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화. 빈 주머니

자식 앞에서만큼은 무너지지 않으려던 모습

by Journey
막노동 현장

아버지는 돈 이야기를 안 했다.

"돈 없다"는 말도 안 했다.

그런데도 집안은 빠듯해져 있었다.

우리도 어렴풋이 알았다.

아버지는 끝까지 그 말을 하지 않았다. 그 말이 나오는 순간, 우리가 뭘 포기해야 하는지부터 먼저 계산하게 될까 봐.

대신 아버지는 늘 몸으로 해결하려 했다.

말보다 행동으로, 한숨보다 침묵으로.


밖에서는 늘 사는 게 전쟁이었다.
대기업 부장이던 사람, 가게 사장이던 사람.

어느 날부터 이력서가 아니라 ‘할 수 있는 일’부터 찾는 사람이 됐다.

새벽이면 인력사무소 근처를 맴돌았다.

낮에는 택시 자격을 알아봤다.

관리소장 자리도 기웃거렸다.

일이 잡히면 경비복을 입고 밤을 새웠다.

일이 안 잡히면 막노동이라도 붙잡으려 현장을 옮겨 다녔다.

벌어도 모자랐고, 쉬면 바로 불안해졌다.

인력 사무소에서 일이 없어 허탕을 치고 돌아오는 날이면, 아버지는 하루 종일 거리를 헤매다 해가 지고서야 들어왔다.

빈손으로 집에 들어오는 게, 아버지에게는 가장 싫은 일이었을 것이다.


일이 안 풀리던 날의 아버지는 평소보다 더 조용했다.
화를 내거나 투덜대는 대신, 동작이 느려졌다.
현관에서 신발을 벗다가 멈추고, 끈을 풀다가 멈추고, 벽을 한 번 더 짚었다. 현관 센서등이 꺼졌다가 다시 켜질 때까지, 아버지는 그 자리에 그대로 앉아 있기도 했다.


옷차림은 늘 제각각이었다. 앞치마 자국이 남은 티셔츠일 때도 있었고, 경비 근무를 다녀온 날엔 점퍼에 찬 바람이 밴 채였고, 그냥 하루 종일 발품만 팔다 돌아온 날엔 손부터 거칠어져 있었다.

그 굽은 등은 낮 동안 밖에서 삼킨 말들과 고개 숙인 순간들을 그대로 매달고 있는 것처럼 보였다.

우리 남매는 그 모습이 낯설고 무서웠다.

늘 단단해 보이던 사람이, 그날만큼은 어딘가 한꺼번에 내려앉은 사람처럼 보였기 때문이다.

우리는 그 모습을 훔쳐보며 숨을 죽였다.

하지만 아버지는 우리의 시선을 느끼면, 억지로라도 고개를 들어 꼭 한 번 웃으려 했다.


“아빠가... 좀 피곤해서 그래. 얼른 자라.”


그 웃음은 어색했고, 입꼬리가 미세하게 떨렸다.

우리는 고개를 돌렸다.

그때는 그게 그냥 ‘피곤해서’라고만 생각했다. 일이 힘든 날이면 어른도 저렇게 무너질 수 있다고, 대충 그렇게 넘겼다.

나중에야 알았다. 그건 피곤함만이 아니라, 아무렇지 않은 척 버티려다 새어 나온 흔들림이었다.

그리고 나는 철없이도, 아빠가 약해졌다고...마음이 느슨해졌다...속으로 원망한 적도 있었다.


훨씬 나중에야 알았다.
아버지가 어떤 하루를 지나서 집에 돌아왔는지.
그날의 일을 다 말하지 못한 사람이, 말 대신 무엇을 삼키고 들어오는지.


그럼에도 아버지는 그 무너진 모습이 자식들에게 오래 남지 않도록 애썼다.

다음 날이면 아버지는 늘 먼저 일어나 있었다.

부엌에서 나는 달그락 소리 대신, 작은 방에서 키보드 두드리는 소리가 먼저 들렸다.


아버지는 컴퓨터 앞에 앉아 있었다.

구직란을 넘기고, 시험 날짜를 적어두고, 자격증 교재를 펼쳤다. 택시 자격이든, 관리소장 일이든, 경비 일이든 “할 수 있는 것”을 하나라도 더 늘리려는 손이었다.

어젯밤의 흔들림은 그 손끝에서 지워졌다.


우리가 부엌에서 물을 마시거나 거실을 지나갈 때 아버지는 화면을 슬쩍 가리듯 접어두곤 했다. 그리고 아무 일 없다는 듯 말했다.


“밥은 먹었냐.”
“출근은 잘 하고?”
“몸 좀 챙겨.”


어제의 아버지와 오늘 아침의 아버지가 같은 사람이라는 게 이상했다.
아버지는 밤에 무너진 마음을 혼자 주워 담고, 아침이면 멀쩡한 얼굴로 우리 앞에 서 있었다.


