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ASE 3. 완벽한 구원자 (중)

[CASE 3] 완벽한 구원자 (중)

by 장경장

CASE 3. 완벽한 구원자 (중)




​쿵!


탁한 바닥에 두 발이 닿자마자,

머리를 도끼로 쪼개는 듯한 극통이

웅의 전신을 강타했다.


​"크윽…!"


​웅이 관자놀이를 부여잡고 비틀거렸다.

시야에 들어온 무의식의 풍경은

그야말로 참혹했다.


폐공장의 녹슨 철골과 학교 교실의 낡은 책상들이 마치 불에 녹아내린 촛농처럼 흉측하게 엉겨 붙어 있었다. 공간 전체에 짙은 안개가 깔려 한 치 앞도 분간하기 어려웠고, 바닥은 늪처럼 질척거렸다.


​지금껏 겪었던 다이빙과는 차원이 다른 거부감이었다. 공간 자체가 외부의 침입자를 밀어내기 위해 격렬하게 요동치고 있었다.


​'매개체 불일치.'


​웅은 고통 속에서도 사태의 원인을 직감했다. 지훈은 저 쇠파이프를 휘두른 적이 없다. 누군가에 의해 강제로 주입된 거짓 기억과, 무의식 밑바닥에 깔린 진짜 진실이 참혹하게 충돌하며 거대한 뇌의 방어기제를 작동시킨 것이다.


​빠직, 빠지직!


​하늘이 갈라지는 소리와 함께 잿빛 공간이 유리창처럼 금이 가기 시작했다.
붕괴는 순식간이었다. 수만 개의 날카로운 파편으로 부서져 내린 무의식의 조각들이 폭풍처럼 휘몰아치며 웅의 온몸을 무자비하게 난도질했다.


​"크아아아악!!"


​웅이 핏물을 토해내며 바닥에 고꾸라졌다.
타인의 뇌에 억지로 동기화했던 치명적인 대가였다.


맹렬하게 튕겨져 나가는 거부 반응의 역류가

웅의 해마를 정통으로 강타했다.

방어벽을 뚫고 들어갔던 신경망이 끊어지며,

그 반동으로 웅 자신의 기억 중추가 새카맣게 타들어 가는 끔찍한 감각.


과부하가 걸린 뇌는 스스로가 파괴되는 것을 막기 위해, 영혼 깊숙한 곳의 기억 서랍 하나를 강제로 태워버리기 시작했다.


​'어머니가… 내 머리를 쓰다듬어 주던

손길의 온도가….'


​따뜻했던 체온이 급속도로 차갑게 식어갔다. 어머니의 다정했던 목소리, 환하게 웃던 얼굴이 시커먼 잉크가 번지듯 하얗게 표백되어 가고 있었다.


절대 잊고 싶지 않았던, 웅이 인간성을 유지할 수 있었던 마지막 보루 같은 기억 중 하나가

영원히 증발해 버리는 처참한 상실감.


​"안 돼… 이것만은 안 돼!!"


​웅의 절규가 일그러진 무의식의 붕괴음 속에 속절없이 파묻혔다.


​퍼억!


누군가 뺨을 거칠게 후려치는 충격에 웅이 허억, 하고 거친 숨을 들이켜며 눈을 번쩍 떴다.


​"야, 장웅!! 정신 차려 이 새끼야!"


​시야가 빙글빙글 돌았다. 코와 입에서는 검붉은 피가 폭포수처럼 쏟아져 내려 셔츠를 적시고 있었다. 현실의 조사실로 강제 추방당한 것이다.


​사색이 된 권 형사가 웅의 어깨를 흔들고 있었고, 맞은편의 지훈은 경악하며 의자 구석으로 몸을 욱여넣고 있었다.


웅이 힘겹게 고개를 돌려 매직미러 너머를 응시했다. 유리창 반대편 관찰실,


짙은 어둠 속에 서 있는 최우진의 실루엣이 보였다. 우진은 피투성이가 된 웅을 흥미롭다는 듯 내려다보며, 손바닥으로 안경 힌지를 스윽 밀어 올리고 있었다.


