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화. 아들, 딸의 성장

우리가 커지는 동안, 아버지는 작아졌다

by Journey


우리들은 그렇게 자라 있었다.
콩나물시루에 물을 주면 다 빠져나가는 것 같아도, 콩나물은 어김없이 자라듯 우리도 그렇게 자라 있었다. 다만 그 시절의 물은 맑지 않았다. 빚이라는 물이었다. 그리고 그 빚은, 집 안에서 늘 조용히 따라다녔다.


사기를 당한 뒤, 집에는 ‘갚아야 하는 시간’이 생겼다.
돈이 없다는 말보다 먼저, 전화가 울렸다. 모르는 번호가 하루에도 여러 번 찍혔다. 받지 않으면 다시 걸려왔고, 받으면 말투가 단번에 달라졌다.


“언제까지요?” “

"이번 주 안으로요.”


그 질문들은 사람을 사람으로 두지 않았다. 날짜로 만들었다.


누나가 제일 먼저 그걸 맞이하였다.

누나는 재수 끝에 서울의 좋은 대학에 붙었다. 우리 집엔 오랜만에 웃음이 생겼다. 근데 그것도 잠깐이었다. 시간이 지나자 그 웃음에도 그림자가 따라붙었다.

누나는 공부를 하다가도, 밥을 먹다가도, 수업을 듣다가도 전화를 받았다. 집 전화가 울릴 때마다 누나는 먼저 움직였다. 엄마가 듣기 전에, 아버지가 듣기 전에.

누나는 모르는 번호를 보고도 받았다. 어떤 날엔 같은 사람이 다른 번호로 전화를 걸었다.

누나는 얼굴을 굳힌 채 "없습니다" "지금은 안 됩니다" 같은 말을 반복했다.


누나의 월급은 처음부터 누나의 돈이 아니었다.
사회에 나가자마자 누나는 빚의 한쪽을 떠안았다. 월급날이 오면 계산이 먼저였다. 얼마를 남겨야 하는지, 어디에 얼마를 보내야 하는지.

누나는 말은 안 했지만, 월급을 쓰는 게 아니라 메우는 쪽으로 살았다.

그때 누나가 얼마나 버텼는지, 나는 나중에서야 알았다. 누나는 울음을 먼저 삼키는 쪽이었다. 늘 그래왔으니까.


나와 형은... 한참 늦었다.

정신을 못 차렸다. 대학도 늦게 갔고, 좋은 데도 아니었다. 교정 벤치에 앉아 담배를 피우면서도 '나는 뭐 하는 걸까' 싶었다. 우린 스스로를 늦은 사람으로 만들고 있었다.


근데 어느 날, 집에 갔을 때였다.
누나가 전화를 받는 뒷모습이 보였다.
어깨가 좁아 보였다.


그리고 거실 한쪽에서, 어머니가 조용히 메모지에 숫자를 적고 있었다. 전화번호가 아니었다. 날짜랑 금액이었다.

그게 자꾸 눈에 들어왔다.


결정적인 건 부모님의 얼굴이었다.
엄마아빠는 우리에게 늘 미안해했다.


“너희까지 이런 걸 겪게 해서...”


그 말이 한 번 나오면, 아버지는 그다음 말을 못 했다. 아버지는 미안하다는 말 다음에 ‘그래도 괜찮다’는 말을 붙이려 했지만, 그 문장을 끝까지 완성하지 못하는 사람이었다.


그런데도 부모님은 가만히 있지 않았다.
아버지는 나이가 있어서 새로 취업하기 쉽지 않은 걸 알면서도 계속 움직였다. 택시 기사 자격 같은 걸 알아보고 자격 시험 날짜를 적어두고, 관리소장 공고를 들여다보고, 일이 잡히면 경비복을 입고 밤을 샜다.

막노동 현장을 기웃거리고, 새벽엔 인력사무소 근처를 돌기도 했다.


하는 일은 없어도, 하는 척이라도 해야 했다.

그래야 하루가 넘어갔다.


어머니도 가게든, 장사든, 손에 잡히는 걸 놓지 않았다. 눈치 볼 겨를이 없었다.


“우리라도 보탬이 돼야지”


그 말이 집안의 구호처럼 붙어 있었다.


그 모습을 보고 나와 형도 결국 방향을 틀었다.
어느 날 형이 말했다.


