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 타인의 시선이라는 사슬을 끊어내다

인정욕구라는 밀림에서 잃어버린 '내 마음'

by 태연하게

직장 생활을 하는 20년 동안, 나는 정작 내가 어떤 사람인지 의식할 틈조차 없었다.
돌이켜보면 나의 하루는 온통 타인의 생각과 시선에 사로잡혀 있었다.
출근해서 퇴근하는 순간까지 상사와 후배, 동료들의 표정을 살피고 그들의 감정이 어떤지 파악하는 것이 가장 중요한 일 중 하나였다.
사회생활이란 으레 타인의 기분을 먼저 살피는 것이 기본으로 장착되어야 한다는 생각이 내 마음 깊은 곳에 견고하게 자리 잡고 있었던 듯하다.
그것이 사회생활을 영리하게 잘하는 법이라는 착각이 나를 지배하고 있었다.


그들의 요구에 가장 적절한 응대를 하고, 그들이 원하는 정답을 찾아내어 건네는 일에 온 에너지를 쏟았다. 그래야만 '능력 있다'는 인정이 돌아왔고, 그 인정이 나를 증명해주는 유일한 성적표 같았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 성적표의 점수가 올라갈수록 정작 나라는 존재의 형체는 점점 희미해져 갔다.
나도 모르는 사이에 나는 타인의 반응에 따라 움직이는 메커니즘의 노예가 되어버렸다. 당시에는 내 마음이 어떠한지는 전혀 중요하지 않았다. 아니, 내 마음을 어떻게 들여다봐야 하는지, 내 감정을 어떻게 표현해야 하는지 그 방법조차 몰랐다는 것이 더 정확한 표현일 것이다.


밀림 같은 직장이라는 공간에서 나는 오직 타인의 기준에 맞추어 나를 재단하며 버텨왔던 것이다. 물론 그 시간들을 후회하지는 않는다. 그 치열함 덕분에 지금의 내가 있고, 최소한의 나를 지키며 그 긴 시간을 잘 완주해냈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다만, 지금에서야 비로소 알게 된 '과제 분리'나 '인정욕구에서 자유로워지는 법'을 그 때 알았더라면 어땠을까 하는 아쉬움은 남는다. 만약 그 지혜를 미리 알았더라면, 그토록 스스로를 몰아세우며 힘들게 버티지 않아도 되었을 텐데 말이다.


내가 이 글을 쓰는 이유는 바로 여기에 있다. 지금 이 순간에도 직장이라는 밀림 속에서 길을 잃은 이들에게, 나를 소중히 여기며 조금 더 나은 시간을 보낼 방법이 반드시 있다는 것을 알려주고 싶다.
나를 잃어버린 채 타인의 박수 소리에만 귀 기울이는 삶이 얼마나 고단한지 누구보다 잘 알기에, 이제는 그 사슬을 끊고 자신의 이름을 먼저 불러주라고 말하고 싶다.


내 인생의 리모컨을 되찾는 법

오늘 하루는 타인의 시선라는 무거운 짐을 잠시 내려놓고, 오직 자신만을 위해 숨을 쉬어보길 바란다.
나는 타인의 인정을 받기 위해 태어난 존재가 아니라, 자기 자신의 행복을 춤추듯 그려나가기 위해 존재하는 귀한 사람이다. 이제 그 누구도 아닌 자신의 마음에게 먼저 안부를 물어주자.


내가 직장에서 그토록 힘들었던 이유는 내 인생의 리모컨을 타인의 손에 쥐어 주었기 때문이다. 아들러 심리학은 이를 '인정욕구의 사슬'이라 부른다. 타인에게 인정받고 싶어 하는 마음은 자연스럽지만, 그것이 삶의 목적이 되는 순간 우리는 타인의 기대에 부응하기 위해 사는 '타인의 인생'을 살게 된다. 내가 아무리 열심히 달린들, 그 리모컨의 버튼을 누르는 사람이 타인이라면 나의 행복은 결코 나의 것이 될 수 없다.


이를 해결하기 위해 아들러가 제안한 것이 바로 '과제의 분리'다. 이것은 복잡하게 얽힌 인간관계의 고민을 단칼에 해결하는 가장 강력한 무기다.


