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ASE 5. 심연의 추적자들 (하)

​[CASE 5] 심연의 추적자들 (하)

by 장경장

CASE 5. 심연의 추적자들 (하)


​경찰청 지하 1층 진술심리분석팀 사무실.
모니터 속 백도현의 얼굴을 확인한 세 사람 사이에 무거운 정적이 내려앉았다.


​"씨발… 하필이면 국민 멘토야."


​권 팀장이 거칠게 마른세수를 하며 신음했다.
수십 권의 베스트셀러, 방송가의 섭외 1순위. 수백만 명의 맹목적인 추종자를 거느린

성역 중의 성역.


경찰청장조차 함부로 대하지 못하는

그 거물급 인사를,

고작 다크웹 우회 IP와 라이터 구매 내역만으로 잡아넣을 수는 없었다.


​"정식으로 압수수색 영장 청구하는 순간,

정보 다 새어 나가고 우리 팀은 내일 아침에 공중분해 될 겁니다.

도현 멘탈 클리닉의 VIP 명단에는 정재계 고위직들이 수두룩하니까요."


​세진의 냉정한 지적에 권팀장이 입술을 짓깨물었다.

그때, 맹렬하게 키보드를 두드리던 태경이 모니터 하나를 권 팀장 쪽으로 홱 돌렸다.


​​"그래서 영장 없이 갈 겁니다. 이거 보시죠."


​화면에 띄워진 것은 한남동 UN빌리지,

백도현의 펜트하우스 건축 도면이었다.


​"도면 뒤에 환기구도, 창문도 없는 10평 남짓한 완벽한 은폐 밀실이 있습니다.

아까 우리가 해킹해서 들었던 그 소름 끼치는 살인 교사 음성 파일들, 백도현이 그 다크웹 서버를 돌리며 환자들을 가스라이팅하고

범죄를 조종하던
'비밀 아지트'일 확률이 99.9%입니다.

백도현은 지금부터 2시간 동안 여의도에서 생방송을 진행하니까, 제가 펜트하우스 빈집에 들어가서 그 가스라이팅 서버를 통째로 털어오겠습니다."


​그것은 명백한 불법 가택 침입이자, 중범죄였다. 하지만 권팀장은 단 1초의 망설임도 없이 책상 서랍을 열고 묵직한 리볼버 권총을 꺼내

허리춤에 찼다.

​"세진아. 넌 차에 타서 주변 CCTV 통제하고

망 봐. 태경이 넌 내 뒤에 바짝 붙어서 문이나 따. 장주임 복수, 오늘 끝낸다."


​사경을 헤매는 동료를 위해, 사냥개들이 기꺼이 괴물이 될 준비를 마치고 사무실 문을 나서려는 찰나였다.


​끼익—.


​지하 사무실의 무거운 철문이 열리며,

짙은 피비린내와 함께 서늘한 공기가 밀려 들어왔다.


세 사람의 걸음이 그 자리에 벼락처럼 멈춰 섰다.


​"…어딜 그렇게 급하게 가십니까."


​어둠이 깔린 복도.
환자복을 입은 사내가 비틀거리며 서 있었다. 링거 바늘을 억지로 뽑아낸 듯 손등에서는 피가 뚝뚝 떨어지고 있었고,

창백한 얼굴에는 핏기가 하나도 없었다.


​"장, 장웅…! 너, 너 어떻게…!"


​권팀장이 기겁하며 달려가려 했지만,

웅은 대답 대신 사무실 안쪽을 향해 천천히 시선을 돌렸다.


그의 시선이 멈춘 곳은, 태경의 모니터에 띄워져 있던 생방송 토크쇼 화면이었다.

화면 속에서 방청객들을 향해 인자한

미소를 짓고 있는 백도현의 얼굴.


​방어벽이 불타버린 심연의 밑바닥에서 웅이 마주했던 20년 전 그 젊은 살인마의 얼굴이,

화면 속 중년의 국민 멘토와 완벽하게 겹쳐졌다.


​"저놈입니다."


​웅이 핏기 없는 입술을 달싹이며 쇳소리를 냈다.
권 팀장은 멈칫할 수밖에 없었다.

웅의 분위기가 평소와 너무도 달랐다.

늘 사람 좋게 휘어지던 눈웃음은 온데간데없고, 지옥불 속에서 갓 기어 올라온 악귀처럼 텅 비고 차가운 눈동자가 모니터를 찢어발길 듯 노려보고 있었다.


​웅은 무의식의 붕괴 속에서 스스로 족쇄를 끊고 현실로 돌아왔다. 하지만 그 대가는 참혹했다.
살기 위해 스스로 자신의 기억을 땔감으로 던져 넣었다. 권팀장에게 처음 칭찬받았던 날의 기쁨, 태경, 세진과 함께 밥을 먹으며 느꼈던 온기까지.


자신을 인간답게 만들어주던 그 따뜻한 감정의 파편들을 모조리 불태워버린 반동으로,

쇠사슬을 끊고 기적처럼 깨어난 것이다.


​이제 웅의 머릿속에 남은 감정이라고는 오직 하나. 백도현의 목통을 물어뜯어버리겠다는 지독한 살의뿐이었다.


​"백도현… 저 새끼가 여의도 생방송 스튜디오에 있다고요."


​웅이 비틀거리며 자신의 책상으로 다가가 서랍을 열었다. 철컥, 하는 건조한 쇳소리와 함께 웅의 손에 여분의 수갑과 삼단봉이 쥐어졌다.


