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찰서로 출근하는 N잡러 -제 2화 입의 기술

마이크 잡던 입으로, 마음을 열다

by 장경장

제 2화 입의 기술
마이크 잡던 입으로,

범인의 입을 열다



1. 무릎 꿇는 '퍼피 독' 서비스와 수사관의 자세
​"주문 도와드릴까요? 고객님."


​스물넷, 나는 아웃백 스테이크 하우스의 '전설'이 되기로 마음먹었다.

당시 아웃백에는 독특한 서비스 철학이 있었다. 바로 '퍼피 독(Puppy Dog) 서비스'.

말 그대로 강아지처럼 고객의 눈높이에 맞춰 무릎을 꿇고 주문을 받는 것이다.


​20대 초반 건장한 청년이 하루에도 수십 번, 아니 수백 번씩 쪼그려 앉았다 일어나는 건 고문이나 다름없었다.

주말 저녁, 전쟁 같은 디너 타임이 끝나고 나면 오른쪽 무릎은 펴지지 않을 정도로 욱신거렸고, 무거운 트레이를 이고 다니던 왼쪽 어깨엔 파스를 달고 살았다.


​하지만 나는 찡그리지 않았다.

오히려 더 깊숙이 무릎을 꿇고, 더 환하게 웃었다. 내 목표는 단순한 시급이 아니었다.

'전국 판매 1위'. 그 타이틀이 주는 포상과 성취감이 나의 진통제였다.
결국 나는 해냈다. LTO(한정 메뉴) 판매 전국 1위.

본사에서 날아온 포상금과 식사권은 가난한 휴학생에게 최고의 훈장이었다.

그 식사권을 들고 부모님과 함께 매장을 찾았던 날을 잊을 수 없다.
​"우리 아들 덕분에 이런 데서 칼질도 해보네."
스테이크를 썰며 아이처럼 웃으시는 어머니를 보며, 나는 테이블 아래서 욱신거리는 무릎을 몰래 주물렀다.

아프지 않았다. 내가 무릎 꿇고 얻어낸 건 단순한 매출이 아니라, 가족의 행복이었으니까.



​[Police Insight: 공감 수사의 시작]


경찰이 된 지금,

내 무릎은 책상 아래 편안히 펴져 있다.

하지만 마음의 자세는 여전히 '퍼피 독 자세'이다.
피의자들은 조사실에 들어오면 방어막을 치고 나를 올려다본다.


그들의 눈엔 내가 무서운 '갑'으로 보일 것이다. 그때 나는 마음의 무릎을 꿇는다.
​"조사받느라 많이 긴장되시죠? 목마르실 텐데 따뜻한 물 한 잔 드시고 천천히 이야기합시다."
​고압적인 태도로 윽박지르는 대신, 눈높이를 맞추고 그들의 이야기를 들어준다.


"억울하시겠네요", "그럴 수 있죠"라며 맞장구쳐준다. 그러면 철벽같던 그들의 마음이 조금씩 열린다.
서비스직 알바생이 고객의 지갑을 열기 위해 무릎을 꿇었다면, 수사관인 나는 피의자의 마음을 열기 위해 무릎을 꿇는다.


진실은 강요가 아니라, 공감에서 나오기 때문이다.



​2. 100% 성공률의 비밀, '후다다다닥' 화법


​"투움바 파스타요? 탁월한 선택이십니다! 그런데 고객님..."
​아웃백 시절, 나에겐 나만의 필승 공식이 있었다. 일명 '후다다다닥 화법'.
고객이 메뉴를 고르는 0.1초의 망설임.

그 찰나의 순간을 파고드는 기술이다.


먼저 고객의 의중을 떠본다.

확고한 메뉴가 있다? 그럼 칭찬한다. 그리고 바로 '연결 고리(Bridge)'를 던진다.


​"투움바 파스타 정말 맛있죠. 그런데 이번 시즌 한정으로 나온 '커플 세트'가 스테이크와 파스타의 궁합이 기가 막히거든요.


게다가 에이드 두 잔이랑 수프까지 무료라 따로 시키시는 것보다 가격도 15,000원이나 세이브되시는데, 구성을 한번 보시겠어요?"
​고객의 눈동자가 흔들린다.

머릿속으로 계산기를 두드리는 게 보인다.

이때가 골든타임이다.


나는 숨 쉴 틈 없이 혜택을 쏟아낸다.
​"세트메뉴 오늘만 많이 판매됐어요. 원하시는 굽기만 말씀해주시면 딱 알맞게 드리겠습니다. 에이드는 오렌지랑 자몽으로 바로 준비해 드릴 수 있고요.

따뜻한 빵과 소스도 다양하게 먼저 챙겨드릴게요. 어떠신가요?"


​고객의 이성이 "비싼가?"라고 판단할 틈을 주지 않고 감성(맛)과 이득(할인)으로 뇌를 마비시키는 것이다.


"어... 어... 네, 그걸로 주세요."
​게임 끝. 100% 승리였다.

