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ASE 5. 심연의 추적자들 (상)

​[CASE 5] 심연의 추적자들 (상)

by 장경장

CASE 5. 심연의 추적자들 (상)


​"야, 장웅!! 숨 쉬어! 장웅!!"


​권 팀장이 피투성이가 된 웅을 끌어안고 짐승처럼 절규했지만, 웅의 발작은 멈추지 않았다.


기억을 모조리 태워버리는 그림자의 함정에 완벽하게 잡아먹힌 것. 뒤집힌 두 눈의 동공은 초점을 잃었고, 코와 입에서 쏟아진 검붉은 피가 권 팀장의 재킷을 흥건하게 적셨다.


​"비키세요! 환자 바이탈 떨어집니다!

당장 기도 확보하고 응급실로 베드 빼!!"


​코드 블루 알람이 병동을 찢을 듯 울려 퍼지고, 쏟아져 들어온 의료진들이 웅의 몸을 강제로 떼어내 이동식 침대에 눕혔다.


권팀장과 세진, 태경은 피 묻은 손을 덜덜 떨며 멀어지는 웅의 침대를 망연자실하게 바라볼 수밖에 없었다.


​경찰청 지하 1층의 무적 같았던 사냥개,

장주임. 그가 단 한 번의 사냥으로 처참하게 숨통이 끊어지기 직전이었다.


​몇 시간 뒤, 중환자실 유리창 너머.


삐— 삐— 삐—


건조하고 규칙적인 기계음만이

차가운 공기를 가르고 있었다.


​산소호흡기를 단 채 미동조차 없는 웅의 얼굴은 창백하게 굳어있었다.

급성 뇌압 상승과 신경망 과부하.


의사는 뇌사 상태에 빠지지 않은 것만으로도 기적이라고 했다.


언제 깨어날지, 깨어난다고 해도 예전의 기억과 이성을 온전히 유지할 수 있을지는

아무도 장담할 수 없었다.


​유리창 너머로 그 참담한 광경을 지켜보던 지하 1층 진술심리분석팀의 세 사람 위로 무거운 침묵이 짓눌렀다.


​"…씨발."


권팀장이 주먹으로 애꿎은 병원

벽을 거칠게 내리쳤다.


늘 실없는 농담을 던지며 "스마일~"을 외치던 녀석이었다.

윗선의 압박에도 굴하지 않고 가장 먼저 사건 현장으로 튀어 나가던 미련한 부하 직원.

그런 장주임이 정체불명의 용의자에게 동기화했다가 하루아침에 폐인이 되어버린 것이다.


​"이러고 있을 시간 없습니다, 팀장님."


늘 모니터만 쳐다보며 만사에 무심하던 차태경의 목소리가 쇳소리처럼 차갑게 가라앉아 있었다. 그의 목에 걸려있던 노이즈 캔슬링 헤드폰은 이미 쓰레기통에 처박힌 지 오래였다.


​"장주임님을 저 지경으로 만든 새끼.

현장에 그 금빛 라이터를 던져놓고 대놓고

도발한 그 씹새끼부터 찾아야죠."


​"태경이 말이 맞아요, 팀장님."


백세진이 이를 악물었다.

그의 손에는 아까 병실 바닥에 나뒹굴던 피 묻은 증거물 지퍼백(라이터)이 들려 있었다.


관할서 형사들이 혼비백산한 틈을 타 몰래 회수해 온 것이다. 그의 눈빛은 해부대 위의 시신을 바라볼 때보다 훨씬 더 예리하고 살벌했다.


​"장주임이 목숨 걸고 물어온 미끼예요.

우리 팀 건드린 대가가 어떤 건지 똑똑히 보여주자고요."


​오합지졸 유배지라 불리던 지하 1층의 돌연변이들.


사경을 헤매는 동료의 모습이, 잠들어 있던 사냥개들의 목줄을 완전히 끊어버린 것이다.

​같은 시각, 웅의 무의식.
​잿가루가 눈처럼 흩날리는 칠흑 같은 심연.
웅은 불타버린 폐허 한가운데에 홀로 서 있었다. 그림자의 악의적인 함정에 빠져,

소중했던 기억의 파편들이 모두

새카만 잿더미로 변해버린 끔찍한 공간.


​"허억, 헉…."


​웅이 극심한 고통에 비틀거리며 잿더미 위를 걸었다. 자신이 누구인지, 왜 이곳에 있는지조차 희미해져 가는 극단적인 자아 상실의 위기.


그때였다. 모든 것이 불타버린 웅의 무의식 가장 밑바닥, 한 번도 열린 적 없던 육중한 철문 하나가 덜컹이며 틈새를 벌렸다.


