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찰서로 출근하는 N잡러 -제 1화 몸의 감각

N잡러의 눈치, 경찰의 촉

by 장경장

제 1화 몸의 감각
N잡러의 눈치, 경찰의 촉


1. 비 내리는 지하 주차장의 아이스링크


​"배달의 민족 주문~!"
​장마철이었다. 헬멧 위로 쏟아지는 비로 인해 내비게이션조차 볼 수 없던 날. 나는 맥도날드 로고가 박힌 노란색 오토바이를 몰고 빗속을 뚫고 있었다.


​당시 라이더들에게 비는 두려움이자 기회였다. 남들이 배달을 꺼릴 때 건당 수수료가 올라가기 때문이다.


나 역시 '돈'이 필요했다. 대학 등록금과 용돈을 벌기 위해선, 바퀴가 헛도는 공포쯤은 이겨내야 했다.
​가장 무서운 건 아스팔트가 아니었다. 바로 아파트 지하 주차장이었다.
오래된 아파트 지하 주차장의 에폭시 바닥. 빗물에 젖은 타이어로 그 위에 올라서는 순간, 바닥은 김연아 선수가 서 있는 아이스링크보다 더 미끄러운 빙판으로 변한다.
​"어, 어...!"
​목적지인 103동 입구 앞에서 브레이크를 살짝 잡았을 뿐이었다.

오토바이 뒷바퀴가 뱀처럼 춤을 췄다.

'넘어지면 음식값 물어내야 한다.

' 찰나의 순간, 내 머릿속엔 내 몸보다 햄버거 세트가 먼저 떠올랐다.

본능적으로 핸들을 꺾어 균형을 잡고 한쪽 발로 바닥을 지탱했다.
'끼이익-'
타이어 타는 냄새와 함께 간신히 멈춰 섰다. 등줄기에 식은땀이 비처럼 흘러내렸다.
​그때 나는 배웠다.

지도 앱이 알려주는 '최단 거리'가 늘 정답은 아니라는 것을.


맨홀 뚜껑과 횡단보도의 흰색 페인트 위는 지뢰밭처럼 피해 다녀야 한다는 것을.

내 머릿속엔 시내의 모든 골목과 요철,

신호 체계가 3D 지도처럼 그려지기 시작했다.


​[Police Insight: 골든타임의 감각]


경찰이 되고 난 후, 동료들은 내가 운전대를 잡으면 놀라곤 한다.
"코드 제로(긴급 출동)! 폭력 사건 발생!"
​무전이 떨어지는 순간, 내 머릿속엔 맥도날드 시절의 그 지도가 켜진다. 내비게이션은 큰길을 안내하지만, 나는 안다.

지금 이 퇴근 시간엔 저 사거리가 꽉 막혀 있다는 걸.
"샛길로 빠집니다. 꽉 잡으세요."
​나는 주저 없이 핸들을 꺾어 좁은 골목길로 파고든다.

빗길 순찰? 문제없다.

에폭시 바닥에서 춤추던 타이어를 제어하던 그 감각은 이제 112 순찰차를 안전하게 제어하는 기술이 되었다.
배달 음식이 식기 전에 도착해야 했던 그 절박함은, 이제 '피해자가 다치기 전에 도착해야 한다'는 사명감이 되었다.


맥도날드 라이더였던 나는, 이제 시민의 안전을 배달한다.

누구보다 빠르고, 안전하게.




2. 24시간 5분 대기조, 그리고 뒤통수의 추억


​"야! 운전 똑바로 안 해? 브레이크 밟는 느낌 나게 하지 말라니까!"
'짝!'
​뒤통수가 얼얼했다.

스물세 살, 엔터테인먼트 기획사 로드매니저 시절의 일상이었다.
뒷좌석에 탄 소속사 연예인은 예민함이 극에 달해 있었다.


스케줄은 빡빡했고, 서울의 교통 체증은 야속했다.

빨리 가야 하지만, 차가 흔들리면 안 된다는 모순적인 미션.

급정거라도 하는 날엔 여지없이 욕설과 손찌검이 날아왔다.
​내 삶은 없었다. 아니, '로그오프' 기능이 고장 난 컴퓨터 같았다.


새벽 2시에 숙소에 들어가 씻고 누우려 하면 문자메시지 소리가 띠링 하고 울렸다.
"야, 지금 당장 강남 가서 *** 데리러 와라."
"네, 알겠습니다. 형님."


​군말 없이 옷을 주워 입고 나갔다.

주말? 그런 건 사치였다.

토요일이면 사장님이 운영하는 가평 펜션으로 불려가 청소하고 베개 시트를 갈았다.

나는 매니저인가, 머슴인가. 자괴감이 들 때도 있었지만, 버텼다. 아니, 버티는 법을 배웠다.

​운전대를 잡은 내 눈은 도로가 아니라 '백미러'를 향해 있었다.

뒷좌석에 앉은 '상전'의 표정이 기분 좋은지, 나쁜지. 숨소리 하나, 미간의 주름 하나까지 읽어냈다.
'아, 지금 기분 안 좋구나. 라디오 끄고 조용히 가자.'
'오늘은 기분 좋네? 이때 스케줄 보고해야겠다.'
그것은 생존을 위한 처절한 눈치 게임이었다.



​[Police Insight: 막내의 내공]


경찰 조직은 철저한 계급 사회다. 군대만큼이나 위계질서가 확실하다.

갓 들어온 신임 순경들이 가장 힘들어하는 것이 바로 이 조직 문화와 야간 근무다.
"아, 오늘 또 야간 근무야? 진짜 피곤해 죽겠다."
동기들이 휴게실에서 곡소리를 낼 때,

나는 조용히 아이스 아메리카노를 들이켠다.
"이 정도 가지고 뭘. 난 1년 내내 24시간 대기였는데."
​매니저 시절 단련된 '강철 체력'과 '수면 조절 능력' 덕분에 밤샘 근무도 거뜬하다.

무엇보다 가장 큰 무기는 '눈치'다.
계장님, 과장님이 사무실에 들어오는 발소리만 들어도 안다.

오늘 기분이 어떤지, 지금 보고를 들어가야 할지 말아야 할지.
"장 경장, 자네는 짬밥도 안 되는 게 십 년 묵은 형사처럼 눈치가 빠르네?"
​선배들의 칭찬 아닌 칭찬을 들을 때면 나는 속으로 웃는다.
그거 다 제 뒤통수가 기억하는 겁니다, 선배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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