가세가 기울던 그 시절, 우리에게 가장 이상했던 건 아버지의 ‘돈을 건네는 방식’이었다.
형이랑 나는 이미 대학을 다녔고, 누나는 졸업해 일을 시작한 뒤였다. 그런데도 아버지는 우리 앞에서 집안 형편을 말로 꺼내지 않았다. 힘들다는 소리 대신, 말수를 줄이고 움직임을 늘렸다.


그 무렵 아버지는 예순을 막 넘긴 나이였다. 새로 취업하기엔 버거운 나이, 경력은 길어도 “나이부터 본다”는 말이 먼저 튀어나오던 때였다. 그걸 아버지도 몰랐을 리 없었다. 그래서 더더욱 ‘사정’은 입에 올리지 않고, 대신 주머니에서 꼬깃한 지폐를 꺼내 우리 손에 쥐여주곤 했다.


“이거.”


꼬깃하게 접힌 지폐 몇 장이었다.

새 돈이 아니었다. 여러 번 접혔다 펴진 자국이 남아 있었고, 손때가 묻어 있었다.

그런데 그 돈은 ‘용돈’이라기보다, 늘 목적이 붙어 있었다.


“자격시험 접수해.”

“면접 보러 갈 때 교통비라도 챙겨.”

“이거로 밥이라도 제대로 먹고 다녀.”


아버지는 늘 그런 식으로 설명 대신 손으로 자식들 앞에서만큼은 끝까지 무너지지 않으려 했다.

나는 그 돈을 받으면서도 한 번씩 멈칫했다.


“아빠, 나 괜찮아.”

그러면 아버지는 늘 같은 표정으로 말을 끝냈다.


“아빠가 주는 거야. 됐다.”
“필요할 때 써. 괜히 말 길게 하지 말고.”


아버지는 설명하지 않았다.
그 돈이 어디서 난 돈인지, 무엇을 참고 만들어낸 돈인지, 아버지가 무엇을 미뤘는지... 그런 건 묻지 않는 쪽이 우리 가족의 방식이었다.
다만 아버지는, 조금이라도 손에 잡히면 그걸 자기 주머니에 오래 두지 못하는 사람 같았다. 결국 우리 쪽으로 흘려보냈다.


아버지는 그렇게 늘 자신을 마지막 순서에 두었다.
자식들 일 하나라도 잘되는 게 먼저였고, 자식들 끼니가 먼저였고, 자식들이 “괜찮다”고 말할 수 있는 체면이 먼저였다.


어느 날, 신발장에서 아버지의 구두를 보았다.
뒤꿈치가 다 닳아 비스듬히 깎여 나간 낡은 구두. 떨어진 밑창을 본드로 붙이고, 갈라진 가죽을 검은 구두약으로 덧칠해 감추려 애쓴 자국이 선명했다.


“아빠 구두 좀 사지... 다 떨어졌네.”

내가 지나가듯 말하자, 아버지는 멋쩍게 웃었다.

“이게 길들어서 편해. 새 신발은 발 아파서 못 신는다.”


그게 거짓말인 건 나도 알았다.


어떻게든 살아남으려는 아버지의 하루는 늘 빠듯했다.

어디든 “경력”보다 “나이”를 먼저 묻는 때. 나이가 적지 않아 쉽지 않다는걸 아버지도 알았다. 그래서 더 몸을 움직였다. 일이 있으면 밤을 새웠고, 일이 끊기면 다음 일을 찾았다. 경비복을 입고 서 있던 날도 있었고, 택시 자격을 알아보며 시험 날짜를 달력에 적어두던 날도 있었다. 관리소장 공고를 출력해 와 체크펜으로 줄을 긋고, 자격증 책을 펼쳐 밑줄을 그었다.


일이 없는 날도 있었다.

그런 날엔 더 오래 밖에 있었다.

늦게 돌아온 게 아니라, 돌아올 표정이 늦어진 날들이었다.


하지만 집 안에서는, 자식들 앞에서는 아버지는 최대한 멀쩡한 얼굴을 하고 싶어 했다.
현관문을 열기 전, 아버지가 잠깐 숨을 고르는 걸 나는 몇 번 본 적이 있다.

문고리에 손을 얹고, 아주 짧게 멈췄다가, 아무 일 없다는 듯 들어오는 순간들.

그래서 아버지는 버텼다.

꼬깃한 돈 몇 장이든, “밥은 먹었냐”는 한마디든.

아버지는 늘 우리 손에 무언가를 쥐여주려 했다. 자신이 얼마나 비었는지는 숨긴 채로.


돈은 없었지만,

아버지는 자식들 앞에서만큼은 ‘줄 수 있는 사람’이고 싶어 했던 것 같다.

그리고 그 마음이, 그때 우리를 버티게 했다.


지금도 가끔, 문득, 손바닥에 눅눅한 지폐 감촉이 떠오른다.

꼬깃하게 접힌 만 원짜리 몇 장.

그 돈을 건네던 아버지의 손.

받자마자 고개를 돌리던 그 뒷모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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