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녁이 될 때까지도 좀처럼 잠에서 깨지 않으려 하던 너의 식욕은 갑자기 자정이 돼서야 너에게 말을 걸어왔다. 발 끝에서부터 조금씩 들끓기 시작하더니 너의 생각과 모든 욕구를 태워버렸다. 너는 냉장고를 열어 뒤적거렸다. 그러나 냉장고에는 미리 사다 놓은 소주 몇 병과 열무김치만 놓여 있었다. 너는 있는 것만이라도 먹어야겠다는 마음에 찬통을 꺼냈다. 그러나 찬통 속에 있는 열무김치는 이미 썩다 못해 흰 곰팡이 마저 슬어있어서 도저히 먹을 수 없었다.
그때 너는 라면을 생각해 냈다. 식당도 모두 문을 닫을 시간이지만 라면이라면 살 수도 있다고 너는 생각했다. 그러자 너의 식욕은 더 구체적이고 집요해졌다. 마치 몸속에서 유령처럼 은밀히 돌아다니다가 마침내 라면의 형태가 되어 뇌 속을 부글부글 끓게 만드는 것만 같았다. 너는 라면을 제외하고는 어떤 생각도 할 수 없었다. 너는 직감적으로 알아차렸다. 고작 라면 한 봉지일 뿐인데도. 라면을 사지 않는다면, 라면을 끓여 먹지 않는다면 자신은 더 이상 잠을 자거나 밥을 먹을 수도 없게 될 것이라고, 결국에는 몸을 일으킬 힘마저 없어져서 냉장고 속의 열무김치처럼 주변에게서 잊히며 썩어갈 것이라고. 그런 생각들은 다른 사람들에게는 헛된 망상이었겠지만 너에게는 충분히 실현될 수도 있는 일이라는 것을 너는 너무나 잘 알고 있었다.
문제는 네 집 근처에는 라면을 살 곳이 없다는 것이었다. 네가 살고 있는 주공아파트는 지어진 지 삼십 년이 넘은 낡은 건물인 데다가 근처에는 여러 공장들이 줄지어져 있었다. 아파트 상가에는 일찌감치 문을 닫고 들어가는 구멍가게만 있었기 때문에 라면 한 봉지를 사기 위해서는 편의점까지 갔다 오는 수밖에 없었다.
너는 아파트 밖으로 나와 맞은편에 있는 자그마한 공원이 있는 쪽으로 걸었다. 공원을 가로질러 가는 것이 가장 가까운 편의점으로 가는 제일 빠른 방법이었다. 초가을이 지나면서 이른 새벽 공기는 제법 겨울의 차가움을 닮아가고 있었다. 걸치고 있는 밤색 후드 집업과 바닥이 다 닳아버린 낡은 슬리퍼로는 추위를 이기기 힘들어져서 너는 빠른 걸음으로 신호들을 가로질러 갔다.
양 옆으로 공장을 끼고 있는 공원은 새벽이 되자 굉장히 어둡게 변해 있었다. 공장이 끝날 시각이면 어차피 근처에 올 사람이 없다고 생각했는지 인도에 있는 가로등은 고쳐질 생각을 하지 않았고 오직 공원에 놓여 있는 가로등 하나만이 달처럼 밝게 빛나고 있었다.
네가 어둠을 헤치며 빛이 희미하게 번지고 있는 공원 안쪽으로 걷고 있을 때였다. 어디선가 누군가 훌쩍이는 소리가 들렸다. 너는 울음소리가 들리는 곳으로 천천히 걸어갔다. 가로등 불빛이 점점 밝게 퍼지면서 너의 시야가 또렸해졌다. 공중화장실 앞에 놓인 벤치에 남자 한 명이 앉아 있었다. 그 남자는 서럽게 울면서 손으로 눈가를 훔치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