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ASE 6. 부서진 체스판 (중)

[CASE 6] 부서진 체스판 (중)

by 장경장

CASE 6. 부서진 체스판 (중)


​우드드득—!!


​웅의 발밑에서 시작된 시꺼먼 균열이,

뱀이 기어가듯 새하얀 대리석 바닥을 가르며 사방으로 뻗어나갔다.


​절대적인 통제실 소파에 앉아있던 젊은 백도현의 눈썹이 미세하게 꿈틀거렸다.

타인의 무의식에 침투한 불청객이,


호스트의 공간 자체를 물리력으로 붕괴시키는 것은 이론상으로 불가능했다.


하지만 눈앞의 장웅은,

스스로 기억과 감정을 불태워버린 탓에 인간의 한계를 벗어난 '순수한 살의의 덩어리'

그 자체가 되어있었다.


​"…천박하게 짖어대는 꼴이라니. 치워라."


​백도현이 귀찮다는 듯 손가락을 튕겼다.


챙그랑—!!


​그 신호와 함께 원형 감옥을 둘러싸고 있던 수천 개의 유리문이 일제히 박살 났다.

파편이 눈보라처럼 쏟아지는 가운데,

목줄을 찬 수십 명의 환영들이 짐승 같은 괴성을 지르며 웅을 향해 폭포수처럼 쏟아져 내렸다.


​"죽여! 죽여어어어!"


​가장 먼저 튀어 나간 거구의 사내가 웅의 머리를 향해 쇠파이프를 무자비하게 내리쳤다.


퍼억! 어깨뼈가 으스러지는 듯한 둔탁한 파열음이 울렸다.

무의식 속의 고통은 현실과 동일하다.

보통의 다이버라면 비명을 지르며

나뒹굴었을 충격.


​그러나 웅의 고개는 단 1도 돌아가지 않았다.
텅 빈 눈동자는 오직 중앙 통제실에 앉아있는 백도현만을 똑바로 응시한 채,

자신을 가격한 거구의 멱살을 잡고 그대로 바닥에 짐승처럼 짓이겨버렸다.


​콰직—!!


환영의 안면이 함몰되며 새카만 재로 흩어졌다. 이어 덤벼든 여자의 식칼이 웅의 허벅지를 깊숙이 찔러 넣었지만, 웅은 멈추지 않았다.


허벅지에 칼이 꽂힌 채로 무감각하게

전진하며 앞을 가로막는 모든 환영들을

도살하듯 찢어발겼다.


​쩌저적—!


피투성이가 된 웅이 한 걸음씩 통제실을 향해 전진할 때마다, 새하얀 파놉티콘 전체가 거대한 지진이 난 듯 맹렬하게 흔들렸다.


식칼에 찔린 허벅지에서 검붉은 피가 뚝뚝 떨어졌지만,
고통을 느끼는 신경 자체가 끊어진 기계처럼, 오직 백도현의 목구멍을 뜯어내겠다는 맹목적인 살의만이 웅의 육체를 움직이고 있었다.


​쿵, 쿠쿵—!!


마침내 피 묻은 워커가

대리석 계단을 밟고 올라와,

중앙 통제실의 두꺼운 방탄유리 벽 앞에 섰다.


유리벽 하나를 사이에 두고,

20년 전 어린 장웅을 짓밟았던 악마와 지옥에서 기어 올라온 복수귀의 시선이 맹렬하게 충돌했다.

​하지만 수백 명의 환영이 찢겨 나갔음에도, 유리벽 너머의 백도현은 조금도 당황하지 않았다.


오히려 그는 기괴한 열등감과 희열이 뒤섞인 눈으로 웅을 내려다보았다.


​"내가 왜 굳이 영등포 사건에 그 라이터까지 남겨가며 널 내 체스판으로 끌어들였는지 알아?"

​백도현이 방탄유리에 손을 짚으며 뱀처럼 서늘하게 웃었다.


​"최우진 사건 때,

내 영역을 엿보는 네 주파수를 느꼈거든.

20년 전, 내 완벽했던 통제력을 처음으로 깨부수고 도망쳤던 그 꼬맹이가…

감히 나랑 똑같은 다이버가 되어서 나타났으니까!"


​백도현의 눈동자에 기괴한 열등감과

살의가 번뜩였다.


