본다.
그나마 왕족의 끄트머리 혈통으로 태어나 겪었던 보호받던 삶 조차 저럴진데 이름 하나 알리지 못할 만큼 세세한 삶을 이어갔던 민초들은 어땠을까 생각해 보게 된다.
왕이 일제의 보호를 받으며 자손들을 인질처럼 일본으로 보내는 기막힌 광경을 보면서도, 끝내 개인의 의지로 항일의 기치를 잃지 않았던 독립을 염원했던 백성들의 가치는 그래서 더욱 더 숭고한 것이 아닐까?
지금 우리가 전혀 생각해 보지도 않았을, 나라를 잃는다는 그 커다란 상실감을 새삼 헤아려 본다. 어떤 의미일 것인지.
그래봤자 겨우 100년 남짓 전에 이 땅에서 이뤄졌던 엄연한 역사인 것을 상기하며 등골이 서늘해 지는 것을 느끼게 된다.
아픈 역사가 반복되지 않도록, 자식들에게 어두운 역사의 멍에가 다시는 지워지지 않도록, 지금 사는 현 세대가 정신을 바짝 차려야 하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