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ASE 4. 설계된 함정 (하)

[CASE 4] 설계된 함정 (하)

by 장경장

CASE 4. 설계된 함정 (하)


​다음 날 아침,

경찰청 지하 1층 진술심리분석팀 사무실.


​"아오! 내가 이래서 본청 놈들을 극혐하는 거야!"


​권형사가 거칠게 문을 열고 들어오며 두꺼운 서류 철을 책상 위로 내동댕이쳤다.


파티션 너머에서 키보드를 두드리던 차태경이 헤드폰 한쪽을 슬쩍 밀어 올렸고,

백세진은 부검 소견서를 넘기던 손을 멈췄다.


​"팀장님. 아침부터 왜 그렇게 열을 내십니까."


​커피를 내리던 웅이 사람 좋은 미소를 지으며 돌아보았다. 최우진 사건을 멋지게 해결한 이후, 지하팀의 분위기는 전과 다르게 묘한 활기와 끈끈함이 돌고 있었다.


​"말도 마라. 여청과장 그 능구렁이 같은 양반이, 새벽에 영등포에서 터진 일가족 살인사건을 우리 팀으로 짬처리했다.

강력계가 맡아야 할 굵직한 사건을 왜 굳이 진술분석팀에 떠넘기냐고 따졌더니,

뭐래는 줄 아냐? 피의자가 입을 꾹 다물고 있으니 우리 팀의 그 '신기루 같은 직감'으로 자백 좀 받아내 보라더라."


​권형사가 씩씩거리며 냉수를 들이켰다.
사건의 개요는 참혹했다.

새벽 3시경, 평범한 40대 가장이 수면제를 먹고 잠든 아내와 10대 딸을 흉기로 찌르고,

본인도 베란다에서 투신을 시도했다.

하지만 아파트 화단 나무에 걸려 목숨을 건졌고, 이웃의 비명 소리 신고를 받고 출동한 지구대에 의해 현장 확인 후 상태가 위중하여 구급차에 실려 병원으로 이송된 상태였다.


​세진이 흥미롭다는 듯 책상 위에 던져진 현장 사진들을 훑어보았다.


"혈흔 비산 형태를 보니까 완전히 난도질을 해놨네. 동기가 완전히 없어.

빚도 없고 가정불화도 없었는데."


​웅이 씁쓸하게 웃으며 커피잔을 내려놓고,

무심히 서류 더미에 섞인 '피의자 소지품 목록' 사진을 집어 들었다.


투신 직후 응급실에서 피의자의 바지 주머니를 털어 나온 유류품들을 찍은 사진이었다.


순간, 웅의 표정이 벼락이라도 맞은 듯

딱딱하게 굳어버렸다.


사진을 쥐고 있던 웅의 손가락이 미세하게, 그러나 통제할 수 없을 만큼 맹렬하게 떨리기 시작했다.


​"장주임님? 왜 그래요? 안색이 백지장인데."


​피 묻은 지갑, 차 열쇠.

그리고 그 옆에 덩그러니 놓인

낡은 금빛 지포 라이터.


그것은 단순한 라이터가 아니었다. 단 하루도 빠짐없이 웅의 악몽 속에 나타나 숨통을 조여오던 그 끔찍한 소리를 내는 사물이,

아무런 연관도 없는 영등포 살인마의 주머니 속에서 보란 듯이 튀어나왔다.


​'나한테… 보낸 거다.'


​지난번 최우진 사건에서 자신의 다이빙을 눈치챈 그 악마가, 오직 장웅 한 명을 유인하기 위해 던져놓은 피비린내 나는 초대장이었다.


​"팀장님. 용의자 지금 어디 있습니까."


웅의 목소리가 쇳소리가 날 만큼 차갑게

얼어붙어 있었다.


​"어? 흉부 쪽을 다쳐서 병원 중환자실에 결박되어 있지. 아직 의식은 오락가락한다는데…

야, 장웅! 너 표정이 왜 그래! 어디 가!!"


​웅이 권 형사의 말을 끝까지 듣지도 않은 채, 사진을 꽉 움켜쥐고 다급하게 지하 사무실을 박차고 나갔다.


​끼기기긱— 쾅!!


대학병원 지하 주차장. 거칠게 미끄러지며 멈춰 선 웅의 차에서 타는 냄새가 진동했다.

핏발 선 두 눈과 거칠게 몰아쉬는 숨소리.

오랜 세월 자신을 갉아먹던 악몽의 실체를 드디어 찢어 죽일 수 있다는 광기뿐이었다.


​중환자실 앞.
피의자 감시를 위해 파견된 관할서 형사 한 명이, 피의자의 유류품이 담긴 투명한 증거물 봉투를 인수인계받아 들고 서성이고 있었다.


웅은 다짜고짜 달려가 형사의 손에서

지퍼백을 거칠게 낚아챘다.


​"어, 뭡니까! 당신 누구야!"


"비켜!!"


​웅이 제지하려는 형사를 야수처럼 밀쳐내고

병실 문을 열어젖혔다.


삐— 삐— 삐—.


침대 위에는 가슴에 붕대를 감은 40대 가장이 의식을 잃은 채 결박되어 있었다.


​"하아, 하아…."


뒤따라 들어온 형사가 당황해 무전기를 드는 사이, 웅은 거친 숨을 토해내며 지퍼백을 찢어발겼다. 차가운 금빛 금속의 감촉.