​"그날 밤, 네 부모의 그 역겨운 맹목적인 사랑 때문에… 내가 룰을 깨고 내 손에 직접 피를 묻히게 만들었지! 그리고 그 더러운 오점을 지우려 네 머릿속에 들어갔다가,

오히려 너라는 괴물(다이버)을 각성시켜 버렸고. 넌 내 완벽한 인생에 남은 유일한 실패작이야, 장웅. 그래서 이번 기회에 아주 완벽하게 부숴주려고 널 초대한 거지."


​백도현이 손가락을 튕기자, 파놉티콘의 대리석 바닥이 일순간 20년 전의 핏빛 골목길로 변했다.

어둠 속에서, 배를 부여잡고 피를 토하는

한 여인이 기어 나왔다. 자신을 온몸으로 감싸안고 죽어갔던 웅의 어머니였다.


​"날 부수고 싶어?

널 살렸던 그 알량한 '가족애'의 환영 속에서 영원히 썩어 가라."


​텅 비어있던 웅의 동공이 순간 격렬하게 요동쳤다.
백도현의 비릿한 목소리와 함께,

환영 속 어머니가 원망스러운 눈으로 웅을 노려보며 식칼을 빼 들고 웅의 심장에 깊숙이 꽂아 넣었다.


​푹—!


극심한 심리적 고통이 육체를 찢는 듯한 쇼크로 밀려왔다. 웅이 피를 토하며 바닥에 엎드렸다.
백도현이 여유롭게 유리벽 안에서 웅을 내려다보았다.


​"봤지? 네가 아무리 발버둥 쳐도,

넌 내 최초의 실험체일 뿐이야.

네가 스스로 타버린 그 공허한 머릿속을,

내가 이 영원한 죄책감으로 다시 꽉 채워줄 테니까."


​"큭… 크큭…."


​그때였다.
바닥에 엎드려있던 웅의 어깨가 들썩이더니, 기괴한 조소가 새어 나오기 시작했다.
웅이 자신의 심장에 꽂힌 환영의 칼날을 맨손으로 꽉 움켜쥔 채 천천히 몸을 일으켰다.


고통으로 일그러져야 할 그의 눈동자는,

소름 끼칠 정도의 고요한 살의로 번뜩이고 있었다.


​"단단히 착각했네.

내가 단순히 아픔을 피하려고

기억을 지운 줄 알아?"


​웅이 손에 힘을 주자,

쩌저적 소리와 함께 심장에 꽂힌 칼날부터 시꺼먼 금이 가기 시작했다.

웅의 무감각한 시선을 마주한 어머니의 환영이 기괴하게 일그러지며 당황한 듯 뒷걸음질을 쳤다.


​"네가 사람들의 그 아름다운 '사랑(愛)'을 약점 삼아 조종한다면…

내가 널 이길 방법은 하나뿐이잖아."


​파스스스—.


어머니의 환영이 비명조차 지르지 못한 채 머리끝부터 새카만 잿가루로 부서져 내리기 시작했다.


먹이가 될 '죄책감'과 '사랑'이 완벽하게 소각되어 버렸으니, 환영은 더 이상 형태를 유지할 수 없었다.


​"널 찢어 죽이기 위해, 나를 인간답게 만들던 '동료애'든, '가족애'든… 내 영혼의 밑바닥에 눌어붙은 모든 사랑과 감정을 모조리 '연료'로 태워버린 거야."


​어머니의 환영이 완벽한 잿더미로 변해 흩어지고, 웅의 몸에서 뿜어져 나오는 압도적인 화염이 그 재마저 집어삼키며 파놉티콘 전체를 맹렬하게 불태우기 시작했다.


​"이, 이게 무슨…! 내 통제가 왜…!"


​백도현의 동공이 처음으로 지진 난 듯 흔들렸다. 사람의 '사랑'을 땔감으로 써서 군림하던 가스라이팅의 신은, 사랑 자체를 스스로 재로 만들어버린 완벽한 광기 앞에서는 아무런 힘도 쓸 수 없었다.


​"조종할 감정조차 남아있지 않은 텅 빈 화약고를, 네까짓 게 무슨 수로 통제할 건데."


가스라이팅의 신은,

모든 것을 땔감으로 써버린 완벽한

광기 앞에서는 무력했다.


백도현의 절대적인 카드가 먹히지 않자,

파놉티콘 전체에 거대한 균열이 가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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