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ASE 3] 완벽한 구원자 (하)
경찰청 복도.
참고인 조사를 마친 최우진은 여유로운 자태로 대기실 앞 벤치에 앉아있었다.
한 치의 흐트러짐 없는 교복,
반듯하게 빗어 넘긴 머리.
초조하게 손톱을 물어뜯는 다른 피의자들과는 궤를 달리하는,
지독하게 오만한 포식자의 얼굴이었다.
철컥.
조사실 문이 열리고 웅이 걸어 나왔다.
앞머리가 땀과 핏자국으로 엉망이었지만,
그의 입가에는 특유의 서글서글한 미소가 걸려있었다.
"형사님. 지훈이 조사는 끝났습니까?
그 아이, 많이 불안해할 텐데
제가 들어가 봐도…."
우진이 자리에서 일어나 깍듯하게 고개를 숙이며 물었다. 걱정으로 가득 찬 모범생의 연기.
웅이 사람 좋은 동네 삼촌처럼 빙그레 웃으며 우진의 코앞까지 다가섰다.
"학생. 친구 챙기는 마음이 참 예쁘네.
진술도 아주 잘 들었고."
웅이 친근하게 말을 건네며 불쑥 두 손을 뻗었다.
"근데 너무 긴장했나 보다.
안경이 다 삐뚤어졌네."
우진이 미처 피할 틈도 없이,
웅의 두 손이 우진의 얼굴로 훅 다가왔다.
웅이 삐뚤어진 은테 안경을 가볍게 고쳐 씌워주는 그 찰나의 순간. 웅의 거친 손마디가 우진의 관자놀이를 스치듯 단단히 감싸 쥐었고,
동시에 그의 엄지손가락은 안경의 접히는 경첩, 힌지 구석을 꾹 짓눌렀다.
[조건 충족: 범행의 진짜 매개체(혈흔 묻은 안경) + 타겟(최우진) + 의도적인 신체 접촉]
삐이이이—
고막을 찢는 이명. 거부감 없이 매끄럽게 빨려 들어간 시야 너머로 끝없이 넓은 흑백의 체스판이 펼쳐졌다. 하늘에는 거대한 샹들리에가 눈부신 빛을 쏟아내고 있었고, 공기 중에는 역겨울 정도로 달콤한 방향제 냄새가 진동했다.
그 거대한 체스판의 중앙.
최우진의 기억이 파노라마처럼
재생되기 시작했다.
폐공장. 교복 셔츠 소매를 걷어붙인 우진이 쇠파이프를 쥔 채 서 있었다. 바닥에는 뼈가 부러진 일진들이 피투성이가 되어 널브러져 있었다.
" 씨, 씨발! 살려줘! 우리가 잘못했어…!"
바짓가랑이를 붙잡고 애원하는 일진들을 내려다보며, 우진의 쇠파이프를 쥔 손이 미세하게 떨리고 있었다.
아무리 통제광 사이코패스라 해도,
선을 넘어 타인의 뼈와 살을 으깨는 직접적인 폭력 앞에서는 열일곱 살의 얄팍한 한계가 드러난 것이다.
우진이 주춤하며 파이프를 쥔
손에 힘을 빼려던 찰나였다.
딸깍, 챙—
체스판의 무거운 공기를 찢고, 웅의 심장을 얼어붙게 만드는 익숙한 금속음이 울려 퍼졌다. 지포 라이터의 뚜껑이 열렸다 닫히는 소리.
망설이던 우진의 등 뒤, 가장 깊은 그림자 속에서 짙은 실루엣 하나가 일렁이며 솟아올랐다.
형체가 우진의 귓가로 다가가,
뱀처럼 교활한 목소리로 속삭였다.
" 망설일 필요 없어.
저런 쓰레기들은 네가 통제해야 할 장기 말에 불과하잖아.
네 완벽한 세계를 위해 치워버려."
속삭임이 닿는 순간,
우진의 손끝에서 떨림이 멎었다.
주춤하던 소년의 얼굴에서 인간적인 두려움이 완전히 증발하고, 그 자리에 타인을 짓밟는 살육의 황홀경이 차오르기 시작했다.
"감히 체스 말이 주인을 물어?"
완벽하게 각성한 우진이 서늘하게 입꼬리를 비틀어 올리며 쇠파이프를 높이 치켜들었다.
" 너희 같은 버러지들은 그냥 내 대본대로 움직이면 되는 거야. 감히 어디서 반항을 해? 생각하지 마. 넌 그냥 내 도구니까."
퍽! 퍼억!
무자비한 타격음이 폐공장을 울렸다.
