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이지 않는 시선 앞에서의 나
어느 블로그에 글을 올리기 시작하며 흥미로운 사실 하나를 발견했습니다. 익명성은 사람에게 거짓을 허락하는, 아주 느슨한 자유를 준다는 것이었습니다.
분명 글 옆에는 ‘안 읽음’이라는 글자와 함께 숫자 0이 선명히 박혀 있는데, 댓글창에는 “포스팅 잘 읽었습니다”라는 문장이 정갈하게 놓여 있었습니다.
텍스트를 읽었다는 사실보다, 읽었다고 말하고 싶은 마음이 더 앞섰던 걸까요. 그 한 줄의 문장은 익명이라는 가벼운 가면이 사람에게 얼마나 쉽게 씌워지는지를 보여주는 듯했습니다.
어쩌면 그것은 인간이 가진 ‘보이기 위해 존재하는 욕망’과도 연결되어 있었을지 모릅니다.
익명성은 사람을 해방시킵니다. 아무도 나를 알지 못하는 낯선 외국의 거리에서 느끼는 해방감처럼 말입니다.
타인의 시선에서 벗어난다는 안도감은 사람을 조금 더 대담하게, 때로는 무심하게 만듭니다. 그 자유는 종종 선을 넘고, 타인의 마음을 스치듯 상처 내기도 합니다.
저 역시 다르지 않습니다. 그 또한 인간이 가진 자연스러운 단면이라 생각합니다.
하지만 이상하게도 익명성의 자유가 늘 편안하지만은 않았습니다. 가면 뒤에 숨은 내 글과 말들이 정말로 ‘진실’을 담고 있는지, 아니면 단지 순간의 욕망을 투영한 것인지 스스로 점검하게 되었으니까요.
익명이라는 가면은 나를 더 솔직하게 만들면서 동시에 더 위험하게도 만들었습니다.
가끔은 인생이 영화 ‘트루먼쇼’ 같다는 생각이 들 때가 있습니다. 혹시 누군가, 어딘가에서 나를 지켜보고 있는 건 아닐까 하는 근거 없는 상상 말입니다.
어린 시절 우리는 모두 자신이 세상의 중심이라고 믿습니다. 저 역시 무엇이든 될 수 있을 거라 생각했습니다. 하지만 어른이 되어 돌아보니, 저는 그저 수많은 사람 중 한 명에 지나지 않았습니다. 특별할 것 없는 주인공이죠.
그럼에도 마음 한구석에는 여전히 어린 시절의 중심 의식이 남아, 내가 무심코 던진 말이나 글이 누군가의 하루를 흔들 수 있다는 두려움이 있습니다.
내 삶이 트루먼쇼라고 가정해 보는 순간, 저는 작은 행동 앞에서도 잠시 멈추게 됩니다.
누군가를 미워하며 뱉었던 말들, 옹졸하고 치졸했던 마음의 흔적들이 혹시 기록처럼 영원히 남는다면 어쩌나 하는 생각 때문입니다.
그 조심스러움은 나를 다시 제자리로 돌아오게 만듭니다. 댓글 하나를 다는 순간에도, 익명이라 안심하면서도 혹시 누군가가 지켜보고 있을지 모른다는 긴장감이 마음 한편에서 끊임없이 맴돕니다.
지금은 단 한 사람, 조언을 할 때는 가장 냉철하지만 결국은 어쩔 수 없이 내 편이 되어주는 남편에게만 제 속마음을 털어놓고 웃을 수 있습니다. 아직은 여러분께 제 민낯을 온전히 내보일 용기가 없습니다. 밴댕이 소갈딱지 같은 제 속마음은 조금 더 시간이 흐른 뒤에 천천히 꺼내 보이도록 하겠습니다.
만약 인생이 정말 트루먼쇼라면,
누군가 보고 있다고 믿는다면,
적어도 제 행동은 조금 더 정갈해지지 않을까 합니다.
세상은 넓고 사람들은 각자의 방식으로 살아갑니다. 저와 다른 생각을 가진 분들도 많을 것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저는 그렇게 믿어보려 합니다.
그저, 그렇다는 이야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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