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찰서로 출근하는 N잡러 -제 3화 마음의 눈

상담사의 귀, 경찰의 권위

by 장경장

제 3화 마음의 눈

상담사의 귀, 경찰의 권위


​1. 고슴도치 가시 속에 숨겨진 '순두부'


​"아, 선생님이 뭘 알아요? 시간 때우다 갈 거죠?"
​'학교밖청소년지원센터 꿈드림'에서 만난

학교 밖 청소년(자퇴생)들은 대부분 '고슴도치' 같았습니다.
상담실 문을 열고 들어올 때부터 온몸의 가시를 바짝 세우고 있죠.
팔뚝에 새겨진 문신,

의자에 삐딱하게 걸터앉은 자세,


그리고 말끝마다 섞여 나오는 거친 욕설.
​보통 사람이라면 겁을 먹거나 눈살을 찌푸릴 모습입니다.
하지만 저는 그 가시가 무섭지 않았습니다.
오히려 안쓰러웠습니다.
​'얼마나 겁이 나면, 저렇게까지 가시를 세우고 방어하고 있을까.'


​한번은 지역에서 꽤나 이름을 날리던 소위 '일진' 아이가 센터에 왔습니다.
다른 선생님들도 혀를 내두를 정도로 다루기 힘든 아이였습니다.
저는 훈계 대신 '잡담'을 선택했습니다.


​"야, 너 롤(LoL) 티어 어디냐?

쌤이랑도 한번 할래?"
"쌤이요? 쌤 브실골(브론즈·실버·골드) 아니에요? ㅋㅋ"
​상담이 아니라 피시방에 온 형처럼 굴었습니다.
그렇게 몇 주 동안 도박, 게임, 여자친구 이야기만 하며 라포(Rapport, 신뢰 관계)를 쌓는 데만 집중했습니다.
제가 자기를 '문제아'가 아닌 '동네 형'처럼 대하자, 녀석의 가시가 조금씩 내려갔습니다.
​그리고 어느 날, "밥은 먹고 다니냐?"는

제 별거 아닌 위로 한마디에 녀석이 젓가락을 내려놓고 펑펑 울음을 터뜨렸습니다.
​"사실은... 저 너무 무서워요. 학교 그만둔 것도 후회되고요... 엄마한테 미안해 죽겠어요..."
​가시가 내려간 자리에는,

그저 사랑받고 싶고 겁 많은 열여덟 살 '순두부' 같은 소년이 앉아 있었습니다.


라포가 형성되는 순간, 아이들은 그 누구보다 순수한 진짜 모습을 보여줍니다.
그때 뼈저리게 느꼈습니다.
겉모습만 보고 사람을 판단해선 안 된다는 것을요.


​[Police Insight: 수사의 질을 바꾸는 라포]


​경찰서 조사실에서도 저는 이 원리를 그대로 적용합니다.
범죄 사실을 추궁하기 전에,

저는 먼저 '사람'을 봅니다.
​잔뜩 긴장해서 가시를 세우고 있는 피의자에게, 저는 서류 뭉치 대신 믹스 커피 한 잔을 건네며 안부를 묻습니다.


"식사는 하셨어요? 날씨 춥죠."
​많은 수사관이 "빨리 불어!"라고 다그칠 때, 저는 잠시 멈춰 서서 라포를 형성합니다.


신기하게도 마음이 열린 피의자는 수사관이 묻지 않은 여죄까지 술술 털어놓기도 하고, 진심 어린 반성문을 써내기도 합니다.


​단 한 번의 조사라도 마음을 열고 하는 것과 닫고 하는 것은 '수사의 질' 자체가 다릅니다.
범인을 잡는 건 차가운 증거지만,

사람을 바꾸는 건 결국 따뜻한 '관계'입니다.


​2. 문을 두드리는 사람 vs 문을 열고 들어가는 사람


​상담사는 정말 훌륭하고 보람찬 직업입니다.
하지만 현장에서 저는 뼈아픈 한계에 부딪혔습니다.
바로 '강제력'이 없다는 것입니다.


​위기 청소년이 방문을 걸어 잠그고 "꺼져요!"라고 소리치면, 상담사가 할 수 있는 일은 문 밖에서 하염없이 노크를 하며 기다리는 것뿐이었습니다.


문 너머에서 아이가 망가져가고 있어도, 아이가 허락하지 않으면 저는 아무것도 할 수 없는 '무력한 관찰자'였습니다.
​'내가 저 문을 열고 들어갈 힘만 있다면... 억지로라도 저 아이를 끄집어내 줄 수 있을 텐데.'
​그 처절한 무력감이 저를 경찰 공무원 시험장으로 이끌었습니다.


​[Police Insight: 권위와 공감의 시너지]


​경찰에겐 '제복의 권위'와 '법적 강제력'이 있습니다.
아이들은 경찰을 무서워합니다.
제가 제복을 입고 다가가면,

아이들은 싫어도 문을 열 수밖에 없습니다.
​바로 그 지점에서 저의 '반전 매력'이 시작됩니다.
​잔뜩 겁을 먹고 억지로 문을 연 아이에게,

무서운 경찰 아저씨가 수갑 대신 따뜻한 손길을 내민다면 어떨까요?


"경찰 아저씨가 나한테 소리 안 지르고 내 편을 들어준다고?"
​강제력을 가진 사람이 보여주는 예상치 못한 '따뜻함(Empathy)'.
이 격차가 아이들의 마음을 훨씬 크게, 그리고 빠르게 움직입니다.
상담사는 문을 두드리지만, 경찰은 문을 열고 들어갑니다.


그리고 그 방 안에서 저는 다시 상담사의 눈으로 아이를 안아줍니다.
이것이 제가 꿈꾸던 진정한 교화이자,

제가 경찰이 된 이유입니다.


​3. 제복 입은 상담사가 만드는 기적


​세상은 경찰에게 '냉정함'을 요구하고, 상담사에게 '온정'을 요구합니다.
하지만 저는 이 두 가지가 만났을 때 비로소 '기적'이 일어난다고 믿습니다.


​법대로 처리하는 차가운 머리(Head)와,
사람의 아픔을 읽는 뜨거운 가슴(Heart).
​그 두 가지를 다 가진 사람이 되고 싶어, 저는 오늘도 경찰서 문을 나섭니다.


누군가는 저를 보고 "경찰이 뭐 그리 말이 많냐"라고 할지도 모릅니다.
하지만 저는 압니다.


​닫힌 문을 여는 건 '권위'지만,
닫힌 마음을 여는 건 결국 '공감'이라는 것을.
​저는 문을 부수고 들어가는 경찰이 아니라,
문을 열고 들어가 그 안의 온기를 지키는 '치유하는 경찰'이고 싶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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