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6화. 외롭고 긴 투병의 시간

아무도 보지 않는 밤들

by Journey

요양병원의 하루는 문으로 나뉜다.
낮에는 열려 있던 병실 문들이 저녁 식사 시간이 지나고 면회객들이 하나둘 떠나면, 마치 약속이라도 한 듯 닫힌다. 복도에 남아 있던 사람 냄새가 서서히 빠지고, 남는 건 소독약 냄새와 기계 소리뿐이다.


“아빠, 내일 또 올게. 잘 자.”


나는 늘 내일이 당연히 올 거라는 사람의 말투로 그렇게 말했다.
그런데 아버지의 눈은 늘 무거웠다. 그 무게를 나는 매번 제대로 읽지 못했다. 내 손이 난간을 놓고, 내 발이 병실 밖으로 한 발 나가는 순간... 등 뒤에서 문이 닫히는 철컥 소리. 그 소리는 누군가에게는 그냥 문 닫는 소리일 텐데, 아버지에게는 밤이 시작된다는 알림 같았다. 세상이 멀어지는 소리.


가족들이 떠나고, 간병인들마저 간이침대에 누워 숨을 고르기 시작하면, 병실에는 다른 공기가 들어온다. 낮에는 잘 보이지 않던 것들이 밤에는 더 또렷해진다.
4인실의 밤은 이상하다. 사람은 여럿인데, 더 외롭다. 서로의 체온이 도움을 주지 못하는 외로움. 각자 자기 몸 안에 갇힌 채로 누워 있는 느낌.


천장의 형광등은 꺼져도 완전히 어둡지는 않았다. 복도 비상등과 비상구 표시등이 희미하게 새어 들어와 병실 바닥에 길쭉한 빛을 만들었다. 그 빛은 밤새 움직이지 않았다. 움직이지 않는 빛은 더 오래 사람을 괴롭힌다.


아버지는 그 어스름 속에서 눈을 떠 있었다. 아니... 떠 있었다기보다, 감을 수가 없는 날들이 많았다. 눈꺼풀을 내리는 근육이 마음대로 말을 듣지 않을 때도 있었고, 무엇보다 잠이 오지 않는 밤이 잦았다. 낮 동안 몸을 한 번도 제대로 움직이지 못했으니 피로가 쌓일 리가 없었다. 몸은 가만히 있는데, 머리는 계속 깨어 있었다. 그게 더 잔인했다.


그 밤에 아버지가 정확히 무엇을 했는지 나는 다 알지 못한다.
다만 면회 때마다, 아버지가 천장을 오래 바라보는 순간이 있었다. 눈동자가 한쪽으로도 안 흐르고, 딱 한 곳에 걸려 있는 것처럼. 그 눈을 볼 때마다 나는 생각했다. 아버지는 뭔가를 ‘세고’ 있구나.


아버지는 원래 숫자에 강한 사람이었다. 젊을 때 공부도 잘했고, 집에 있을 땐 메모지에 무언가를 자로 맞춰 쓰는 버릇이 있었다. 식탁 위에 연필이 굴러다니는 걸 그냥 못 보고 꼭 평행하게 맞춰 놓던 사람. 그런 사람이 하루 종일 움직이지 못하고 천장만 보게 되면, 남는 건 숫자밖에 없었을지도 모른다.
흰색 텍스 타일, 그 위에 찍힌 작은 점들, 구석에 번진 얼룩. 의미 없는 것들. 의미 없는 것들을 의미 있게 만드는 게, 아버지가 시간을 견디는 방식이었을 것 같았다. 그게 내가 아버지를 떠올릴 수 있는 가장 덜 잔인한 상상이다.