우진은 피가 튀어 시야를 가리자, 짜증스럽게 고개를 저으며 피 묻은 손바닥으로 자신의 안경 힌지를 꾹 밀어 올렸다.
그리고는 피가 뚝뚝 떨어지는 쇠파이프를 든 채, 구석에서 사시나무처럼 떨고 있는 지훈에게 다가갔다.
눈앞에서 끔찍한 살육을 지켜본 지훈의 눈동자는 경악과 공포로 찢어질 듯 확장되어 있었다. 우진은 덜덜 떠는 지훈의 두 손을 끌어당겨 억지로 피 묻은 쇠파이프를 쥐여주며,
더없이 다정하고 소름 끼치는 목소리로 속삭였다.
" 지훈아. 많이 무서웠지?
널 지옥으로 몬 쓰레기들, 내가 다 치워줬잖아."
"흐으… 흑…."
"근데 말이야. 내가 이 일로 감옥에 가면,
남은 학교생활 내내 넌 누가 지켜주지?"
지훈의 숨이 턱 막혔다.
우진이 핏자국이 묻은 손으로 지훈의 파랗게 질린 뺨을 부드럽게 쓸어내렸다.
" 넌 1년 내내 맞고 산 불쌍한 피해자야.
매일 죽고 싶을 만큼 괴롭힘당하다가,
오늘 살기 위해 발버둥 친 거라고 하면 돼.
법은 약자인 네 편이거든. 알지?
난 밖에서 널 위해 완벽한 목격자
증언을 해줄 거고."
"우, 우진아…."
" 내가 널 구원했으니까,
이젠 네가 날 증명할 차례야. 내 착한 장기 말."
가장 압도적인 폭력을 보여준 직후,
살기 위한 동아줄을 내려주듯 스스로 십자가를 지게 만드는 교묘하고 악랄한 세뇌.
지훈은 공포에 질린 채 쇠파이프를 끌어안고 짐승처럼 흐느꼈다.
스스로 신이라 믿었던 우진마저,
결국 저 얼굴 없는 악마가 쥐고 흔드는 체스판 위의 알량한 꼭두각시에 불과했다. 어둠 속으로 녹아들던 형체가 기이한 멜로디를 흥얼거리기 시작했다.
휘— 휘— 휘익—
"이 개새끼가…!!"
웅의 맹렬한 포효와 함께,
시야가 쏜살같이 현실로 빨려 들어왔다.
"헉!"
웅이 거친 숨을 토해내며 눈을 번쩍 떴다.
진짜 매개체와 연결된 다이빙은 부작용 없이 웅에게 진실만을 쥐여주었다.
현실의 시간은 고작 1초가 지나있었다.
"형사님. 갑자기 남의 얼굴에 무슨 짓입니까?"
우진이 불쾌한 기색을 숨기지 않으며 한 걸음 물러섰다. 웅이 손을 거두며 씩 웃었다.
"아, 미안. 근데 학생. 안경 경첩 틈새에 먼지치고는 색깔이 너무 탁해서 말이야."
웅이 목소리를 한 톤 낮추며 우진을 향해
몸을 기울였다.
"폐공장에서 피가 제법 튀었을 텐데.
옷은 갈아입었어도, 그 미세한 힌지 틈새까지 닦을 생각은 못 했나 봐?"
우진의 어깨가 미세하게 굳어졌다.
하지만 그는 이내 평온한 가면을 고쳐 쓰고는 콧방귀를 꼈다.
"무슨 억지를 부리시는 건지. 설마 제 안경을 뺏기라도 하시게요?
엄연히 강압 수사입니다. 변호사 부르겠습니다."
"에이, 경찰이 어떻게 깡패처럼
남의 물건을 뺏어. 억지로 안 뺏을게."
웅이 여유롭게 어깨를 으쓱하며 뒷목을 긁적였다. 그러더니 짐짓 서늘하게 가라앉은 목소리로 덧붙였다.
"근데 학생. 내가 지금 바로 그 안경에 대한 압수수색 영장을 청구할 건데. 혹시라도 영장 떨어지기 전 그사이에 안경을 깨끗하게 씻어버리거나, 실수로 부러뜨리기라도 하면 어떻게 되는 줄 알아?"
우진의 은테 안경 너머로 미세한 파문이 일었다. 웅이 결정타를 날리듯 빙그레 웃으며 쐐기를 박았다.
"증거인멸. 그거 현장에서 바로 긴급체포 감이거든. 미성년자라도 얄짤없어.
전교 1등 머리로 계산해 봐. 지금 여기서 임의제출 형식으로 깔끔하게 루미놀 검사만 받고 서장님 사과를 받아낼지, 아니면 증거인멸 우려로 내일 아침 학교 정문에서 수갑 차고 구속될지."
