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담사의 귀, 경찰의 권위
"아, 선생님이 뭘 알아요? 시간 때우다 갈 거죠?"
'학교밖청소년지원센터 꿈드림'에서 만난
학교 밖 청소년(자퇴생)들은 대부분 '고슴도치' 같았습니다.
상담실 문을 열고 들어올 때부터 온몸의 가시를 바짝 세우고 있죠.
팔뚝에 새겨진 문신,
의자에 삐딱하게 걸터앉은 자세,
그리고 말끝마다 섞여 나오는 거친 욕설.
보통 사람이라면 겁을 먹거나 눈살을 찌푸릴 모습입니다.
하지만 저는 그 가시가 무섭지 않았습니다.
오히려 안쓰러웠습니다.
'얼마나 겁이 나면, 저렇게까지 가시를 세우고 방어하고 있을까.'
한번은 지역에서 꽤나 이름을 날리던 소위 '일진' 아이가 센터에 왔습니다.
다른 선생님들도 혀를 내두를 정도로 다루기 힘든 아이였습니다.
저는 훈계 대신 '잡담'을 선택했습니다.
"야, 너 롤(LoL) 티어 어디냐?
쌤이랑도 한번 할래?"
"쌤이요? 쌤 브실골(브론즈·실버·골드) 아니에요? ㅋㅋ"
상담이 아니라 피시방에 온 형처럼 굴었습니다.
그렇게 몇 주 동안 도박, 게임, 여자친구 이야기만 하며 라포(Rapport, 신뢰 관계)를 쌓는 데만 집중했습니다.
제가 자기를 '문제아'가 아닌 '동네 형'처럼 대하자, 녀석의 가시가 조금씩 내려갔습니다.
그리고 어느 날, "밥은 먹고 다니냐?"는
제 별거 아닌 위로 한마디에 녀석이 젓가락을 내려놓고 펑펑 울음을 터뜨렸습니다.
"사실은... 저 너무 무서워요. 학교 그만둔 것도 후회되고요... 엄마한테 미안해 죽겠어요..."
가시가 내려간 자리에는,
그저 사랑받고 싶고 겁 많은 열여덟 살 '순두부' 같은 소년이 앉아 있었습니다.
라포가 형성되는 순간, 아이들은 그 누구보다 순수한 진짜 모습을 보여줍니다.
그때 뼈저리게 느꼈습니다.
겉모습만 보고 사람을 판단해선 안 된다는 것을요.
경찰서 조사실에서도 저는 이 원리를 그대로 적용합니다.
범죄 사실을 추궁하기 전에,
저는 먼저 '사람'을 봅니다.
잔뜩 긴장해서 가시를 세우고 있는 피의자에게, 저는 서류 뭉치 대신 믹스 커피 한 잔을 건네며 안부를 묻습니다.
"식사는 하셨어요? 날씨 춥죠."
많은 수사관이 "빨리 불어!"라고 다그칠 때, 저는 잠시 멈춰 서서 라포를 형성합니다.
신기하게도 마음이 열린 피의자는 수사관이 묻지 않은 여죄까지 술술 털어놓기도 하고, 진심 어린 반성문을 써내기도 합니다.
단 한 번의 조사라도 마음을 열고 하는 것과 닫고 하는 것은 '수사의 질' 자체가 다릅니다.
범인을 잡는 건 차가운 증거지만,
사람을 바꾸는 건 결국 따뜻한 '관계'입니다.
상담사는 정말 훌륭하고 보람찬 직업입니다.
하지만 현장에서 저는 뼈아픈 한계에 부딪혔습니다.
바로 '강제력'이 없다는 것입니다.
위기 청소년이 방문을 걸어 잠그고 "꺼져요!"라고 소리치면, 상담사가 할 수 있는 일은 문 밖에서 하염없이 노크를 하며 기다리는 것뿐이었습니다.
문 너머에서 아이가 망가져가고 있어도, 아이가 허락하지 않으면 저는 아무것도 할 수 없는 '무력한 관찰자'였습니다.
'내가 저 문을 열고 들어갈 힘만 있다면... 억지로라도 저 아이를 끄집어내 줄 수 있을 텐데.'
그 처절한 무력감이 저를 경찰 공무원 시험장으로 이끌었습니다.
경찰에겐 '제복의 권위'와 '법적 강제력'이 있습니다.
아이들은 경찰을 무서워합니다.
제가 제복을 입고 다가가면,
아이들은 싫어도 문을 열 수밖에 없습니다.
바로 그 지점에서 저의 '반전 매력'이 시작됩니다.
잔뜩 겁을 먹고 억지로 문을 연 아이에게,
무서운 경찰 아저씨가 수갑 대신 따뜻한 손길을 내민다면 어떨까요?
"경찰 아저씨가 나한테 소리 안 지르고 내 편을 들어준다고?"
강제력을 가진 사람이 보여주는 예상치 못한 '따뜻함(Empathy)'.
이 격차가 아이들의 마음을 훨씬 크게, 그리고 빠르게 움직입니다.
상담사는 문을 두드리지만, 경찰은 문을 열고 들어갑니다.
그리고 그 방 안에서 저는 다시 상담사의 눈으로 아이를 안아줍니다.
이것이 제가 꿈꾸던 진정한 교화이자,
제가 경찰이 된 이유입니다.
세상은 경찰에게 '냉정함'을 요구하고, 상담사에게 '온정'을 요구합니다.
하지만 저는 이 두 가지가 만났을 때 비로소 '기적'이 일어난다고 믿습니다.
법대로 처리하는 차가운 머리(Head)와,
사람의 아픔을 읽는 뜨거운 가슴(Heart).
그 두 가지를 다 가진 사람이 되고 싶어, 저는 오늘도 경찰서 문을 나섭니다.
누군가는 저를 보고 "경찰이 뭐 그리 말이 많냐"라고 할지도 모릅니다.
하지만 저는 압니다.
닫힌 문을 여는 건 '권위'지만,
닫힌 마음을 여는 건 결국 '공감'이라는 것을.
저는 문을 부수고 들어가는 경찰이 아니라,
문을 열고 들어가 그 안의 온기를 지키는 '치유하는 경찰'이고 싶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