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ASE 4] 설계된 함정 (상)
딸깍, 챙—.
적막이 내려앉은 최고급 오피스텔의 펜트하우스.
조명을 모두 꺼둔 칠흑 같은 거실 한가운데서, 날카로운 금속음이 일정한 간격으로
울려 퍼지고 있었다.
금빛 지포 라이터의 뚜껑이 열렸다 닫히기를 반복하며 허공에 서늘한 불꽃을 피워 올렸다.
벽면을 가득 채운 대형 스크린에는 뉴스 속보가 소리 없이 재생되고 있었다.
[속보] 평택 폐공장 고교생 폭행 사건,
최초 신고자였던 전교 1등 최 모 군 진범으로 구속… 충격적인 이중생활.
소파에 깊숙이 몸을 묻은 그림자가 스크린 속, 수갑을 찬 채 호송되는 우진의 굳은 얼굴을 흥미롭다는 듯 응시했다.
자신이 공들여 세뇌하고 조립한 완벽한 체스 말이, 아주 보기 좋게 체스판 밖으로 처박히는 순간이었다.
하지만 그림자의 신경을 곤두서게 만든 것은 장난감이 망가졌다는 사실이 아니었다.
그림자가 라이터를 쥔 손을 들어 자신의 관자놀이를 느릿하게 짚었다.
며칠 전, 최우진의 무의식 속에서 소년의 살육을 부추기던 찰나. 절대적인 지배자로 군림하던 그 심연의 공간에, 불쑥 낯설고도 이질적인 파장이 밀고 들어왔었다.
'뭐지…!!'
일방적인 지배만을 즐겨왔던 그림자의 뇌리에 처음으로 꽂힌 타인의 노골적인 적의.
누군가 우진의 안경을 매개체 삼아 무의식에 동기화하여 자신의 존재를 엿본 것이다.
그림자의 입가에 기이한 호선이 그려졌다.
그는 테이블 위에 놓인 서류 철을 집어 들었다. 우진을 체포한 경찰청 진술심리분석팀의 보고서.
그 서류의 결재란 가장 앞자리에 적힌 이름.
[경위 장웅]
"장웅."
그림자가 그 이름을 혀끝으로 천천히 굴리며 음미했다. 서늘한 쇳소리가 섞인 미성이 어둠 속으로 흩어졌다.
20년 전. 자신의 완벽했던 통제를 유일하게 벗어났던 단 하나의 오점. 완전히 부숴버리지 못하고 남겨두었던 그 흥미로운 장난감이,
어느새 훌륭한 사냥개가 되어
자신의 냄새를 쫓고 있었다.
"많이 컸네. 감히 내 체스판을 다 부수고 다닐 줄도 알고. 하지만…."
그림자가 손에 쥔 금빛 라이터를 매만지며 나직하게 조소를 흘렸다.
"남의 방어벽을 억지로 부수려니까 촌스럽게 직접 만져야만 들어갈 수 있는 거지."
그림자의 방식은 달랐다. 그는 타인의 심연에 강제로 침입하는 무식한 짓은 하지 않았다.
수개월에 걸친 '심리 상담'을 빙자한 치밀한 세뇌. 그것은 타깃의 무의식에 쳐진 방어벽을 허물고 스스로 모든 빗장을 열어젖히게 만드는 완벽한 사전 작업이었다.
그렇게 문이 활짝 열린 무의식에,
현실의 타깃 곁으로 보내둔 '금색 라이터'와 자신이 쥐고 있는 '금색 라이터'를 페어링 하듯 동기화시킨다. 마지막으로 이 금속음이 마스터키처럼 울려 퍼지면, 물리적인 거리는 아무런 의미가 없어지는 것이다.
"그럼, 예전처럼 놀아볼까."
딸깍, 챙—.
서늘한 금속음과 함께 펜트하우스의 어둠이 일그러지며, 그림자의 시야가 맹렬한 속도로 타인의 심연을 향해 뻗어나갔다.
도착한 곳은 잿빛 안개가 자욱하게 깔린 어느 허름한 아파트 거실의 무의식.
그곳에는 극도의 불안장애와 우울증으로 이성이 반쯤 마비된 40대 가장이, 환영으로 만들어진 흉기를 쥔 채 식탁 밑 어두운 구석에 숨어 사시나무처럼 떨고 있었다.