이성이 미친 듯이 경고등을 켰지만,

여기서 멈출 수 없었다.


​"어디 숨었는지 불어, 이 껍데기 새끼야."


웅이 라이터를 꽉 움켜쥔 채, 의식을 잃은 피의자의 멱살을 거칠게 틀어쥐었다.


​[조건 충족: 범행의 매개체(금빛 라이터) + 타겟(피의자) + 의도적인 신체 접촉]


​삐이이이—!


고막을 찢는 이명과 함께 시야가 맹렬하게

빨려 들어갔다.


하지만 이번 다이빙은 달랐다.

수천 개의 날카로운 유리 파편이 소용돌이치는 믹서기 한가운데로 맨몸이 내던져지는 듯한 끔찍한 압박감.


​쿵!


바닥에 곤두박질친 웅이 비틀거리며 몸을 일으켰다.


"여기… 여기는…."


​웅의 동공이 격렬하게 요동쳤다.

40대 가장의 무의식이어야 할 공간에는 아무것도 없었다. 기억도, 감정도 모조리 파괴된 채 오직 빛 한 줌 들어오지 않는 칠흑 같은 어둠과 차갑고 끈적한 안개만이 발목을 감싸고 있었다.


피의자의 정신을 완전히 붕괴시키고,

그 자리에 오직 장웅을 죽이기 위한 '지뢰'만 심어둔 완벽한 함정.


딸깍, 챙—.


짙은 어둠 속에서 익숙한 금속음이 울려 퍼졌다. 안개처럼 일렁이는 그림자의 실루엣이

여유롭게 걸어 나왔다.


그림자가 웅의 귓가로 스르륵 몸을 숙였다. 그리고 20년 전 그날부터 단 한 번도 웅의 뇌리를 떠나지 않았던, 그 지독한 세 음절을 다정하게 속삭였다.


​"찾! 았! 다!"


​"이 개새끼가아아!!"


웅이 주먹을 꽉 쥐고 그림자를 향해 짐승처럼 쇄도했다. 하지만 웅의 주먹이 닿으려는 찰나,


​우두둑!


안개 속에서 튀어나온 시퍼런 쇠사슬들이 순식간에 웅의 온몸을 뱀처럼 칭칭 옭아매 바닥으로 처박았다.


​"크아악!"


"참 안타깝네요, 장웅 경찰관.

무의식을 함부로 엿보는 건 아주

위험한 버릇인데."


​그림자의 목소리는 조롱이라기보단,

타이르는 듯 한없이 부드럽고 서늘했다.


그림자가 바닥에 짓눌린 웅의 얼굴을 향해 구두코를 툭툭 가져다 댔다.


​"여긴 내 마스터키로 완벽하게 포맷해 둔 내 영토입니다. 문을 부수고 들어온 불청객이 통제할 수 있는 공간이 아니죠."


"허억, 헉…!"


"타인의 무의식에서 강제로 튕겨져 나가면,

그 역류로 인해 해마가 타버린다는 건 알고 있겠죠? 내가 이 공간의 자폭 스위치를 누르면,


당신이 '장웅'이라는 인간으로 살 수 있게 버텨주던 그 알량한 기억들이 모조리 타버릴 겁니다. 평생 텅 빈 껍데기로 살아가게 되겠죠."


콰아아아앙—!!


칠흑 같던 함정 공간이 붉은 화염에 휩싸이며 폭발하듯 붕괴하기 시작했다. 무의식의 거대한 붕괴 에너지가 쇠사슬에 묶인 웅의 뇌신경을 향해 수만 볼트의 번개처럼 내리꽂혔다.


​"크아아아아아악!!!"


처음 자전거를 타던 날의 환희,

어제 팀원들과 웃으며 먹었던 점심 식사의 온기.

웅의 영혼을 지탱하던 소중한 기억들이 시꺼멓게 타들어 가며 잿더미로 변해갔다.


​현실의 병실.


"이봐요! 형사님!! 손 떼!!"


관할서 형사가 기겁하며 피의자의 멱살을 잡고 멈춰 선 웅의 어깨를 강하게 잡아당겼다.


​"허어어억…!"


억지로 연결이 끊어지는 순간,

웅의 몸이 활대처럼 팽팽하게 휘어지며 허공으로 튀어 올랐다가 바닥으로 처박혔다.


코와 입에서 검붉은 피가 분수처럼 뿜어져 나왔고, 뒤집힌 두 눈의 동공은 초점을 완전히 잃은 채 사방으로 요동치고 있었다.

극심한 뇌 손상으로 인한 전신 발작이었다.


​"어, 어어?! 의사!! 의사 불러요!!!"


형사가 피투성이가 된 웅을 보며 새파랗게 질려 소리쳤다.


​끼기기긱—!!


그때, 밖에서 급정거하는 타이어 소리와 함께 권 형사, 차태경, 백세진이 사색이 되어 중환자실 복도를 향해 미친 듯이 뛰어오고 있었다.

하지만 한발 늦었다.


​삐이이이이이—


병실을 채우던 피의자의 심전도 소리와,

바닥에 쓰러진 웅의 기괴한 숨소리가 뒤섞이며 차갑게 식어가고 있었다. 무적 같았던 사냥개가,


단 한 번의 사냥으로 처참하게

숨통이 끊어지기 직전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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