밤의 병실은 조용하지 않다. 오히려 낮보다 더 선명하게 시끄럽다.
옆 침대 어르신의 가래 끓는 소리, 맞은편 치매 환자의 중얼거림, 어디선가 규칙적으로 울리는 삐- 하는 펌프 알람, 멀리서 굴러오는 카트 바퀴 소리. 그리고 간간이 복도를 지나가는 신발 소리.
그 모든 소리가 살아 있다는 증거처럼 들릴 때도 있지만, 어떤 밤에는 그게 전부 움직일 수 없는 몸을 더 크게 드러내는 소리처럼 들린다. 세상은 이렇게 움직이는데, 나는 여기 묶여 있구나... 같은.


특히 새벽 3시와 4시 사이.
그 시간은 병실에서도 온도가 다르다. 숨결이 얇아지고, 소리도 얇아진다. 사람들의 잠이 깊어질수록 아버지의 깨어 있음은 더 또렷해졌을 것이다...라고 쓰고 싶지 않다. 사실 그건 내가 확신할 수 없다. 다만 그 시간대에 면회를 갔던 적은 없는데도, 이상하게 나는 자꾸 그 시간을 떠올리게 된다. 아무도 깨지 않는 시간. 누구에게도 걸리지 않는 시간.


어느 날은 간병인에게 이런 말을 들었다.


“밤에 알람 울려도, 다들 너무 지쳐서 바로 못 일어날 때가 있어요.”


그 말을 듣고 나는 머리가 멍해졌다. 알람은 울리고, 몸은 눕고, 사람은 잠들고. 그 사이에 아버지는 어떤 표정으로 누워 있었을까. 그때부터 내 상상은 더 또렷해졌다. 너무 또렷해서, 가끔은 그 상상이 내 기억처럼 달라붙는다.


목이 마를 때가 가장 무서웠을 것 같다.
물 한 모금이면 될 일을, 한 모금이 사건이 되는 밤. 입 안이 바싹 마르고, 혀가 굳어가도 소리로 부를 수 없다. 손가락에 힘이 들어가지 않으면 난간을 치는 것도 못 한다. 호출벨이 가까이 있어도 누를 수 없다.
아버지는 입을 몇 번 벙긋거렸을지 모른다.


“물...”


이라는 말이 목구멍에 걸린 채, 공기만 새는 입모양. 그걸 아무도 못 본다. 보인다 해도, 알아채는 사람이 없다.


가려움도 그렇다.
콧잔등이 간질간질한, 정말 사소한 감각. 평소엔 1초 만에 긁고 끝낼 일. 그런데 손을 못 쓰면 그 사소함이 형벌이 된다. 가려움은 점점 커지고, 결국 통증처럼 뇌를 찌른다. 눈물 한 줄이 고이는 것으로 끝나면 다행이다. 눈물도 마음대로 못 닦으니까. 젖은 자리만 남는다. 남아 있는 그 자리가 또 간지럽다.


몸이 묶이면, 생각이 대신 달린다.

고요한 밤이면 기억들이 줄줄이 몰려온다. 가난했던 어린 날 운동장, 목이 말라 수돗물을 마시던 장면. 독일 연수 때 마셨다는 차가운 맥주 이야기(아버지는 그 얘기를 할 때만큼은 얼굴이 조금 환해졌다). IMF 때 비어버린 사무실, 텅 빈 책상 위의 먼지. 그리고 우리가 어릴 때, 꼬깃꼬깃한 지폐를 주머니에서 꺼내 쥐여주던 손.


이상하게도 사람은 행복보다 후회를 더 잘 붙잡는다.
아버지도 그랬을까.


“그때 그 사람을 믿지 말았어야 했는데.”

“그 땅은...”

“그날은...”


이런 문장들이 천장 타일 사이를 돌아다니고, 어디에도 착지하지 못하는 밤. 몸을 뒤척이면 생각도 같이 돌아눕는데, 아버지는 뒤척일 수가 없다. 생각이 멈추지 않는다는 게, 그 밤의 또 다른 고문이었을 것 같다.


그러다 문득, 공포가 더 얇게 스며든다.
만약 호스가 빠지면? 만약 간병인이 너무 깊이 잠들면? 만약 내가 숨이 가빠져도 아무도 못 알아채면?
죽음은 멀리 있는 개념이 아니라, 침대 옆에 앉아 있는 가능성이 된다. 눈을 감을 수 없으면 그 가능성은 더 가까이 온다. 눈을 뜬 채로, 끝을 생각하게 되니까.