​20년 동안, 어린 장웅의 뇌가 스스로를 보호하기 위해 무의식의 가장 깊은 심연에 강제로 봉인해 두었던 '그날의 진짜 기억'이었다.


그림자가 파놓은 함정 탓에 최근의 기억을 지키던 방어벽이 모두 타버리면서, 아이러니하게도 가장 밑바닥에 봉인되어 있던 원초적인 기억이 마침내 해방된 것이다.


​웅이 홀린 듯 틈새가 벌어진

철문 안으로 들어섰다.


웅이 홀린 듯 틈새가 벌어진 철문 안으로 들어섰다.


비릿한 피 냄새. 20년 전의 낡은 골목길이었다. 숨조차 쉬지 못하고 쓰레기 더미 뒤에 웅크려 떨고 있는 일곱 살의 자신.


그리고 골목 가로등 불빛 아래,

웅의 아버지가 초점 잃은 눈으로 피 묻은 칼을 쥔 채 무릎을 꿇고 있었다.
​그 앞에는 금빛 라이터를 쥔 젊은 시절의 백도현이 서 있었다.


​"자, 훌륭해. 이제 그 칼로 네 아내와 아이를 찌르고 너도 편안해지는 거야.

그게 진정으로 가난에서 가족을 구원하는 길이니까."


​다정한 악마의 속삭임.

백도현이 라이터 뚜껑을 열고 닫았다.


딸깍, 챙—.


그 완벽한 최면에 걸린 아버지가 멍한 표정으로 칼을 들어 올렸다. 쓰레기 더미 뒤에 숨은 어린 웅을 향해 다가오던 그 순간.


​"아… 안 돼…."


​웅과 눈이 마주친 아버지의 눈동자에 기적처럼 초점이 돌아왔다.


그것은 백도현의 완벽한 최면조차 뚫어버린, 자식을 지켜야 한다는 부모의 처절하고도 거대한 '사랑'이었다.


​"내 아들… 웅이는, 안 돼…!"


​챙그랑! 아버지가 스스로 손을 찢어발기며 쥐고 있던 칼을 바닥에 내던졌다.


그 순간, 한없이 자애롭던 백도현의 얼굴이 기괴하게 일그러졌다.

타인의 감정을 완벽하게 조종해 왔던 가스라이팅의 신.


그의 지배력이 '부모의 맹목적인 사랑' 앞에서 생애 처음으로 패배하고 산산조각 난 것이다.


​"…감히 내 완벽한 구원을 거부해?

벌레 같은 것들이."


​이성을 잃은 백도현이 바닥에 떨어진 칼을 직접 집어 들었다. 언제나 타인의 손을 빌려 손에 피 한 방울 묻히지 않던 그가,

최초로 룰을 깨고 직접 살인을 저지르는 순간이었다.


​푹—!


아버지가 피를 토하며 쓰러졌고,

비명을 지르며 달려든 어머니마저 어린 웅을 온몸으로 감싸 안은 채 백도현의 칼날에 처참하게 난도질당했다.


​피투성이가 된 골목길.

백도현이 식씩거리며 쓰레기 더미에 숨어 떨고 있는 일곱 살의 웅을 내려다보았다.


​"이 불쾌한 실패의 기억은… 완벽하게 지워주마."

​딸깍, 챙—.


피 묻은 금빛 라이터가 켜지고,

백도현이 어린 웅의 머리채를 틀어쥐며 강제로 무의식에 다이빙했다.

웅의 머릿속을 헤집어 이 끔찍한

첫 실패의 증거를 백지장처럼

조작해 버릴 작정이었다.


​하지만 백도현이 웅의 심연으로 쳐들어간 순간, 믿을 수 없는 일이 벌어졌다.


죽어가는 순간까지 웅을 끌어안았던 부모의 처절한 사랑과 웅의 살고자 하는 본능이 결합하여, 무의식 속에 거대한 방어막을 쳐버린 것이다.


​콰아아아앙—!!!


"크아아아악!!"


​타인의 정신을 제집처럼 드나들던 백도현이, 엄청난 역류를 정통으로 두들겨 맞고 현실로 튕겨져 나갔다. 코와 입에서 핏물이 터져 나온 백도현이 경악에 찬 눈으로 기절한 어린 웅을 바라보았다.


​다이빙이 통하지 않은 최초의 생존자.


그리고 무의식이 튕겨 나가는 그 엄청난 충격과 역류의 반동으로 인해, 웅의 뇌 해마가 타버리며 과거의 기억이 날아가는 동시에… 타인의 무의식에 주파수를 맞출 수 있는 '다이버'의 스파크가 웅의 뇌신경에 새겨지고 있었다.
​모든 진실을 마주한 웅의 동공이 찢어질 듯 확장되었다.


