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ASE 3. 완벽한 구원자 (상)

[CASE 3. 완벽한 구원자 (상)

by 장경장

CASE 3. 완벽한 구원자 (상)



​웅의 코끝에서 뚝, 뚝 떨어지는 검붉은 피가 철제 책상을 붉게 물들였다. 단순한 환청이 아니었다. 내 머릿속을 망가뜨린 그 얼굴 없는 악마가, 지금도 살아서 다른 인간들의 무의식을 조종할 수 있다는 끔찍한 직감.


그 섬뜩한 확신 앞에 웅의 이성이 툭,

하고 끊어졌다.


​"이 새끼야, 똑바로 말해! 그 그림자 어디서 만났어!!"


​쾅!


웅이 책상을 딛고 용수철처럼 튀어 올라, 바닥에 처박힌 태호의 멱살을 짐승처럼 틀어쥐었다.


​"야, 장웅!! 너 미쳤어?! 안 놔?!"


​매직미러 너머에서 기겁하며 뛰어 들어온 권형사가 웅의 허리를 뒤에서 끌어안고 필사적으로 뜯어말렸다.


하지만 핏발 선 웅의 눈동자엔 이미 사냥꾼의 광기가 가득했다.


​"말하라고! 네 귓가에 대고 라이터

튕긴 그 새끼 당장 불어!!"


​우당탕탕! 의자와 책상이 박살 나며 사방으로 내동댕이쳐졌고, 코피를 쏟으며 피의자의 목을 조르는 웅의 미친 짓거리는 고스란히 취조실 CCTV 화면에 녹화되고 있었다.


​그날 이후, 망상의 성전이 무너져 내린 김태호는 완전히 이성을 잃었다. 누군가의 속삭임에 놀아난 꼭두각시였다는 진실을 뇌가 끝내 거부한 탓이다.

그는 취조실 벽에 머리를 찧으며 끝까지 자신이 지수 씨를 구한 영웅이라며 발악했다.
하지만 상관없었다. 현장에서 압수된 피 묻은 다이어리와 흉기의 지문 등 빼도 박도 못하는 물증들 덕분에 사건은 자백 없이도 일사천리로 기소 의견 송치되었다.


​다만, 취조실에서 피의자를 폭행하며 피를 쏟은 웅의 난동은 경찰청 내부에서 심각한 문제로 불거졌다.


그것이, 전도유망했던 특채 프로파일러 장웅의 경찰 인생이 빛 한 줌 들지 않는 지하 암통으로 굴러떨어지게 된 더할 나위 없이 합법적인 명분이었다.


​위이이잉—.


​경찰청 본관 지하 1층, 가장 구석진 복도 끝.

냉기 도는 공간에 환풍기 돌아가는 소리만이 건조하게 울려 퍼지고 있었다.


매캐한 먼지 냄새와 오래된 곰팡내가 뒤섞인 문 앞에는 진술심리분석팀이라는 조잡한 아크릴 팻말이 비딱하게 매달려 있었다.


​끼익.


녹슨 철문을 열고 안으로 들어선 장웅이 묵직한 종이 상자를 빈 책상 위에 툭 내려놓았다.


​"하아, 진짜 내 짬밥에 어쩌다 이런 암통으로 굴러떨어졌는지."


​웅의 뒤를 따라 들어온 권지태 형사가 신경질적으로 머리를 긁적였다.

그는 제 발로 이 유배지 팀장 자리를 자처했다. 입으로는 욕을 달고 살지만, 후배를 홀로 내버려 둘 수 없었던 츤데레 사수의 지독한 의리였다.


​"팀장님 짐은 창가 쪽에 풀면 됩니까?

아, 여긴 창문이 없구나."


​웅이 셔츠 소매를 걷어붙이며 서글서글한 미소와 함께 농담을 던지려던 찰나였다.


​"거기 짐 치우시죠. 제 서버 본체 둬야 합니다."


​건조한 목소리. 웅과 권 형사의 시선이 구석 파티션 너머로 향했다.
그곳에는 창백한 얼굴의 청년이 의자에 몸을 웅크린 채 컴퓨터 모니터 3대를

동시에 두드리고 있었다.


​"너, 넌 뭐 하는 새끼야?"


