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ASE 6] 부서진 체스판 (상)
"찾! 았! 다! 이 개새끼야."
수백 명의 숨죽인 방청객 앞,
오직 두 사람만이 공유할 수 있는 끔찍한 시그니처가 웅의 입술을 타고 흘러나왔다.
그 순간, 자비로운 미소를 띠고 있던 백도현의 안경 너머로 미세한 파문이 일었다.
뇌가 숯덩이가 되어 평생 식물인간으로 누워있어야 할 사냥개가,
두 발로 멀쩡히 살아 돌아와
자신의 시그니처를 역으로 내뱉고 있다.
하지만 백도현은 대한민국을 수십 년간 속여 넘긴 가스라이팅의 신이었다.
그는 당황한 기색을 단 1초 만에 지워버리고, 오히려 웅의 어깨를 감싸 안으며 핀 마이크를 향해 한없이 부드럽고 안타까운 목소리를 냈다.
"여러분, 놀라지 마십시오.
마음이 아주 깊게 병든 분 같습니다.
제가 진정시켜 보겠습니다."
현장의 스태프들과 방청객들이 그제야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역시 국민 멘토,
난동을 부리는 괴한마저 온몸으로 품어내는 성자의 모습에 감동한 사람들의 눈빛이 반짝였다.
백도현이 웅을 끌어안은 채, 마이크에 들어가지 않도록 입술만 달싹여 서늘하게 조롱했다.
"기적처럼 살아났으면 쥐새끼처럼 숨어있을 것이지. 감히 내 무대의 정중앙으로 기어들어 와? 여기서 나한테 주먹이라도 한 대 휘두르는 순간, 넌 전 국민이 생중계로 지켜보는 앞에서 무고한 시민을 폭행한 미친 현직 경찰관이 되는 거야.
안 그래, 장웅 경찰관?"
사회적 지위와 군중이라는 가장 완벽한 방패 뒤에 숨은 오만한 도발이었다.
하지만 웅의 눈동자에는 일말의 분노도,
억울함도 떠오르지 않았다. 감정을 모조리 태워버리고 텅 빈 동공으로 백도현을 응시하던 웅이, 핏기 없는 입술을 비틀어 기괴하게 웃었다.
"누가 널 때린대?"
웅의 손이 허공을 갈랐다.
주먹이 아니었다.
웅의 거친 손아귀가 뻗어간 곳은,
백도현의 맞춤 정장 안주머니.
놈이 늘 부적처럼 지니고 다니며 타인의 무의식을 열어젖히던 마스터키, '금빛 지포 라이터'가 들어있는 바로 그 위치였다.
덥석—.
웅이 백도현의 안주머니를,
그 안의 차가운 금속 매개체째로 우악스럽게 움켜쥐었다.
"네가 가장 완벽하다고 믿는 이 무대.
네가 신처럼 군림하던 전 국민의 카메라 앞에서, 네 뇌가 숯덩이로 타들어 가는 꼴을 생중계해 줄게."
[다이빙 조건 충족: 타겟(백도현) + 매개체(금빛 지포 라이터) + 의도적인 신체 접촉]
그 순간,
백도현의 여유로웠던 얼굴에
처음으로 새하얀 경악이 번졌다.
이 미친 사냥개는 물리적인 테러를 하러 온 게 아니었다. 카메라가 돌아가는 생방송 한가운데서, 백도현의 정신을 강제로 끌고 무의식의 지옥으로 다이빙할 작정이었던 것이다!
"이, 미친… 놔!!"
수십 년간 단 한 번도 남에게 주도권을 빼앗겨본 적 없던 그림자가 처음으로 평정심을 잃고 웅을 밀쳐내려 했다.
하지만 웅의 악력은 이미 인간의
한계를 넘어선 악귀의 것이었다.
삐이이이이—!!
고막을 찢는 날카로운 이명과 함께,
스튜디오를 가득 채우던 방청객들의 웅성거림과 쏟아지는 조명 빛이 맹렬한 속도로 일그러지며 빨려 들어갔다.