단, 눈빛이 흔들리지 않는 완강한 고객에겐 절대 두 번 권하지 않는다.


깔끔하게 물러나는 것, 그것이 고수의 품격이자 다음을 기약하는 매너니까.


​[Police Insight: 취조실의 심리전]


이 '후다다다닥' 기술은 놀랍게도 경찰서 조사실에서 빛을 발한다.
피의자들은 '거짓말'이라는 메뉴를 들고 온다. "저는 안 그랬어요", "몰랐어요".
나는 일단 들어준다. 그리고 그들의 논리에 구멍이 보이는 순간, 연결 고리를 던진다.
​"선생님, 아까는 혼자라면서요? 방금은 친구랑 통화했다고 하시네요? CCTV 시간이랑도 안 맞는데... 앞뒤가 다르잖아요."
​그들이 당황해서 "어... 그게..." 하며 말을 더듬는 순간, 나는 아웃백 시절처럼 몰아친다.
"지금 인정하시면 정상참작의 여지가 있어요. 근데 끝까지 부인하시면 증거 인멸 우려까지 더해져서 상황이 훨씬 불리해집니다.

지금 사실대로 말씀하시고 선처받는 게 낫지 않겠어요?"
​팩트와 이득(선처)을 속사포처럼 쏟아내면, 피의자의 멘탈은 무너진다.
"네... 사실은 제가 그랬습니다."
메뉴를 고르던 손님처럼, 그들은 결국 자백을 선택한다.

무대는 달라도 사람의 심리를 움직이는 본질은 같다.

내가 파는 것은 스테이크가 아니라,

진실을 말할 용기였는지도 모른다.



​3. 마이크만 잡으면 바뀌는 남자


​"잠시 안내 말씀 드리겠습니다.

잠시 뒤 오늘의 주인공..."


​사람들은 내가 마이크만 잡으면 날아다니니 타고난 달변가인 줄 안다.

하지만 사실 나는 심각한 '마이크 울렁증' 환자였다.


남들 앞에만 서면 심장이 터질 것 같고 목소리가 기어들어 갔다.
우연한 기회로 돌잔치 사회 제안을 받았을 때, 나는 도망치는 대신 정면 돌파를 택했다.

딱 두 달. 나는 고시 공부하듯 사회자 대본을 달달 외웠다.


​당시 나는 평택에서 천안으로 오토바이 통학을 했는데, 그 1시간의 등하교 시간은 나만의 리허설 무대였다.

헬멧을 쓰고 바람 소리를 뚫어가며 고래고래 소리를 질렀다.


"잠시 뒤! 오늘의 주인공 땡땡땡 아기의 돌잔치를 시작하겠습니다!!"
지나가던 차들이 미친 사람 보듯 쳐다봤지만 상관없었다.

누가 옆구리를 툭 치면 "잠시 안내 말씀드리겠습니다..."가 튀어나올 정도로 연습하고 또 연습했다.


​하지만 실전은 달랐다.

첫 무대, 마이크를 잡는 순간 머릿속이 하얗게 변했다.

백지장. 헬멧 속에서는 그렇게 잘하던 멘트가 입 밖으로 나오지 않았다.

식은땀을 한 바가지 흘리며 어떻게 끝냈는지 기억도 안 난다.
​그렇게 실전에서 구르며 나는 '분위기를 읽는 법'을 배웠다.


어떤 가족은 돌부처처럼 반응이 없다.

그럴 땐 억지로 띄우려 하지 않고, 핵심만 간결하게 하고 '후다닥' 빠지는 게 센스다.

반대로 왕년에 클럽 좀 다니셨던 어머니를 만나면? 그날은 나도 넥타이 풀고 같이 '광란의 댄스 파티'를 벌였다.

말이 안 통하는 다문화 가정, 예측 불가능한 술 취한 하객... 그 정글 같은 행사장에서 나는 비로소 '무대 위에서 노는 법'을 터득했다.


​[Police Insight: SPO의 무대 장악력]


학교전담경찰관(SPO)이 되어 강당에 섰을 때, 내 눈앞에는 수백 명의 학생들이 앉아 있었다. 세상에서 제일 반응 없고 시니컬한 관객들.


보통의 경찰관이라면 식은땀을 흘릴 상황이다.
하지만 나는 웃었다.

헬멧 쓰고 소리 지르던 그 시절, 돌부처 하객들을 상대하던 짬밥이 내 몸에 흐르고 있었으니까.
나는 딱딱한 범죄 예방 교육 대신,

아이들의 눈높이에 맞는 멘트와 유머로 분위기를 쥐락펴락한다.


아이들이 졸려 하면 목소리 톤을 바꾸고, 산만해지면 퀴즈로 시선을 모은다.
​"야, 경찰 아저씨 말 진짜 잘한다."


아이들의 그 한마디. 그것은 오토바이 헬멧 속에서 피토하게 연습했던, 울렁증쟁이 소년의 노력이 만든 결실이다.


나는 이제 마이크가 무섭지 않다. 마이크는 나의 가장 강력한 무기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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