핵심은 간단하다. '이것이 누구의 과제인가?'를 명확히 구분하는 것이다.
내가 최선을 다해 업무를 처리하는 것은 '나의 과제'이지만, 그 결과에 대해 상대방이 어떤 평가를 내릴지는 오로지 '상대방의 과제'다.
내가 후배를 진심으로 대하는 것은 '나의 과제'이나, 그 후배가 나를 어떻게 생각하고 따를지는 '후배의 과제'일 뿐이다.


나는 직장 생활 내내 타인의 과제에 함부로 침범하거나, 반대로 나의 과제에 타인을 들여보내며 스스로를 괴롭혔다.
타인의 감정과 평가라는, 내가 결코 통제할 수 없는 영역에 매달려 소중한 에너지를 소진했던 것이다.
하지만 과제를 분리하는 순간 놀라운 자유가 찾아온다. 내가 통제할 수 있는 '나의 진심'과 '나의 행동'에만 집중하고, 그 너머의 반응은 그들의 몫으로 담백하게 남겨두는 것. 이것이 바로 타인의 시선이라는 사슬을 끊어내고 내 인생의 주도권을 되찾아오는 유일한 길이다.


이 과제 분리의 마법은 비단 직장 생활에만 국한되지 않는다. 일상의 모든 관계, 특히 가장 가깝다는 부모님과 형제, 자매 사이에서도 매우 유용하다. 과제 분리를 의식하기 시작하면서 나는 그동안 내가 얼마나 많은 영역에서 상대의 경계를 침범하고, 또 침범당하며 살아왔는지를 알게 되었다. '사랑'이나 '가족'이라는 이름으로 서로의 과제를 대신 짊어지려 했던 것이 오히려 서로를 숨 막히게 하고 관계를 독으로 만들고 있었다.


이제는 조금씩 과제분리를 실천하는 것만으로도 관계를 바라보는 나의 시선이 놀랍게 바뀌고 있다.
상대의 기분에 함몰되지 않고, 나를 지키면서도 상대를 온전히 존중하는 법을 배우고 있는 중이다.


친구에게 보내는 메시지: 너의 마음을 먼저 살펴도 괜찮아

지금 직장이라는 거친 밀림 속에서 고군분투하고 있는 친구들에게 꼭 해주고 싶은 말이 있다.
당신이 그토록 애써 살피고 있는 타인의 기분보다, 지금 이 순간 당신의 마음이 어떤지가 훨씬 더 중요하다는 것을 잊지 말았으면 한다.


우리는 너무 오랫동안 타인의 정답을 맞히는 데만 익숙해져 왔다.
어릴 적 시험지부터 직장의 기안서까지, 정답은 늘 바깥에 있었다. 하지만 당신이 아무리 완벽한 해답을 내놓아도 모든 사람을 만족시킬 수는 없다. 타인의 평가는 그들의 시선이 투영된 결과물일 뿐, 당신이라는 존재의 본질적인 가치를 결정짓지 못한다. 그러니 조금은 이기적이어도 괜찮다. 타인의 과제에서 과감히 손을 떼고, 당신의 마음이 내는 작고 깊은 소리에 먼저 귀를 기울여야 한다.


"미움받을 용기가 생겼을 때, 비로소 인간관계는 가벼워진다"는 아들러의 말을 믿어보길 권하고 싶다.
모두에게 좋은 사람이 되려 애쓰지 말자. 모두에게 좋은 사람이 되려는 노력은 결국 모두에게 아무도 아닌 사람이 되는 지름길일 뿐이다. 당신이 당신 자신의 편이 되어줄 때, 직장은 더 이상 나를 갉아먹는 전쟁터가 아니라 나를 성장시키는 소중한 배움터가 될 수 있다.


오늘 하루는 타인의 시선이라는 무거운 짐을 잠시 내려놓고, 오직 나만을 위해 깊은 숨을 쉬어보길 바란다.
타인의 비위를 맞추느라 숨죽이고 있을 때, 당신의 고귀한 영혼은 서서히 시들어간다. 당신은 타인의 인정을 받기 위해 태어난 존재가 아니라, 자기 자신의 행복을 춤추듯 그려나가기 위해 존재하는 귀한 사람이다.
주변의 소음이 잦아들 때까지 기다리지 말고, 지금 당장 나의 내면으로 고개를 돌리길 바란다.
이제 그 누구도 아닌 당신의 마음에게 먼저 다정한 안부를 건넸으면 한다.

"오늘 참 고생 많았어, 네가 제일 소중해"라고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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