관계의 유통기한

결국 덜 필요한 사람이 떠난다

by 숨나

나의 인간관계는 대체로
자연스럽게 정리되는 편입니다.
누군가는 차갑다고 말하겠지만,
나는 그저 고요히
내 자리를 지켰을 뿐입니다.


붙잡지도,
매달리지도,
애써 나를 증명하려 들지도 않았습니다.


그런데 이상하게도
사람들은 하나둘
삶의 궤도 밖으로 사라졌습니다.




물론 모든 이별이 조용했던 건 아닙니다.
도저히 견딜 수 없는
선을 넘는 이들을
모질게 밀어내기도 했습니다.
그 순간만큼은
냉정했고,
때로는 잔인했습니다.


누군가를 해치기 위함이 아니라
오직 나를 지키기 위해 선택한
필사적인 ‘손절’이었습니다.


그렇게 억지로 도려낸 자리와
자연스레 멀어진 흔적들이 뒤섞여
지금의 내 삶이 되었습니다.




어렸을 땐 모든 관계를
붙잡고 살아야 한다고 믿었습니다.
사람 사이에는
반드시 유지해야 할
적정 온도가 있다고 생각했으니까요.


자주 연락하지 않으면
소홀한 사람 같았고,
먼저 챙기지 않으면
냉정한 사람처럼 보일까
두려웠습니다.
그래서 늘
내가 먼저 움직였습니다.


관계가 흐트러질까 봐
시간과 에너지를
가불 해주며 살았습니다.


돌이켜보면
그것은 애정이라기보다
불안과 집착에
가까웠는지도 모르겠습니다.




지금은 그렇게 살지 않습니다.
그리고 내가 멈춘 순간부터
관계는 아주 정직하게
반응하기 시작했습니다.


서로를 필요로 했던 애정은
‘거리’라는 핑계 뒤에 숨어
식어갔습니다.


조용히,
그러나 아주 확실하게요.




연락은 줄었고
안부는 의무가 되었으며
마침내 마음에서 자리를 잃었습니다.


눈에서 멀어지면
마음에서도 멀어진다는
그 낡은 말은 생각보다 훨씬
잔인하고 정확했습니다.




SNS와 메신저라는 편리한 도구 덕분에
마음쯤은 얼마든지
‘인공호흡’ 시킬 수 있는 시대입니다.
버튼 몇 번이면 끊긴 인연도
이어지는 것처럼 보이니까요.


하지만 어느 날 문득
그 연명 장치를 스스로 끊어버렸습니다.
견딜 수 없이
피곤했기 때문입니다.




의무적인 안부와
형식적인 공감,
진심이 빠진 관심을
연기하듯 주고받는 일이
구역질 나게 지겨워졌습니다.


그래서 관계보다
혼자를 선택했습니다.
도망이 아니라 선택이었다고,
지금도 스스로에게 되뇌어 봅니다.




시간은 잔인할 만큼 빨랐고
선택의 결과는 선명했습니다.
그들 사이에서 내 자리는
흔적도 없이 사라져 있었습니다.




머리로는 충분히 이해합니다.
세상은 원래 그렇게
흘러가는 것이니까요.
그런데 마음은
왜 자꾸 말을 걸까요.

사실은 참 서운하다고.

내가 애써 쌓아 올리지 않으면
존재조차 하지 않는 관계였다니.
조금만 손을 놓으면
아무 일 없었다는 듯
무너져 버리는
모래성 같은 인연이었다니.


나의 진정성은
그들에게
그저
잠시 스쳐 지나가는
‘한 시절’이었을 뿐입니다.




‘시절인연.’
참 좋은 말이지만,
때로는 너무 쉽게 쓰이는
비겁한 변명처럼 들립니다.


나 또한 누군가에게
같은 방식으로
상처를 주었겠지요.
아마 생각보다 훨씬 많이요.


인간은 결국 자기중심적이고,
타인의 마음을 끝까지 책임지는 일은
귀찮고 버거운 법이니까요.


나쁘게 헤어진 건 아니라고,
그때는 좋았으니 됐다고
합리화해 보지만,
이런 말들은 대개
섭섭함을 들키지 않기 위한
안간힘에 가깝습니다.




괜찮다고 다독이다
끝내 눈물이 맺힐 때쯤
비로소 깨닫습니다.


관계는
노력 없이 유지되지 않으며,
그 노력은 언제나
어느 한쪽에서 더 많이
쏟아져 나왔다는 것을요.


결국 아쉬운 사람이
조금 더 참았고,
조금 더 먼저 손을 내밀었으며,
조금 더 마음을 졸였던 것입니다.




우리는
서로가 서로를
덜 아쉬워하게 되었고,
그래서 멀어졌습니다.


그런데 나는 왜 여전히
이쪽 끝에 서서
당신들을 바라보고 있을까요.

에라이,
정말이지
끝까지 바보처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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