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년의 명함과 이별하고 마주한 낯선 나
3년 전, 나는 20년간 손에서 놓지 않았던 명함과 작별을 고했다.
뜨거운 햇볕이 내리쬐는 한여름, 회사를 나오던 순간 지열을 머금은 공기는 뜨거웠고 역설적으로 나의 머릿속은 시원한 해방감으로 가득했다.
엘리베이터를 타고 지하로 내려가며 나의 화려하고도 고단했던 시절이 막을 내리고 있음을 느꼈다.
오랫동안 쌓아온 경력, 높은 연봉, 그리고 그 이름 뒤에 숨겨진 사회적 지위와 헤어지는 일은 불빛 하나 없는 캄캄한 길을 홀로 걸어가야 하는 두려움이었다.
짐을 정리한 박스를 싣고 주차장을 빠져나올 때, 백미러 속으로 멀어지는 회사 건물을 보며 나는 묘한 떨림을 느꼈다.
주변에서는 "조금 더 버티지 그러냐", "그만한 대우를 해주는 곳이 어디 있다고 그러느냐"며 걱정 섞인 만류를 했고, 나 역시 수없이 자문했다. '정말 괜찮겠어? 내일부터 갈 곳이 없다는 게 어떤 건지 짐작이나 가?' 하지만 내 안의 목소리는 한여름의 소나기처럼 단호했다. "더 이상 이건 나의 삶이 아니다."
구체적인 계획 없이 광야로 나선 길이었지만, 사표를 던지고 회사 문을 나서는 순간 나는 처음으로 '진짜 숨'을 쉬기 시작했다.
가슴을 짓누르던 무거운 돌덩이가 사라진 자리로 신선한 공기가 밀려 들어왔다.
나에게 퇴직은 마침표가 아니라, 인생이라는 긴 여정에서 내가 선택한 가장 용감한 '첫 번째 도전'이었다.
퇴직 후 찾아온 온전한 내 시간은 더없이 달콤했다.
회사 생활 동안 취미란 나에게 가닿을 수 없는 사치였으나, 이제는 서랍 속에 묵혀두었던 사진첩을 꺼내듯 하고 싶었던 일들을 하나씩 꺼내기 시작했다.
첫 해는 꽤나 바빴다. 마크로비오틱 요리, 소잉, 가드닝 수업을 들으며 하루를 채웠다. '이렇게 하다 보면 언젠가 진짜 꿈을 찾을 수 있겠지'라는 희망을 품고…
봄에는 갓 피어난 쑥의 향긋함을 맡으며 칼날 끝에 전해지는 채소의 단단함을 느꼈고, 여름에는 보랏빛 가지를 쪄내며 자연의 색에 감탄했다. 가을과 겨울, 계절마다의 제철 채소를 다듬고 정성스럽게 볶고 끓이는 과정은 마치 흩어진 나 자신을 다시 찾아가는 길을 걷고 있는 듯했다.
재봉틀 앞에 앉으면 세상의 소음은 차단되었다. 드륵드륵 소리를 내며 한 땀 한 땀 박아 내려가는 재봉틀 소리는 어느새 맑은 오케스트라처럼 귀를 간지럽혔고, 엉킨 실타래가 풀리듯 복잡했던 마음이 평온해지는 마법 같은 시간을 보냈다.
가드닝을 할 때면 흙 속에 손을 파묻고 작고 연약한 식물들을 아기 다루듯이 조심스레 매만졌다. 물뿌리개에서 떨어지는 물방울 소리와 함께 그들이 내는 아주 작은 숨소리에 귀를 기울이려 애쓰는 정성의 시간을 보냈다.
그러던 어느 날, 평소 동경하던 가드닝 샵의 채용 소식을 접했다. 노을이 길게 드리워진 거실 소파에 앉아 스마트폰을 보던 중이었다. 실전을 경험할 기회였으나, 내 손가락은 끝내 '지원하기' 버튼을 누르지 못했다. 화면의 하얀 빛이 눈부시게 느껴졌고, 손바닥에는 기분 나쁜 습기가 찼다. "겨우 몇 개월 배운 실력으로 되겠어? 가서 실수라도 하면 어떡하려고?", “아니 아직 더 쉬어도 되지 않아”라는 소심한 검열관이 내 안에서 목소리를 높였기 때문이다.
이런 망설임은 반복되었다. 소잉을 배우며 나만의 키친 패브릭을 만들어보고 싶다는 꿈을 꿨고, 돈을 못 벌어도 재미있을 것 같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막상 일을 구체화하려 할 때마다 디자인의 완벽함과 제작 기술의 미숙함을 탓하며 멈춰 섰다.
가슴 두근거리는 꿈을 꾸면 어김없이 나타나는 '나'라는 검열관은 나의 다음 행동을 주저하게 만들기 시작했다.
