너는 식탁에 앉은 채 맞은편에 앉아 있는 여자를 바라본다. 여자 역시 너를 바라보고 있다. 너는 여자에 대해서 궁금한 게 많았다. 그도 그럴 것이 갑자기 네 집 현관문을 연신 두드리고는 들어오자마자 너구나, 하는 외마디 말과 함께 너를 제쳤으니까. 자신이 집주인이라도 된 듯 식탁 의자에 먼저 앉아버렸으니까.
너는 여자에게서 신비로운 인상을 느꼈다. 여자는 인사도 없이 너에게 반말을 했지만 너는 기분이 나쁘다거나 이상함을 느끼지 않았다. 여자의 얼굴은 주름 하나 없는 백자처럼 희고 빛났는데 이상하게도 기품이나 연륜과 같은, 나이를 먹어야만 얻을 수 있는 어떤 느낌 또한 존재했다. 그러므로 너는 그녀의 나이를 가늠할 수 없었던 것이다.
“달을 훔친 사람, 너 맞지?”
그녀는 너를 보며 말한다. 너는 흠칫 놀란다. 그러나 너는 그 뒤에 여자가 한 말 때문에 더 놀랄 수밖에 없었다.
“그리고 지금은 그 달을 먹어버리기까지 했구. 맞지?”
그녀의 말대로 너는 달을 먹어버렸다. 그녀가 집에 들이닥치기 전, 티비를 끈 뒤 너는 한참 동안 달을 만지작 거렸다. 달은 여전히 영하인 우주의 기온을 품은 채 차갑게 희미한 빛을 발하고 있었다. 너는 달을 식탁 위에서 이리저리 굴리거나 볼링공처럼 바닥에도 굴려보며 가지고 놀았다. 그러다가 불현듯 재밌는 생각이라도 난 듯 배를 잡고는 연신 웃었다. 그 재밌는 생각이란 달을 먹어버리는 것이었다. 달을 훔친 것만으로도 이렇게 난리가 났는데 만약에 자신이 달을 먹어버린다면? 그래서 달이 정말로 변기 레버를 누름과 함께 영영 사라져 버린다면?바로 너는 그것을 상상한 것이었다.
그 상상은 너에게는 어떤 것보다 속 시원하고 재미있는 일이 될 것이었다. 너는 종이를 구기듯 양손으로 달을 힘껏 오므렸다. 그러자 달은 알사탕만 한 크기로 변했다. 너는 달을 입에 넣은 뒤 혀로 굴려 보았다. 얼음처럼 차가울 뿐 달에서는 아무런 맛도 나지 않았다. 오히려 거친 질감만 느껴질 뿐이었다. 너는 달을 이로 오도독 씹었지만 달은 부서지지 않아서 그것을 그냥 삼킬 수밖에 없었다. 달이 사라지는 상황에만 몰두해서 삼키기는 했지만 달을 삼키자 너는 속이 이상한 것 같은 느낌을 받았다. 달이 너의 뱃속에서 굴러다니는 뿐만 아니라 점점 커지는 것만 같았고 내장의 통로를 꽉 막은 듯이 속이 답답해지기 시작했다. 소화가 될 수 있을까, 하는 불안한 생각이 들 때쯤 여자가 문을 두드렸다.
너는 여자에게 그걸 어떻게 알았느냐고 물었다. 그러자 여자는 자신은 다 알 수 있는 방법이 있다고 대답했다. 자신을 ‘모든 것을 아는 여자’라고 소개하면서. 너는 의심스러움을 감출 수 없어서 여자에게 신이라도 되는 것이냐고 질문을 이었다.
“어떻게 보면 그렇지. 모든 것을 알고 모든 것을 행하는 사람. 그것을 무엇이라고 부르고 믿느냐에 따라서 나는 신이기도 하고 무존재이기도 해. 유령이면서, 악마이기도 하지. 하여튼 내가 말하고 싶은 건 그게 아니야. 너, 어쩌자고 달을 먹어버린 거야? 그게 얼마나 큰 일인지 알기나 하는 거야?”
너는 고개를 젓는다. 여자는 너를 어제 울고 있었던 남자처럼 한심스럽게 바라보며 한숨을 푹 쉰다.
“나츠메 소세키가 달에서 사랑을 보았듯이 어떤 사람들은 달에서 바다를 봐. 그것을 ‘달의 바다’라고 부른다지? 그리고 그 사람들은 달의 바다에서 슬픔을 마주하는 거야.”
너는 달에서 사랑도, 슬픔도 본 적이 없었다. 너에게 달은 그냥 달이었고 변기물에 빠진 똥덩어리일 뿐이었다. 그러므로 여자가 하는 말이 무엇을 뜻하는지 전혀 알 수 없었다. 여자 역시 네가 이해하지 못했다는 것을 알아차리고는 말을 이어나갔다.
“기억해. ‘슬픔의 신앙은 바다’. 그 많은 눈물들이 모여 바다를 이룬다고 슬픔을 아는 사람은 믿고 있어. 맞아. 덧없는 생각이고 이루어질 리 없는 기적이지. 하지만 그런 기적을 믿는 게 신앙 아니겠어? 어쨌든 그런 달을 네가 훔친 거야. 즉 너는 누군가의 믿음을 훔친 거고 기적을 훔친 거지. 동시에 나의 존재를 훔친 것이기도 해. 사람들은 신이 있고 믿음이 있다고 생각하지만 동시에 이런 생각도 가능하거든. 믿고자 하는 마음이 있기 때문에 신이 있는 것이라고 말이야. 그러니까 너는 슬픔의 신이기도 한 나를 이 세상에서 제거하려고 한 거야. 한 마디로 반역이지.”
여자는 날 선 표정으로 너를 바라보았다. 여자의 눈동자는 그 안에 영원히 타오르는 불꽃이 있는 것처럼 잠깐동안 붉게 반짝거렸다. 여자의 눈동자를 응시하자 너는 그 불꽃에 자신이 타오르게 될지도 모른다는 막연한 불안감에 휩싸였다.
“원래대로라면 징벌을 내려야겠지만 달을 먹어버렸다면 이야기가 달라지겠지. 달을 먹은 것만으로도 너에게는 충분한 처벌이 될 거야. 잘 들어. 앞으로 너에게는 큰일이 닥칠 거야. 그건 곧 있으면 경험하게 될 테니까 알아만 두라고. 하지만 나는 관대하니까 너에게 기회를 줄게. 앞으로 있을 일이 도저히 감당되지 않는다면 나를 찾아와. 알겠지? 그럼 이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