스스로 저지르려는 끔찍한 짓에 대한 본능적인 두려움에 짓눌려, 자신의 심연 가장 깊숙한 곳으로 도망쳐 웅크린 것이다.
안개 속을 여유롭게 거닐던 그림자가 사냥감을 향해 천천히 다가갔다. 그는 웅크린 남자의 등 뒤로 스르륵 허리를 숙이더니, 뱀처럼 교활한 입술을 귓가에 바짝 가져다 댔다.
그리고, 기나긴 숨바꼭질을 끝내는 술래처럼 경쾌하고도 소름 끼치는 목소리를 내뱉었다.
공기를 찢어발기는 기괴한 세 음절.
그것은 지난 20년 동안, 단 하루도 빠짐없이 장웅의 끔찍한 악몽 속에서 메아리치며 그의 숨통을 조여왔던 바로 그 악마의 목소리였다.
장웅의 삶을 지독한 트라우마의 지옥으로 밀어 넣었던 그 저저주받은 소리가, 기나긴 세월을 건너뛰어 또 다른 사냥감의 무의식 속에서 섬뜩하게 울려 퍼진 것이다.
그 파괴적인 최면의 방아쇠가 당겨지는 순간, 사시나무처럼 떨던 남자의 어깨가 거짓말처럼 우뚝 멎었다.
천천히 고개를 든 남자의 탁한 동공은 이미 인간의 이성을 완전히 상실한 채 텅 비어있었다. 남자는 무의식 속에서 그림자의 얼굴을 마주하자마자, 도리어 구원자를 만난 듯 짐승처럼 억눌린 울음을 삼켜냈다.
"선생님…."
"수면제는 다 먹이셨죠.
하지만 막상 흉기를 쥐니까 손이 떨리나요?"
" 네… 정말, 정말 이게 우리 가족을 구하는 유일한 길입니까?"
그림자가 흉기를 쥔 남자의 두 손을 부드럽게 감싸 쥐었다. 끝없이 다정하고,
섬뜩할 만큼 신뢰감 넘치는 톤이었다.
"심호흡하세요, 아버님. 저와 그동안 수백 번도 넘게 나눴던 이야기 아닙니까."
그림자가 남자의 귓가에 입술을 바짝 붙였다.
"이건 살인이 아닙니다.
평생을 무능함의 굴레 속에서 자책하던 아버님이, 앞으로 아이들이 겪을 이 잔인한 세상의 고통을 영원히 끊어주는 가장 숭고한 결단이죠.
그 어떤 얄팍한 위로나 동정 따위로는 도달할 수 없는 완벽하고 영원한 안식.
진정한 가장으로서의 마지막 책임입니다."
절대적인 지배자의 확신에 찬 위로와 뒤틀린 논리가, 남자의 무의식 속에 남은 마지막 이성의 끈을 가위로 툭 끊어버렸다.
남자의 탁한 동공에서 일말의
죄책감마저 완전히 증발해 버렸다.
"영원한 안식… 진정한 가장의 책임…. 네, 맞습니다. 제가 우리 가족을 이 지옥에서 꺼내줘야… 흑, 감사합니다, 선생님."
"다행이네요. 아, 제가 보내드린 금색 라이터는 현실의 거실 탁자 위에 잘 올려두셨죠?"
" 네, 네… 말씀하신 대로 가장 잘 보이는 곳에 뒀습니다."
"수고하셨습니다. 아버님의 그 위대한 용기를 증명할 아주 훌륭한 징표가 될 겁니다. 이제 편안해지실 시간입니다."
딸깍, 챙—.
무의식 속에서 다시 한번 라이터 소리가 울려 퍼지는 순간, 거실의 환영이 산산조각 나며 그림자의 시야가 쏜살같이 펜트하우스로 돌아왔다.
소파에 깊숙이 기대앉은 그림자가 천천히 눈을 떴다. 타인의 이성을 완전히 끊어내고 참혹한 존속살해를 완성시킨 악마의 입가에 서늘한 미소가 번졌다.
"내 오랜 친구를 불러들일
완벽한 초대장이 완성됐네."
그림자의 쇳소리 섞인 웃음이 펜트하우스의 짙은 어둠 속으로 스며들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