그 순간 깨달았다. 퇴직이 자유를 주었지만, 내 마음속 '완벽주의'라는 감독관은 여전히 나를 감시하고 있었다.
나는 왜 그 얇고도 견고한 선 하나를 쉽게 넘어가지 못하는 것일까!
내가 선을 넘지 못하고 망설였던 이유를 기시미 이치로의 ‘미움받을 용기’를 만나고서야 비로소 깨달았다. 늦은 밤, 스탠드 조명 아래서 그 책을 읽으며 나는 몇 번이고 문장을 되새겼다.
아들러 심리학은 나의 상태를 회피가 아닌 날카로운 통찰로 꿰뚫어 본다. 아들러는 나의 이런 생각들을 '목적론'으로 설명하고 있다.
나는 실력이 부족해서 도전하지 못한 것이 아니라, '실패해서 상처받고 싶지 않다'는 목적을 달성하기 위해 '실력이 부족하다'는 핑계를 선택한 것이다. 완벽주의는 나를 지켜주는 갑옷이 아니라, 사실은 상처받기 싫어하는 마음이 만든 비겁한 도망칠 구실이었다.
아들러는 나에게 필요한 것은 뛰어난 능력이 아니라 '자기수용'이라고 말한다.
이는 내가 가진 기능이 열등하다고 해서 나의 존재 가치까지 열등한 것은 아님을 인정하는 자세다. 가드닝 실력이 서툰 것은 '기능'의 문제일 뿐, 그 도전에 나서는 나의 '가치'를 훼손하지 않는다.
박음질이 삐뚤어진 것은 재봉의 기술이 부족한 것일 뿐, 그것을 만드는 나의 진심이 부족한 것은 아니다.
또한 그는 '평범해질 용기'를 가져야 한다고 조언한다. 나는 늘 특별해야 하고 완벽해야만 쓸모 있는 존재라고 배워왔다. 경쟁 사회에서 살아남기 위해 '1등' 혹은 '완벽'이라는 단어에 나를 맞춰왔던 것이다.
하지만 아들러가 말하는 평범함은 나태함이 아니다.
그것은 타인의 인정을 갈구하지 않아도 있는 그대로의 나로서 충분히 가치 있다고 믿는 가장 강력한 용기였다.
서툰 박음질과 초보자의 모습을 기꺼이 보여줄 수 있을 때, 나는 비로소 완벽이라는 감옥에서 걸어 나올 수 있다. 완벽하지 않은 나를 타인에게 보일 수 있는 것, 그것이 진정한 자유의 시작임을 깨닫기 시작했다.
20년 넘게 우리를 지탱해온 것은 '유능함'이라는 이름의 단단한 갑옷이었다.
조직에서 살아남기 위해 우리는 늘 완벽해야만 했고, 결과로 자신을 증명해야 했다.
하지만 퇴직 후 마주한 제 2의 인생에서 그 무거운 갑옷은 오히려 우리의 발걸음을 무겁게 만들 뿐이다.
우리 세대는 이제 100세를 넘게 살아갈 운명이라고 한다.
50대 중반, 이제 우리는 조금 더 가벼워져도 괜찮지 않을까!
새로운 꿈을 향해 발을 내딛는 순간 우리를 주춤하게 만드는 목소리에 귀를 닫아야 한다.
"제대로 못 할 거면 안 하는 게 나아"라는 말은 우리를 지켜주는 충고가 아니라 성장을 가로막는 저주다.
실패가 두려워 시작조차 하지 않는다면, 우리는 영영 완벽이라는 감옥의 수인으로 남게 될 것이다.
오늘 하루, 의도적으로 '완벽하지 않은 시작'을 해보기를 권하고 싶다.
나는 매일 정성스레 나를 위한 식사를 만들고, 때로는 모양이 흐트러진 그 어설픈 모습을 사진으로 찍어 SNS에 올린다.
누군가의 칭찬을 바래서가 아니라, '이 정도면 충분하다'고 나 자신을 응원하기 위해서다.
또 어설픈 문장으로 블로그에 글 한 줄을 남긴다. 완벽한 작가가 아니어도 내 생각을 나눌 수 있다는 사실이 나를 자유롭게 한다. 이런 작은 용기들이 모여 내 인생의 지도를 다시 그려나가는 힘이 된다.
완벽이라는 감옥의 열쇠는 이미 우리 손에 쥐어져 있다.
그 문을 열고 나와 서툴지만 자유롭게 당신만의 춤을 추기 시작하길 바란다.
인생 2막의 진짜 행복은 완벽한 결과가 아니라 시작하는 그 찰나에 머물러 있기 때문이다.
서툴러도 괜찮다.
우리는 살아있는 것만으로도 이미 충분히 가치 있는 존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