​"하아, 하아…."


​웅은 덜덜 떨리는 손으로 입가의 피를 닦아내며 짐승처럼 헐떡였다.


머릿속 한구석이 도려내진 듯한 오싹한 공허함. 어머니의 따뜻했던 체온이 아무리 애를 써도 떠오르지 않았다. 함부로 타인의 지옥을 엿보려 한 대가로 치른, 뼈저리고도 치명적인 실패였다.


​위이이잉—.


​지하 1층 진술심리분석팀 사무실.
소파에 널브러진 웅의 코에 지혈 솜이 박혀 있었고, 백세진이 웅의 동공에 펜라이트를 비추며 연신 감탄사를 내뱉고 있었다.


​"어메이징. 순간적으로 뇌압이 정상치의 세 배까지 치솟았어. 이 정도 혈관 팽창이면 쇼크사로 즉사해도 이상할 게 없는데.

당신 뇌 구조 진짜 기형적이네.

다음번엔 뚜껑 한 번 열어보자, 응?"


어느센가 ​세진이 흥분한 얼굴로 웅의 맥박 데이터를 아이패드에 미친 듯이 기록했다.

권 형사가 골치가 아프다는 듯 세진을 밀쳐내며 웅에게 따져 물었다.


​"그래서. 남의 머릿속에 들어가서 헛짓거리하다가 피나 쏟고. 알아낸 건 뭔데."


​웅이 욱신거리는 관자놀이를 꾹 누르며 몸을 일으켰다. 피를 쏟아내 창백해진 얼굴이었지만, 그의 두 눈동자만은 매섭게 형형히 빛나고 있었다.


​"저놈 아니에요. 김지훈은 가해자가 아니에요. 누군가 철저하게 설계한 대본에 세뇌당해서 자기가 때렸다고 거짓 자백 하고있는 겁니다."

​웅이 화이트보드 앞으로 다가가

마커펜을 집어 들었다.


​"우진이라는 참관인. 녀석의 진술은 지나치게 작위적일 정도로 완벽했습니다.

공권력의 부재, 학습된 무기력, 급성 방어기제. 열일곱 살짜리 입에서 나올 수 없는

전문 용어들로 방어막을 쳤죠.

그리고 김지훈은 1분에 한 번씩 기계적으로 우진의 눈치를 살폈습니다.

그건 우정이 아니라 맹목적인 복종입니다."


​웅의 프로파일링이 끝나기도 전,

세진이 부검 사진 대신 폐공장 현장 사진을 집어 들며 툭 내뱉었다.


​"그 자수한 꼬맹이 키가 165에 몸무게가 50킬로 남짓이었지? 불가능해."


​세진이 사진 속 벽면에 튄 핏자국을

손가락으로 가리켰다.


​"혈흔의 비산 각도와 두개골 함몰 형태를 보면, 가해자는 최소 키 180 이상의 건장한 체격이야. 게다가 타격점을 봐. 뼈가 가장 쉽게 으스러지는 관절과 급소만 오차 없이 노렸어.

분노에 찬 약자가 눈감고 휘두른 게 아니라,

아주 해부학적 지식이 빠삭한 놈이 재미 삼아 박살을 낸 거지."


​심리 프로파일링과 법의학의 완벽한 교차 검증.
권 형사의 눈빛이 예리하게 빛났다.


​"그럼 뭐야. 모범생 최우진 그 새끼가 직접 일진 놈들 대가리를 깨부수고, 찐따 김지훈한테 덤터기를 씌운 뒤에 자기가 신고자 행세를 하고 있다는 거냐? 대체 왜?"


​"띠링."


​사무실 구석에서 건조한 메신저 알림음이 울렸다. 내내 침묵을 지키던 차태경의 모니터였다. 태경이 노이즈 캔슬링 헤드폰을 목으로 내리며, 웅과 권 형사를 향해 모니터 화면을 돌렸다.