​자신이 왜 과거를 잃었는지,

어떻게 다이버가 되었는지.

그리고 놈이 왜 그렇게 오랜 시간 동안 자신을 곁에 두고 감시하며 파놉티콘의 룰에 집착했는지.

​백도현에게 장웅은, 자신의 지배력이 통하지 않는다는 걸 증명한 '유일한 오점이자 최초의 실패작'이었던 것이다.

​​다시 현실. 어느새 창밖으로 짙은 어둠이 내려앉은 경찰청 지하 1층 사무실.


​"찾았습니다."


암실에서 뛰쳐나온 백세진이 현미경 분석 데이터가 띄워진 태블릿을 권 팀장의 책상 위로 던지며 소리쳤다.

반나절을 꼬박 매달려 쥐어짜 낸 결과물이었다.

"현장에 떨어져 있던 금빛 라이터.

그거 공장제 기성품 아니에요.

이탈리아 밀라노의 특정 공방에서 수제작으로만 납품하는 한정판 모델.

구매자 명단 뽑아낼 수 있어요."


​"그럴 필요 없어. 아니, 그럴 수 없다는 게 맞겠지."

​차태경이 충혈된 눈으로 모니터를 가리켰다.

그의 목소리가 미세하게 떨리고 있었다.


"피의자의 압수된 스마트폰에서 다크웹 우회 라우터를 발견했어. 근데… 이상해. 20년 동안 꼬리표 하나 안 남기던 놈이, 핑(Ping) 데이터 하나를 암호화도 안 하고 통째로 열어뒀어.

마치 누군가 보라는 듯이."


​"뭐? 열어뒀다고?"


​"해킹으로 뚫은 게 아니야. 놈이 '금빛 라이터'를 던져두고, IP 주소까지 빵 부스러기처럼 친절하게 흘려둔 거야. 완벽한 함정이자, 초대장이지."


​태경이 마른침을 삼키며 엔터키를 눌렀다.
지직거리는 노이즈와 함께, 스피커를 통해 소름 끼치도록 다정하고 신뢰감 넘치는 남자의 목소리가 사무실에 울려 퍼졌다.


​[이건 살인이 아닙니다. 평생을 자책하던 아버님이 아이들의 고통을 끊어주는 숭고한 결단이죠.

진정한 가장으로서의 마지막 책임입니다.]


​그 목소리를 듣자마자, 내내 핏발 선 눈으로 서류를 뒤지던 권 팀장이 책상을 쾅 내리치며 일어났다. 그의 얼굴이 하얗게 질려있었다.


"이 목소리… 설마, 아니지?

씨발, 말도 안 돼. 이 40대 가장 피의자가 우울증 치료를 받으려고 다녔던 심리 상담 센터…

이름이 '도현 멘탈 클리닉'이야."


​태경이 모니터 화면을 반으로 분할하며 포털 사이트의 실시간 뉴스 채널을 띄웠다.


[마음을 치유하는 국민 멘토! 백도현 원장, 오늘 밤 '힐링 토크쇼' 생방송 출연]


​화면 속, 고급스러운 스리피스 수트를 입고 인자한 미소를 짓고 있는 중년의 남자.

온 국민이 사랑하는 백도현.


"놈은 지금 자기가 가장 완벽하게 통제할 수 있는 저 생방송 무대 한가운데서…

장주임이 제 발로 걸어 들어오기만 여유롭게 기다리고 있는 겁니다."


​세 사람의 시선이 약속이라도 한 듯,

생방송 화면 속에서 눈물을 훔치는 방청객에게 따뜻한 위로의 말을 건네는

백도현의 얼굴로 향했다.

​[상처는 극복할 수 있습니다.

여러분의 무거운 짐을,

이제 제가 나누어 지겠습니다.]


​카메라를 향해 다정하게 미소 짓는 백도현.

그의 세련된 안경 너머로 번뜩이는 뱀 같은 눈웃음이, 스피커에서 흘러나오던 다크웹의 살인교사범 목소리와 완벽하게 겹쳐졌다.


​온 나라의 존경을 받는 힐링의 아이콘.

그 거룩한 가면 뒤에 숨어,

20년 동안 사람들의 뇌를 뜯어먹고 무의식을 조종해 온 최악의 사이코패스.


마침내, 장주임을 죽음으로 몰아넣은 완벽한 악마의 실체가 지하 1층 사냥개들의 이빨 앞에

그 참혹한 민낯을 드러내는 순간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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