​권 형사가 황당하다는 듯 묻자, 청년은 시선조차 돌리지 않은 채 귀를 덮고 있는 거대한 노이즈 캔슬링 헤드폰만 보였다.

모니터 불빛에 반사된 그의 동공은

기계처럼 무미건조했다.


​"띠링!"
컴퓨터 메신저 알림음.


"사이버범죄수사대 출신 차태경 경장.

회식, 친목 도모 안 합니다.

용건은 메신저로만."


​탁.


메시지를 확인하기가 무섭게 태경은 고개를 숙여 미친 듯이 키보드를 두드리기 시작했다.


타인에 대한 지독한 혐오와 무관심. 권 형사의 뒷목에 핏대가 섰다.


​"그리고 팀장님, 방금 발로 차신 그 박스 조심하십시오.

어제 부검 끝난 위 내용물 샘플이니까."


​이번엔 등 뒤였다. 언제 들어왔는지, 흰색 가운을 입은 남자가 한 손엔 샌드위치를, 다른 한 손엔 시체 부검 사진을 들고 삐딱하게 서 있었다.


국과수 파견 법의관 백세진이었다.
세진은 샌드위치를 크게 한 입 베어 물며 웅의 얼굴을 뚫어져라 관찰했다.


​"장웅 경위? 안색 보니까 만성 두통에 시달리는 거 같은데. 두개골 모양이 아주 예쁘네.

나중에 뇌혈관 터져서 죽으면 부검은

꼭 나한테 맡겨요."


​능력의 비밀을 알 리 없는 세진이 관상만 보고 던진 농담. 웅은 짐짓 여유로운 미소를 지어 보였지만, 속으로는 등골이 오싹해지는 것을 느꼈다.


​무대포 꼴통 팀장, 남의 무의식에 다이빙하는 프로파일러, 대인기피증 해커, 그리고 시체에 집착하는 괴짜 법의관.


경찰청의 구제 불능 돌연변이들이 지하 1층에 모인 어처구니없는 순간이었다.


​쾅!!


​그때, 철문이 박살 날 듯 열리며 본청 여청과 과장이 직접 서류철을 들고 들어왔다.

그의 표정은 귀찮고 불쾌한 쓰레기를 떠안은 듯 잔뜩 구겨져 있었다.


​"너희들, 짐 풀 시간도 없다. 평택서에서 용의자 올려보냈으니까 당장 취조실로 튀어가."


​과장이 두툼한 서류철과 투명한 증거물 비닐을 권 형사의 가슴팍에 거칠게 쑤셔 박았다.

봉투 안에는 끝부분이 검붉은 피로 떡이 된 무거운 쇠파이프가 담겨 있었다.


​"평택 고등학생 폐공장 린치 사건. 일진 한 명은 반죽음 상태고, 자수한 놈은 그 자식한테 1년 내내 샌드백처럼 맞고 살던 찐따 새끼란다. 덤으로 현장을 최초로 목격하고 데려온

신고자도 같이 와 있고."


​"과장님, 이런 굵직한 사건을 왜 하필

저희 지하 팀에…."


​권 형사가 의아한 듯 묻자, 과장이 코웃음을 치며 싸늘하게 경고했다.


​"굵직하긴 개뿔. 학폭 가해자 부모들이 은폐하려던 지역 유지들이야. 관할 서에서 이미 윗선 다 작업 쳐놨고, 언론까지 들러붙어서 시끄러워지기 직전이니까 빨리 피해자의 우발적 폭행으로 결론 내고 꼬리 잘라.

너희들 일은, 그 자수한 새끼 진술이 심리학적으로 신빙성 있다고 예쁘게 포장해서 보고서에 도장 찍는 거. 그거 하나야."


​과장이 웅의 어깨를 툭툭 치며 비릿하게 웃었다.


​"장주임. 저번처럼 또 취조실에서 피 토하고 멱살 잡고 튀는 짓거리 하면, 그땐 좌천이 아니라 너희 팀 전원 옷 벗고 구속 수사받을 줄 알아.

시키는 대로 도장만 찍어. 알았어?!"


​과장이 윽박지르고 나가버린 뒤,

지하 사무실에는 무거운 정적과 함께 짙은 쇠비린내가 감돌았다.


