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ASE 7] 심연의 끝, 그리고 (에필로그)
"…백도현 원장의 충격적인 생방송 자백 이후, 경찰은 특수수사본부를 꾸려 전면 수사에 나섰습니다.
한편, 생방송 스튜디오에 난입해 무력을 행사했던 해당 경찰관들에 대해서는 감찰 조사가 진행 중이며…."
벽걸이 TV에서 흘러나오는
앵커의 건조한 목소리.
도심 변두리의 허름하고 낡은 상가 건물 지하. 경찰 마크 하나 붙어있지 않은 습기 찬 지하실 문을 거칠게 열고 권형사가 들어왔다.
"아오, 씨발! 본청 감찰 놈들.
우리가 다 차려놓은 밥상에 숟가락만 얹으면서 징계는 징계대로 먹이네."
권형사가 거칠게 서류 철을 내던졌다.
사이다 결말 같은 건 현실에 없었다.
백도현을 잡아넣은 공로는 인정받았지만,
생방송 난입과 불법 해킹의 대가로 권형사는 직위 해제를 당했고,
차태경과 백세진 역시 중징계를 피할 수 없었다.
결국 경찰 수뇌부는 이들을 파면하는 대신, 서류상으로는 '미제사건 기록보관소'라는 이름표를 달아 이 습기 찬 지하에 처박아 두었다.
징계를 유예해 주는 조건으로,
윗선이 해결하기 껄끄러운 심리 범죄들을 비공식적으로 짬처리하기 위해 남겨둔 블랙옵스. 이름하여 '특수기억수사팀'이었다.
"팀장님, 혈압약 챙겨 드세요.
우리 이제 연금도 깎였는데 아프면 손해입니다."
세진이 씁쓸하게 웃으며 종이컵을 건넸다.
태경은 구석에서 먼지 쌓인 서버 컴퓨터를 세팅하느라 묵묵부답이었다.
그때, 끼익 소리와 함께 지하실 문이 열리며 장웅이 들어왔다.
경찰 정복 대신 검은색 바람막이를 입은 그는, 무심한 표정으로 네 잔의 커피가 담긴 캐리어를 책상에 내려놓았다.
"장웅,
넌 징계 처맞고도 용케 1등으로 출근을 하네. 근데… 웬일로 전부 시꺼먼 아메리카노냐?
내 믹스 커피는 어쩌고?"
권형사가 캐리어를 들여다보며 핀잔을 주었다.
하지만 웅은 무미건조한 눈으로 커피잔들을 내려다볼 뿐이었다.
"…기억이 안 납니다.
팀장님과 부장님들이 어떤 커피를 좋아하셨는지."
그 건조한 대답에 지하실의 공기가
일순간 얼어붙었다.
웅의 시선이 책상 한편에 놓인 액자로 향했다.
사건 직전,
네 사람이 환하게 웃으며 찍었던 부서 회식 사진.
사진 속에서 권형사의 어깨동무를 한 채, 세상에서 가장 행복하게 웃고 있는 '자신'의 얼굴.
'이 사람들은… 왜 웃고 있는 거지?'
웅의 텅 빈 눈동자에 미세한 이질감이 스쳤다.
그는 눈앞에 있는 권 형사가 상사라는 '정보'는 알고 있었다. 세진이 동료라는 '사실'도 인지했다.
하지만 그들과 함께했던 끈끈한 연대감,
사진 속에서 느꼈을 따뜻한 온도,
심지어 그들의 사소한 취향까지 한 줌의 재가 되어 완전히 사라져버렸다.
가슴 한구석이 뻥 뚫린 듯한 지독한 서늘함.
놈을 잡기 위해 인간성을 연료로 써버린 대가는 너무도 참혹하고 영구적이었다.
"…장웅. 너 괜찮냐?"
사진을 빤히 바라보는 웅의 뒷모습에서 묘한 한기를 느낀 권형사가 조심스럽게 물었다.
웅이 사진 액자를 엎어 서랍 속에 조용히 밀어 넣으며 돌아보았다. 감정이 완벽하게 마모된, 기계처럼 차가운 사냥개의 눈빛이었다.
"치운 겁니다.
어차피 이제… 저 사진 속의 감정이 뭔지
영원히 모를 테니까요."
권형사와 세진의 얼굴에 먹먹한 슬픔이 내려앉았다. 그 무거운 정적을 깬 것은 태경이었다.
"본청에서 비공식 오더가 떨어졌습니다.
우리 징계 기록을 덮어주는 조건으로 던져준 짬처리 사건입니다."
태경이 모니터를 돌리며 마른입술을 축였다.
"최근 서울 도심 한복판에서 사람들이 연쇄 투신하는 사건.
뇌파를 조종하는 불법 ASMR 오디오에 무의식 트리거가 숨겨져 있습니다.
또 다른 다이버의 짓입니다."
"시작부터 골때리는 새끼가 튀어나왔군.
장웅, 너 괜찮겠냐?
매개체인 그 라이터도 네가 박살 내버렸잖아."
권형사가 걱정스럽게 묻자, 태경이 책상 서랍에서 무언가를 꺼내 웅을 향해 툭 던졌다.
탁.
웅의 거친 손아귀에 잡힌 것은,
산산조각 났던 금빛 라이터의 파편을 금색 금속 케이스에 덧대어 기괴하게 재조립한 새로운 형태의 매개체였다.
"외형은 달라졌지만,
다이빙 코어는 그대로 복구해 뒀어. 조심해라, 전보다 역류가 더 심할 거다."
태경의 말에 웅이 차가운 금속 매개체를
손안에서 한 번 굴렸다.
의자에서 천천히 몸을 일으킨 웅이 바람막이 지퍼를 끝까지 올렸다.
잃어버린 감정은 영원히 돌아오지
않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인간의 기억을 좀먹는 괴물들이 존재하는 한, 공허한 심연의 밑바닥을 헤매는 사냥개의 추적은 끝나지 않을 것이다.
"다이빙 준비 끝났습니다. 가시죠."
감정을 잃은 사냥개의 덤덤하고도
건조한 목소리가,
습기 찬 지하실의 공기를 묵직하게 갈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