우진은 속으로 빠르게 득실을 계산했다. 교복과 얼굴, 손에 묻은 피는 화장실에서 완벽하게 씻어냈다. 저 형사가 미세한 나사 틈새를 짚어낼 줄은 몰랐지만, 설마 거기서 유의미한 혈흔 반응이 나올 리 없다는 오만한 확신이 있었다. 여기서 버티다가 구속이라는 오점을 남길 이유는 없었다.
우진이 서늘한 눈으로 웅을 노려보다가,
안경을 벗어 신경질적으로 내밀었다.
"마음대로 하시죠. 대신, 아무것도 안 나오면 서장님께 직접 사과받겠습니다."
"물론이지. 잠깐만 시야 좀 흐려도 참아."
웅이 빙긋 웃으며 안경을 건네받았다. 그리고 대기하고 있던 권 형사와 함께 곧장 지하 1층 사무실로 걸음을 옮겼다.
지하 1층, 진술심리분석팀 암실.
빛 한 줌 들어오지 않는 어두운 방 안. 백세진이 웅이 가져온 은테 안경을 특수 스탠드 위에 올려놓았다.
"교복이나 피부에 묻은 피는 빡빡 닦아냈겠지만, 저 좁디좁은 힌지 나사 틈새까지 엉겨 붙은 혈흔은 안경을 완전히 분해하지 않는 이상 절대 못 지우지."
세진이 스프레이 통을 흔들며 안경 경첩을 향해 시약을 아낌없이 분사했다.
치이익—!
숨 막히는 정적.
그리고 3초 뒤, 칠흑 같은 암실 속에서 은색 안경 힌지 틈새를 따라 소름 끼치도록 선명한 형광 푸른빛이 타오르기 시작했다.
루미놀 반응.
결코 지울 수 없는 살육의 증거였다.
"빙고. 사람 피 맞네."
세진이 어둠 속에서 씩 웃었다.
조사실로 다시 불려 온 우진의 손목에는 가차 없이 수갑이 채워졌다. 빼도 박도 못하는 과학적 물증과, 차태경이 복구해 낸 텔레그램 협박 데이터 앞에서는 그 잘난 변호인단도 손을 쓸 수 없었다.
자신이 완벽하게 통제하고 있다고 믿었던 판이 산산조각 났음을 깨달은 우진의 얼굴은 하얗게 질려있었다.
그 광경을 지켜보던 지훈이, 그제야 무릎을 꿇고 통곡하기 시작했다. 자신을 지켜준 구원자인 줄 알았던 친구가, 사실은 자신을 지옥으로 밀어 넣고 체스 말로 부려먹은 진짜 악마였다는 진실 앞에서의 오열이었다.
사건은 완벽하게 뒤집혔다.
꼬리 자르기를 지시했던 윗선의 계획은 엎어졌고, 지하 1층의 진술심리분석팀은 보란 듯이 진짜 가해자의 손목에 수갑을 채웠다.
며칠 뒤, 지하 사무실.
"팀장님. 우진이 그 새끼, 집안 백 써서 빠져나가려던 거 제가 딥웹 털어서 모아둔 데이터 들이미니까 변호사들도 다 나가떨어지던데요."
태경이 모니터에서 눈도 떼지 않은 채
무심히 보고했다.
"혈흔 비산 데이터랑 피해자들 골절 형태 비교한 보고서도 한몫했지. 뭐, 비뚤어진 안경 고쳐 씌워주다 피부터 찾아낸 팀장님 징그러운 직감 덕분이지만."
세진이 샌드위치를 오물거리며
웅을 향해 고개를 까딱였다.
세진이 만족스러운 듯 커피를 홀짝이며
웅의 어깨를 툭 쳤다.
"장주임님. 진짜 그거 직감 맞아요? 어떨 땐 꼭 남의 머릿속에 들어갔다 온 것 처럼?"
웅은 대답 대신 속으로 씁쓸한 미소를 지었다.
비록 지훈의 뇌에서 튕겨져 나오며 잃어버린 어머니의 체온은 가슴을 시리게 했지만,
어둠 속에서 라이터를 튕기며 우진을 조종하던 그 악마의 흔적을 또다시 확인했다는 전율이 온몸을 감싸고 있었다.
"뭐, 형사 짬바죠. 직감 하나는 끝내주잖아요, 제가."
웅이 사람 좋은 미소를 지어 보였다.
경찰청 지하 1층. 누구도 기대하지 않았던 유배지에서, 가장 치명적이고 유니크한 사냥개들의 무대가 완벽한 막을 올리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