처음부터 덮기 위해 던져진 쓰레기 같은 사건.
​웅이 책상 위로 몸을 숙이며 폴리스 라인이 쳐진 피투성이 폐공장 현장 사진을 응시했다.


사진 속 혈흔의 궤적과 타격점은 겁에 질린 약자가 우발적으로 휘두른 흔적이 아니었다.

아주 차갑고, 계산적이며, 잔혹하게 급소만 골라 박살을 낸 포식자의 솜씨였다.


​"과장님 말씀이 좀 기분 나쁘긴 한데."


​웅이 피 묻은 쇠파이프를 집어 들며,

평소의 사람 좋은 미소를 씨익 지어 보였다. 하지만 그의 두 눈은 이미 타깃을 포착한 맹수처럼 매섭게 번뜩이고 있었다.


​"팀장님, 도장은 우리가 아니라 저 새끼들 이마빡에 찍어줘야 할 것 같은데요."


​웅이 미련 없이 몸을 돌려 조사실을 향해 성큼성큼 걸음을 옮겼다.



​끼익—.


​서늘한 공기가 감도는 3조사실.
원칙적으로 피의자와 참고인은 분리해야 했지만, 공간 안의 풍경은 이질적이었다.


소파에 웅크려 앉은 열일곱 살의 소년, 지훈은 사시나무처럼 온몸을 바들바들 떨고 있었다.

그리고 그 옆, 단정하게 교복을 입은 최초 신고자 최우진이 심각한 공황 상태를 핑계로 보호자를 자처하며 곁에 바짝 붙어 앉아있었다.


​"형사님. 지훈이는 오랜 기간 끔찍한 학대를 당하며 시스템의 보호를 받지 못했습니다.

살기 위해, 참아왔던 공포가 방어기제로 폭발한 겁니다. 제발 이 아이의 억울한 사정을…."


​"참고인 진술 아주 훌륭하네."


​조사실 문을 열고 들어선 웅의 차가운 목소리가 우진의 눈물겨운 변호를 단칼에 잘라냈다.

웅은 손에 든 증거물을 철제 책상 위에 소리 나게 내려놓으며 턱을 까딱했다.


​"학생, 끈끈한 우정은 알겠는데 여기 피의자 조사실이거든요. 조서는 밖에서 따로 받을 테니까 그만 나가보세요."


​경찰의 강압적인 축객령에 우진의 눈썹이 미세하게 꿈틀거렸다. 지훈은 떨어지는 것을 두려워하며 친구의 소매를 꽉 쥐었지만,

우진은 아무도 모르게 소년의 손등을 툭 치며 서늘한 눈빛을 보냈다. '시키는 대로 해.'라는 무언의 압박이었다.


​"…부탁드립니다, 형사님."


​우진이 깍듯하게 고개를 숙이고 방을 빠져나갔다.
철문이 닫히고, 외부와 완벽히 차단된 적막한 공간. 혼자 남겨진 지훈은 헐떡이며 몸을 둥글게 말고 있었다.


​웅이 천천히 책상 맞은편에 앉았다.

이질적인 타격점, 겁에 질린 가해자,

그리고 모든 상황을 통제하려 들던

오만한 참고인.


사건의 진짜 배후, 그 뒤틀린 무의식의 진실을 두 눈으로 직접 확인해야만 했다.


​"지훈학생. 이런 일로 경찰서 오게되어 많이 무서웠지."


​웅이 다정한 표정을 지으며 소년의 앞으로 상체를 숙였다.


​"이 무거운 걸 휘두르느라 피부가 다 상했네.

경찰 아저씨가 한 번 볼까?"


​웅이 쇠파이프를 쥔 손으로, 테이블 위에 올려진 지훈의 경련하는 손등을 부드럽게 감싸 쥐었다.


​[조건 충족: 범행의 매개체(쇠파이프) + 타겟(지훈) + 의도적인 신체 접촉]


삐이이이—



​고막을 찢어발기는 예리한 이명과 함께 형광등 불빛이 차갑게 얼어붙었다. 웅의 시야가 거대한 소용돌이 속으로 빨려 들어가며 심연으로 추락하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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