하지만 어쩌면 더 무서운 건 다른 공포였을지도 모른다.
잊혀질까 봐...
낮에 우리가 웃고 떠든 얼굴이, 밤이 되면 의심으로 바뀌는 것. 내가 짐이구나라는 사실을 매일 확인하는 것. 병원비 때문에 자식들이 서로 얼굴을 붉히게 될까 봐, 결국은 모두 지쳐 떠나버릴까 봐...
그 생각이 떠오르는 순간, 아버지는 눈을 질끈 감으려고 했을지도 모른다. 그런데 그 질끈 이 안 되는 날이 많았을 것이다. 그러면 공포가 떠나지 않고 더 오래 머문다.


시간은 그 밤에 더 늘어진다.
벽시계 초침 소리가 째깍, 째깍, 째깍. 평소엔 들리지도 않던 소리가, 그때는 천둥처럼 크게 들린다. 1분이 1시간 같고, 1시간이 영겁 같아진다.
아버지의 유일한 친구는 창문 틈으로 들어오는 가로등 불빛과, 이따금 복도를 지나는 야간 간호사의 발소리뿐이었을 것이다... 다만, 내가 상상하는 아버지는 그 발소리가 병실 앞에서 잠깐 멈추기만을 바라면서, 숨을 아주 천천히 쉬고 있었을 것 같다. 너무 간절하면 사람은 숨도 조심하게 되니까.


그런데 발자국 소리는 대개 무심히 지나간다.
문은 열리지 않는다.
병실은 그대로다.


그렇게 버티고 버티다 창문이 푸르스름하게 밝아오기 시작하면, 아버지는 어떤 마음이었을까.
안도였을까.


“살았다.”

혹은 절망이었을까.


“또 하루다.”

둘이 엉켜 있었을 것 같다. 아침이 온다는 건 살아남았다는 뜻이면서, 동시에 또 견뎌야 한다는 뜻이니까.


오전 7시, 간병인이 기지개를 켜며 일어난다.

“어르신, 잘 주무셨어요?”


아버지는 눈을 두 번 깜빡인다. 우리는 그걸 늘 그렇다로 해석했다.
그래서 우리는 면회 때마다 쉽게 말했다.


“얼굴 좋아 보이네.”

“잘 잤나 봐.”


지금 생각하면 그 말들이 너무 철없고, 또 너무 인간적이다. 사람은 보고 싶은 것만 본다. 특히 가족은 더 그렇다. 아버지가 밤새 견뎠던 목마름과 가려움과 공포를, 우리는 눈동자 뒤로 숨긴 채 낮에만 우리를 안심시키려 했다는 걸... 나중에야 알았다. 혹은 알았는데도, 모르는 척했는지도 모른다.


면회 시간이 되어 우리가 찾아가면 아버지는 가장 평온한 얼굴을 꺼내 보였다.
그건 괜찮다는 말이 아니라, 너희는 걱정하지 마라에 가까웠다. 아버지가 할 수 있는 유일한 배려. 유일한 사랑.
우리는 그 사랑을 너무 자주 오해했다.


병실에 홀로 남겨진 아버지의 시간은, 병과 싸우는 시간만은 아니었다.
아무도 보지 않는 밤들 속에서 아버지는 자기 몸과 싸우고, 자기 생각과 싸우고, 무엇보다도... 자기 존엄을 붙잡고 있었을 것이다. 나는 그걸 믿고 싶다. 믿지 않으면 내가 견딜 수가 없어서.


우리가 모르는 사이, 아버지는 그렇게 혼자서 이별을 연습하고 있었는지도 모른다.
문이 닫히는 철컥 소리부터, 아침의 “잘 주무셨어요?”까지.
그 사이의 긴 밤을, 아무도 보지 못한 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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