​​"장주임님. 안 돼요,

당신 지금 뇌압이 정상치의 세 배…!"


세진이 만류하려 했지만 웅의 눈빛은 한 치의 흔들림도 없었다.


​"서버 쪼가리 털어봐야,

저 새끼가 거물급 로펌 앞세워서 꼬리 자르기 하면 끝입니다.

디지털 증거 따위로는 절대 저놈의

오만한 목줄을 꺾을 수 없어요."


웅이 피 묻은 환자복 위로 가죽 재킷을 걸치며 사무실 문을 나섰다.


​"야, 장웅! 너 제정신이야? 생방송을 치자고? 그건 수사가 아니라 테러야!"


권팀장이 앞을 가로막고 소리쳤다.

하지만 웅이 천천히 고개를 돌려 권팀장을 마주 본 순간, 권 팀장의 입술이 굳어버렸다.


​텅 빈 동공.


분노조차 증발해 버린,

인간의 것이라고는 믿을 수 없는 절대적인 공허함과 살의만이 그 눈동자 안에 도사리고 있었다.


권팀장은 직감했다.

장웅은 이미 돌아올 수 없는 강을 건넜고,

이 미친 사냥개를 멈출 방법은 백도현의 숨통을 끊어주는 것뿐이라는 걸.


​"…그 새끼가 가장 완벽하다고 믿는 곳,

온 국민이 지켜보는 그 화려한 무대 위에서

놈의 껍데기를 직접 찢어버릴 겁니다."


웅이 서늘하게 읊조렸다.


​"가시죠. 오늘부로 국민 멘토 백도현은,

전국구 살인마로 방송 은퇴할 테니까."


​같은 시각, 여의도 D방송국 공개홀.


​[상처는 극복할 수 있습니다. 제가 여러분의 지옥에 함께 들어가 드리겠습니다.]


​"와아아아아—!!"


백도현의 멘트가 끝나자,

500석 규모의 방청석에서 우레와 같은 기립박수가 터져 나왔다.


눈물을 훔치는 방청객들과,

감동한 듯 고개를 끄덕이는 메인 MC.

완벽하게 연출된 '구원자'의 무대였다.


​생방송 종료 3분 전.


백도현이 카메라를 향해 다정하게 미소 지으며, 주머니 속에 들어있는 매끄러운 '금빛 지포 라이터'를 손가락으로 가볍게 쓰다듬었다.


'불쌍한 장웅. 지금쯤 뇌가 숯덩이가 되어 중환자실에서 침이나 흘리고 있겠군.'


​자신의 완벽한 승리를 확신하며 백도현의 입꼬리가 여유롭게 호선을 그리는 찰나였다.


​타닥, 탁!


스튜디오 구석, 비상구 암흑 속에서 차태경이 들고 있던 태블릿의 엔터키를 강하게 내리쳤다.


​끼기기기긱—!!


방송국 메인 서버가 일순간 먹통이 되며, 스튜디오의 조명 시스템이 미친 듯이 점멸하더니 메인 카메라의 빨간 불빛(REC)을 제외한 모든 보조 조명이 팟, 하고 꺼져버렸다.


​"뭐야! 조명팀!! 무슨 일이야!"


당황한 방청객들이 웅성거리고,

PD가 인컴에 대고 다급하게 소리치는 순간.


​쾅!!


생방송 스튜디오의 육중한 철문이 박살 나듯 열리며, 누군가 무대를 향해 성큼성큼 걸어 들어왔다.

피투성이가 된 환자복 위로

낡은 가죽 재킷을 걸친 사내.

웅이었다.


​그의 등 뒤로 권팀장과 세진, 태경이 출입구를 완벽하게 통제하며 도열해 있었다.


"뭐, 뭡니까! 생방송 중입니다! 경비!"


현장의 스태프들이 기겁하며 달려들려 했지만, 웅은 차가운 눈빛으로 그들을 밀쳐내고 거침없이 무대 중앙으로 직진했다.


​수백 명의 방청객과 전국으로 송출되고 있는 카메라의 렌즈가 오직 웅 한 사람을 향해 고정되었다.


절대 깨어날 수 없는 지옥에 처박아둔 사냥개가, 제 발로 살아서 이 화려한 무대 위로

걸어 올라온 것이다.


​그 순간, 백도현의 완벽했던 미소에 0.1초간 기괴한 균열이 생겼다.

'네놈이… 어떻게 멀쩡히 걸어 다니는 거지?'

안경 너머로 당혹감이 스쳤지만,

수십 년간 사람의 심리를 쥐락펴락해 온 최고의 포식자답게 그는 찰나의 놀라움을 갈무리하고 자리에서 부드럽게 일어났다.


​"어머, 방송 중에 갑작스러운 손님이 오셨네요. 많이 다치신 것 같은데… 제가 좀 도와드릴까요?"

카메라 앞에서는 끝까지 거룩한 구원자의 가면을 쓴 채, 백도현이 여유롭게 웅을 향해 손을 뻗었다.

​그러나 웅은 그 가증스러운 손을 무시한 채 백도현의 코앞까지 다가갔다.


방송국 카메라가 두 사람의 얼굴을

타이트하게 잡았다.


웅의 차갑게 가라앉은 동공이,

미소를 띤 채 번뜩이는 백도현의 뱀 같은 눈동자를 정확히 꿰뚫었다.


​그리고 카메라 마이크에는 잡히지 않을 만큼 작은 목소리로, 오직 백도현만이 들을 수 있게 귓가에 대고 서늘하게 속삭였다.


​"찾! 았! 다! 이 개새끼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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