​[송신자: 차태경 경장]
[내용: 일진들 스마트폰 딥웹 우회 추적 결과. 텔레그램 비밀방 캐시 데이터 복구 완료.]


​모니터 화면에는 익명으로 개설된 텔레그램 비밀방의 대화 내역이 빼곡하게 떠올랐다.

방장의 닉네임은 '구원자(Savior)'.
- 구원자: 내일 점심시간, 체육관 창고.

늘 하던 대로 김지훈 밟아. 20분.
- ​일진A: 야, 우리도 이제 쫄려. 학폭위 열리면.

어쩔겨. 나락 가기 싫으니까 그만하자.
- ​구원자: 그래? 그럼 너희들 저번에 불법 스포츠

토토 총판했던 장부랑 딥페이크.

의뢰했던 내역, 경찰 말고 니네

부모님들한테 먼저 보낼까?
- ​일진A: 아, 알았어. 씨발. 한다고.
- 구원자: 지훈이가 나한테 살려달라고 울면서

매달리게 만들어. 그전엔 멈추지 마.


​그 끔찍한 대화 내역 아래로,

약점을 잡힌 채 짐승처럼 부려지던 일진들이 분노를 참지 못하고 구원자를 죽여버리겠다고 협박하는 메시지들이 연이어 나타났다.


​태경이 무미건조한 목소리로 덧붙였다.


"IP 우회 경로 역추적 결과,

방장 '구원자'의 최초 접속 위치.

최우진 자택 개인 PC입니다. "


​퍼즐이 완벽하게 맞춰졌다.

최우진은 뒤에서는 일진들의 범죄 약점을 틀어쥐고 개처럼 부리면서 김지훈을 괴롭히게 만들고, 앞에서는 유일한 친구 행세를 하면서 김지훈의 정신을 지배해 온거다. 그러다 일진들이 반항하며 물어뜯으려 하니까, 직접 폐공장으로 불러내서 입막음용으로 아주 숨통을 끊어 놓으려 한 것이 틀림없다.


스스로 지옥을 창조하고, 그 안에서 구원자 행세를 하며 타인의 영혼을 갉아먹은 사이코패스. 경찰조차 자신의 연극을 빛내줄 엑스트라로 이용한 최우진의 오만한 실체가 수면 위로 드러나는 순간이었다.
​권 형사가 어이가 없다는 듯 헛웃음을 쳤다.


"미친 새끼. 애새끼 머리통에서 나올 수 있는 짓거리가 아닌데. 물증은 확실하냐?"


​"지금 증거만으로는 그 집안 변호인단 못 이깁니다."


​웅이 화이트보드에 우진의 이름을 큼지막하게 적으며 눈을 가늘게 떴다.


​"결국 놈의 무의식 속에 숨겨진 코어 메모리.

놈이 일진들을 박살 낼 때 느꼈던 희열이 담긴 진짜 매개체를 찾아야 합니다."


​"매개체?"


태경이 의아한 듯 물었지만,

웅은 대답 대신 기억을 되짚었다.


조사실 밖에서 웅과 지훈을 지켜보던 우진의 모습. 놈은 자신이 판을 통제하고 있다는 우월감을 느낄 때마다 습관적으로 안경 힌지를 손바닥으로 밀어 올렸다. 쇠파이프를 휘두르며 피가 튀는 그 잔혹한 살육의 현장에서도, 놈은 피 묻은 손으로 콧대에 흘러내린 그 은테 안경을 밀어 올렸을 것이 분명했다.


​"선배. 저 새끼 안경 힌지 틈새, 루미놀 반응 백 퍼센트 나옵니다. 다시 3조사실로 가시죠."


​웅이 재킷을 걸치며 사무실 문을 박차고 나갔다.
지하실의 돌연변이들이 만들어낸

완벽한 공조 수사. 더 이상의 실패는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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