거절하지 못한 마음이 지불하는 비용
저는 팔랑귀였습니다.
귀가 얇다는 소리를 참 많이도 듣고 살았지요. 농담처럼, 혹은 별명처럼 웃으며 던지는 말들 속에 담긴 진실은 저를 오래도록 긁어댔습니다.
'나는 왜 이렇게 쉽게 믿는 걸까' 하고 말입니다.
제주도 시골쥐가 서울에 갓 상경해 출판사에 입사하기 전, 작은 무역회사에서 일할 때부터 그랬습니다. 사무실에는 남자 사장님 두 분과 저, 달랑 셋뿐인 조용하고 심심한 회사였어요. 한 사장님은 회의 때마다 제 얼굴에 침을 어찌나 튀기시던지... 저는 매번 속으로 '내 기필코 이 회사를 곧 그만두리라' 다짐하곤 했습니다.
그런 심심한 회사에서 사장님들이 영업을 나가시면, 저는 혼자 사무실을 지키며 일본 무역 관련 책을 번역하며 무료함을 달랬습니다. 오피스텔 단지라 그런지 잡상인이 유독 많이 찾아왔지요. 그리고 저는 늘 그들의 말에 너무나 쉽게 마음을 열어버렸습니다.
하루는 농협에서 왔다며, 몸에 좋은 청둥오리 엑기스를 반값에 판다고 하더군요. 당시 제 월급이 100만 원이었는데, 12만 원이나 주고 덜컥 사 먹었습니다. 하지만 돌아온 것은 건강이 아니라 온몸을 뒤덮은 두드러기였습니다. 그때 거울 속 제 얼굴에는 분노보다 ‘내가 왜 이렇게 쉽게 믿었을까’ 하는 창피함이 가득했습니다.
또 한 번은 퇴근길에 아주머니 두 분에게 팔짱을 낀 채 끌려가 강남의 한 에스테틱에 도착한 적도 있습니다.
“공짜 서비스니까 한 번만 받아보라”는 말에 속수무책으로 따라간 결과였죠. 한 시간 마사지를 받은 후 들은 말은 충격적이었습니다.
“이 세트는 이제 숨나 씨 거고요, 마사지 10회 포함해서 100만 원입니다.” 그 자리에서 거절할 용기가 없던 저는 결국 5개월 할부로 결제했고, 일 년 동안 매달 성실히 마사지를 받으러 다녀야 했습니다.
고등학생 때도 비슷했습니다.
“전화번호에 행운의 7이 있으니 정수기를 공짜로 준다”는 상담원의 말에 홀라당 넘어가 설치비 10만 원을 엄마에게 받아냈지요. 그때 저를 바라보던 엄마의 침묵 어린 눈빛은 지금도 선명합니다.
이런 일들이 켜켜이 쌓이면서, 제 별명은 자연스럽게 ‘팔랑귀’가 되었습니다.
시간이 흘러 멀리 호주까지 왔지만, 저는 변하지 않았습니다.
몸이 아파 카이로프랙틱에 갔더니 “미국에서 특수 제작한 맞춤형 깔창을 신어야 통증이 잡힌다”는 말에 또 마음이 흔들려 650불짜리 깔창을 두 쌍이나 맞췄습니다. 나중에야 그것이 100불 내외면 살 수 있는 물건이라는 걸 알았지만 이미 늦은 후였죠. 남편은 허탈하게 웃으며 말했습니다.
“혹시 몰라, 플라시보 효과라도 볼지.”
국가는 바뀌었지만, 저는 그대로였습니다.
머릿속으로는 분석하고 계산하고 의심하는 ‘조조’를 품고 살면서도, 결정적인 순간에는 상대의 확신 어린 말과 친절한 태도 앞에서 허무하게 무너지고 맙니다.
이제야 깨닫습니다. 제가 사람을 무서워했던 건, 나를 속이는 타인이 아니라 너무나 쉽게 믿어버리는 나 자신을 신뢰하지 못했기 때문이라는 것을요.
그럼에도 저는 여전히 팔랑거립니다. 그것이 제 숙명임을 압니다. 다만 이제는 조금 달라졌습니다.
저는 속는 사람도, 바보도 아닙니다. 그저 누군가의 말을 진실로 믿고 싶어 하는 선한 마음을 가진 사람일 뿐입니다. 650불짜리 깔창처럼 값비싼 대가를 치를 때도.
저는 신발을 신으며 속으로 중얼거립니다.
‘조조야, 다음엔 신발 끈 묶기 전에 한 번만 더 생각하자. 제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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