현실의 시간은 멈췄다.
생방송 카메라의 빨간 불빛(REC)이 길게 늘어지며 시야가 완전히 암전되었다.
쿠구구구궁—!!
이번 다이빙은 그 어떤 때보다 끔찍했다. 철옹성처럼 견고한 백도현의 방어벽을 억지로 부수고 들어가는 과정은,
마치 온몸의 뼈와 살이 거대한 믹서기에 산산조각으로 갈려 나가는 듯한 극심한 고통을 동반했다.
이미 한 번 타버린 웅의 해마가 비명을 질렀지만, 웅은 피투성이가 된 정신을 부여잡고 기어이 놈의 심연을 뚫고 들어갔다.
쿵—!
지독한 압박감을 뚫고 웅이 바닥에 착지했다.
도착한 곳은, 타인의 정신을 난도질하는 데 통달한 최악의 사이코패스 백도현의 무의식.
"……."
비틀거리며 몸을 일으킨 웅이
천천히 고개를 들어 주변을 살폈다.
보통 범죄자들의 무의식은 피비린내가 진동하거나 끔찍한 망상이 엉켜있는 역겨운 공간이기 마련이었다.
하지만 백도현의 심연은 달랐다.
끝이 보이지 않을 만큼 거대한,
티끌 하나 없이 새하얀 대리석으로 지어진
'원형 감옥(파놉티콘)'.
사방을 둘러싼 수천 개의 투명한 유리 감방 안에는, 지난 20년간 백도현의 세뇌에 영혼을 바치고 껍데기만 남은 피해자들이 목에 보이지 않는 목줄을 찬 채 무릎을 꿇고 있었다.
오직 중앙 통제실에 있는 단 한 사람만이 이 모든 죄수들을 감시하고 지배할 수 있는,
숨이 턱 막힐 듯 오만하고 결벽증적인 구조.
딸깍, 챙—.
적막을 깨는 서늘한 금속음.
수천 개의 감방을 굽어보는 중앙 통제실의 하얀 가죽 소파 위에, 다리를 꼬고 앉은 백도현이 여유롭게 금빛 라이터 뚜껑을 열고 닫고 있었다.
현실에서의 인자한 중년의 모습이 아니었다. 20년 전, 핏빛 골목길에서 어린 웅을 내려다보며 뱀처럼 웃던 그 젊고 오만한 살인마의 얼굴 그대로였다.
"내 성전에 억지로 문을 부수고 들어온 기분이 어때, 장웅 경찰관."
백도현이 턱을 괸 채 내려다보며 쇳소리가 섞인 미성을 흘렸다.
"밖에서는 네가 날 붙잡은 것 같겠지만,
착각하지 마. 여긴 현실의 물리법칙 따위는 통하지 않는 내 절대적인 통제실이야.
넌 제 발로 호랑이 입 속으로 걸어 들어온 고기 덩어리일 뿐이지."
백도현이 손가락을 가볍게 튕기자,
유리 감방 안에 갇혀있던 수십 명의 환영들이 일제히 고개를 들고 웅을 향해 기괴한 적의를 뿜어내기 시작했다.
자신의 무의식에서조차 남의 정신을 방패막이로 쓰는 압도적인 지배자의 폭력.
하지만 감옥의 한가운데 홀로 선 웅은 피하기는커녕, 바지 주머니에 양손을 푹 찔러넣고 삐딱하게 고개를 까딱였다.
"통제실?"
감정이 완벽하게 거세된 웅의 차가운 눈동자가, 소파에 앉은 젊은 백도현을 똑바로 직시했다.
"착각은 네가 하고 있네.
난 이딴 데서 룰 지켜가며
네 장단에 맞춰줄 생각 없어."
우드드득—!!
웅의 서늘한 목소리가 떨어지게 무섭게,
백도현의 절대적인 권력이 지배하던 새하얀 파놉티콘의 대리석 바닥에 거미줄처럼 시꺼먼 균열이 쩍쩍 갈라지기 시작했다.
"난 압수수색하러 온 게 아니야. 철거하러 왔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