짜릿하고 반짝반짝 빛나던 세상에서 뒹굴다가
어느 날 문득,
매일 똑같은 하루를 반복하고 있음을 깨달았습니다.
‘어느 날 문득’이라고 적었지만,
실은 오래전부터 알고 있었습니다.
알면서도 모르는 척했고,
지루함을 책임감이라는 말로 덮어두었으며,
체념을 성숙함이라 가장했습니다.
의미 없이 지나가는 일상,
그저 그런 평범함의 연속이
어느새 내 세상의 전부가 되었습니다.
문제는 평범함 그 자체가 아니라,
그 안에서 점점 아무런 감정도 느끼지 못하게 된
나 자신이었습니다.
하루를 살아내고,
주어진 역할을 수행하며
엄마답게,
어른답게,
문제없이 굴었지만
정작 단 한 번도
‘나답게’ 숨 쉬지 않았다는 사실을
끝내 인정하고 싶지 않았습니다.
그렇게 나는 삶의 테두리 안에서
점점 얇아지고 있었습니다.
무료함이라는 허영의 끝은
나의 폐부 속 나약함을 사정없이 찔러대더니,
결국 ‘우울증’이라는 이름을 달고
내 곁에 주저앉았습니다.
갑작스러운 방문은 아니었을 겁니다.
뱀파이어가
초대받지 못한 집에는 얼씬도 못 하듯,
이미 문 앞을 오래 서성이다
내가 문을 열어주기만을 기다리던
손님에 가까웠겠지요.
병명이 붙기 전부터
나는 이미 충분히 망가져 있었습니다.
다만 이름이 생기자
설명이 쉬워졌을 뿐입니다.
누군가는 이렇게 말할지도 모릅니다.
“배부른 소리 하고 있네.
먹고살기 힘들어 아등바등하는 사람도 있는데
호강에 겨웠어.”
부끄럽게도 나 역시
그렇게 생각했습니다.
그래서 더 입을 다물었습니다.
이 정도 감정은 사치라고,
이 정도 무기력은 변명이라고,
엄마가 이러면 안 된다고
스스로에게 매일 잔소리를 퍼부었습니다.
하지만 그 가혹한 질책은
단 한 번도
나를 나아지게 하지 않았습니다.
오히려 나를 더 조용히,
더 깊은 심연 속으로
가라앉혔을 뿐입니다.
알 수 없는 공허함과
끝없는 터널 속에 갇힌 듯한 불안감은
원치 않아도 조용히 곁을 지키며
서서히 나를 잠식해 갔습니다.
나는 그저 그 감정이
잠시 스쳐 지나가는 줄로만 알았습니다.
기분 탓이라고,
시기의 문제라고,
조금 쉬면 괜찮아질 거라 믿었습니다.
그런데 돌이켜보니
지난 3년 동안
오히려 내가
그 우울을 거머리처럼 붙들고
놓아주지 않았던 것 같습니다.
손을 놓으면
마주해야 할 것들이
너무 많았으니까요.
어쩌면 나에게는
‘우울’이라는 허울 좋은 핑계가
필요했는지도 모릅니다.
내가 이루고자 했던 것과
끝내 이루지 못한 것 사이의
거대한 괴리를
정면으로 마주하지 않아도 될 이유,
도망칠 출구가
간절했는지도 모릅니다.
도망쳤다고 말하기엔
너무 오랫동안 제자리에 멈춰 있었고,
버텼다고 말하기엔
너무 쉽게 모든 걸 내려놓아 버렸습니다.
그 애매한 상태가
가장 나를 닮아 있었습니다.
나는 그렇게
세상과 단절되기를 선택했습니다.
선택적 고립.
혼자만의 시간.
의외로 나쁘지 않았습니다.
아니, 오히려 편했습니다.
아무것도 증명할 필요가 없었고,
비교당하지 않아도 되었으며,
괜찮은 척 애쓰지 않아도 되었으니까요.
그 고요함은
회복이라기보다는
잠시 숨을 멈춘 상태에 가까웠습니다.
궁금한 소식들이 있었을지도 모르지만
애써 외면하며
철저히 혼자이기를 즐겼습니다.
아니,
즐기고 싶어 했습니다.
그렇게 3년이 지난 지금,
이제야 내 이야기를 써보려 합니다.
잘 정리된 이야기 말고,
거창한 교훈이나
보기 좋은 이야기 말고,
지난날의 과오와 쓰라린 경험,
그럼에도 불구하고 좋았던 나날들과
차마 말하지 못했던 비겁함까지
모두 담아보려 합니다.
이 글은 해답이 아닙니다.
대단한 다짐도,
극복담도 아닙니다.
그저 숨이 막힐 때
글로 숨을 쉬며 버텨온
기록에 가깝습니다.
삶은 흔히
‘단짠단짠’의 연속이라고들 합니다.
쓴맛, 신맛, 새콤한 맛, 매콤한 맛…
사람들은
인생이 다채로워야 한다고 말하지만,
나는 왜
하필 무미건조한 맛을
선택했을까요.
아마 그때의 내게는
아무 맛도 느끼지 않는 상태가
가장 덜 아픈 선택이었을 겁니다.
너무 많은 맛에 허우적대다
혀가 마비되어
이미 감각이 과부하되어버렸으니까요.
가끔은
그런 쉬어가는 때가
필요한 사람도 있습니다.
아니,
쉬어가지 않으면
부서져 버리는 사람이 있습니다.
아무것도 하지 않음으로써
간신히 무너지지 않고
버티는 사람도 있으니까요.
그러니 제발
나의 삶을,
그리고 타인의 삶을
쉽게 평가하거나
함부로 재단하지 말아 주세요.
당신이 내 입장이 된다 한들
결코 이해하지 못할 수도 있습니다.
그건 당신이 부족해서가 아니라,
각자의 삶은 결국
각자만이 온전히 견뎌낼 수 있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그러니 그저
‘그런가 보다’
인정해 주세요.
그리고
기다려 주세요.
그 기다림의 끝이
만남이 아닌 이별이 된다 해도,
그 또한
하나의 인생이고
선택이며
각자의 사정일 테니까요.
언제 또 그가 내 옆에 와서
조용히 어깨를 두드리며
속삭일지도 모릅니다.
“친구, 오랜만이야.
다시 함께하는 게 어때?”
그와 어깨동무를 하고
다시 털썩 주저앉아 버릴지,
그 손길을 뿌리치고
혼자 걸어갈지
아직은 모릅니다.
하지만 분명한 건
하나입니다.
앉아 있든,
걸어가든,
도망치든…
그래도 나는
숨을 쉬고 있다는 것.
그 사실 하나만으로도
지금의 나는
간신히,
아주 간신히
여기까지 와 있습니다.
그러니
그걸로 괜찮습니다.
아니,
지금은
그걸로 충분합니다.
정말로요.
지금 이 순간만큼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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