"야, 우리 뭐라도 해야 되지 않냐?"


나도 알고 있었다.


군대를 다녀오고 나서, 우리는 공부를 시작했다. PC방 대신 도서관을 갔다. 공무원 책도 펴보고 자격증 책을 펴서 새벽까지 문제를 풀었다.

뭐라도 하려고 많은 걸 시도 했었다.


성공 같은 거창한 걸 꿈꾼 게 아니었다.
그냥, 남아 있는 빚을 갚고 싶었다.

누나 혼자만 버티게 두고 싶지 않았고, 부모님이 아침마다 "미안하다"는 말로 하루를 시작하게 두고 싶지 않았다.


아버지는 그걸 보며 안쓰러워하면서 아무말을 하지 않았다.
대신 아버지는 우리 옆에서 자기 일을 했다. 컴퓨터 앞에 앉아 구직 공고를 넘기고, 자격증 교재를 펼쳤다.

‘나도 계속한다’는 걸 말이 아니라 자세로 보여줬다.
늦은 밤, 우리 방에서 불빛이 새어 나오면 아버지는 발소리를 죽였다. TV도 더 작게 틀었다. 문을 닫는 손길까지 조심했다.

응원 대신, 방해하지 않는 방식으로 우리를 밀어줬다.


결과는 대단하진 않았다.
형과 나는 조그마한 중소기업에 들어갔다. 큰 간판은 아니었지만, 매달 월급이 나오는 자리였다. 그 월급으로 우리는 먼저 빚부터 생각을 했다.

내가 뭘 사고 싶다는 생각을 하기 전에, 갚아야 할 것부터 떠올리는 습관이 생겼다.

기쁨이 늦게 왔다.
하지만 그 뒤로 진로를 잘 선택했고, 조금씩 나아졌다. 아주 많이 번 건 아니어도, 남들보다는 더 많은 돈을 벌 수 있었다.

‘잘 살게 됐다’는 말보다 ‘숨이 덜 막힌다’는 말이 맞았다.


어느 순간부터는 우리가 돈을 드리는 쪽이 됐다.
월급날이면 봉투를 준비했다.


“아빠, 엄마~ 이거... 써.”


그 말을 할 때마다 아버지는 늘 같은 얼굴을 했다. 고마운 얼굴이 아니라, 미안한 얼굴.

"됐다. 너희도 살기 바쁜데."

아버지는 받지 않으려 했다. 받는 순간에도 손이 오래 머뭇거렸다. 마치 그 봉투가 돈이 아니라, 죄책감처럼 무거운 것이라도 되는 것처럼.


그리고 그때마다, 부모님은 또 미안해했다.


“너희한테까지...”


그 말이 끝나기 전에 우리는 말을 끊었다.


“아니야. 우리도 할 수 있어.”


그때부터는 우리도 말이 짧아졌다. 이 집 사람들은 중요한 말을 길게 못 한다. 대신 행동으로 옮겼다.


우리는 어느 날 갑자기 어른이 된 게 아니라, 빚이라는 무거운 짐을 같이 들면서 어른이 됐다.

누나가 먼저 들었고, 아버지가 견뎠고, 어머니가 흔들리지 않았고, 형과 내가 늦게 합류했다.

그 순서는 엉망이었지만, 결국 한쪽으로는 무너지지 않았다.


아버지는 앞에서 끌고 싶어했지만 그러지는 못하셨다.

대신 뒤에서, 우리가 넘어지지 않게 지탱하도록 애쓰셨다.

그리고 우리는 아버지를 돕겠다고 마음먹는 순간부터, 우리도 모르게 아버지처럼 살기 시작했다.

말보다 먼저 움직이고, 티 내지 않고, 미안하다는 말을 입에 오래 두지 않는 방식으로.


지금도 가끔 아버지한테 물어본다.


"그때 어떻게 버텼어?"


아버지는 웃으며 말한다.


"너희가 있었으니까."


우린 서로를 버팀목 삼아 버텼다.
그게 우리 집이 무너지지 않은 이유였다.


아버지의 시간은 늘 한 걸음 뒤에 있었다.
그 뒤에서, 빚도 같이 따라왔다.


우리는 그것들을 밀어내면서 앞으로 갔다.
아주 화려하진 않아도, 멈추지 않고, 부단히 애쓰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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