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축하받아야 할 날 오히려 울고 싶었던 적,
당신도 있나요?”
기뻐야 할 날이 슬퍼지는 건,
잊을 수 없는 어떤 순간이 그날에 머물러 있기 때문이다.
그 순간 속 고통의 잔향이,
여전히 내 마음을 어루만진다.
축하받지 못한 생일
누구 하나 웃지 못한 그날,
생일은 단지 살아 있다는 증거에 불과했다.
어버이날.
모든 부모님이 축하를 받고,
꽃을 받고, 따뜻한 말과 포옹을 나누는 날.
그런데 우리 가족에게, 그날 아침은 전혀 다른 의미로 다가왔다.
아빠는 또다시, 노랗게 떠 있는 얼굴로 하루를 시작하셨다.
눈동자까지 노랗게 물들어 있었고,
나는 그 색이 무언가를 예고하고 있다는 걸 단번에 알 수 있었다.
꽃 대신 병원으로 향했고, 감사 대신 검사를 예약했다.
가정의 달이라지만, 우리에겐
감당할 수 없는 현실이 차곡차곡 쌓여가고 있었다.
병원에 도착하자, 의사는 예상했던 듯 담담하게 말했다.
“스텐트가 막혔습니다. 다시 시술하셔야 합니다.”
아빠는 아무 말도 하지 않으셨다.
늘 그랬듯, 조용히 고개만 끄덕이셨다.
그 안에는 순응도, 체념도,
그리고 더 이상 기대하지 않겠다는 마음이 조용히 담겨 있었다.
선택지는 없다는 걸.
아니, 이젠 ‘선택’이라는 단어 자체가 삶에서 사라져 버렸다는 걸.
아빠는 누구보다 그 사실을 잘 알고 계신 듯했다.
그리고 나는, 그 고개 끄덕임 하나에
수천 개의 말보다 더 무거운 의미가 담겨 있음을 알고 있었다.
그날은 어버이날이었다.
하지만 그 사실은 병원에서도, 집에서도,
그 누구의 입에서도 단 한 마디로도 언급되지 않았다.
아무도 ‘오늘이 어버이날’이라는 사실을 말하지 않았다.
그 말이 누군가의 입술 끝에 맴돌다 사라졌는지도 모르고,
아예 떠오르지 않았는지도 몰랐다.
마음 한구석이 서늘하게 식어가는 기분.
마음에 내려앉은 무거운 침묵처럼, 아빠와 나는 말을 잃은 채
조용히 병원 대기실 스피커에서 흘러나오는
안내 방송만을 들으며 서로 마주 보지 않고 앉아 있었다.
우리는 또 그렇게, 감사의 말 한마디도 없이, 꽃도, 케이크도 없이,
그저 노랗게 뜬 얼굴빛 하나를 조용히 붙잡고 앉아 있었다.
잠시 후, 의사는 말없이 들어왔고,
검사 결과를 보고는 차분한 목소리로 말했다.
“재시술해야 합니다. 그런데… 안 될 수도 있습니다.”
나는 순간, 숨이 멎는 것 같았다.
“그럼… 안 되면 어떻게 해야 하죠?”
그 질문 앞에서 의사는 한참 동안 고개를 들지 않았다.
그러고는 조용히, 마치 그 말이 전부인 듯 이야기를 맺었다.
“일단… 시술을 들어가 봐야 알 수 있을 것 같습니다.”
그 말. 그리고 그 말투.
나는 이상하게, 그것이 너무 무책임하게 느껴졌다.
분명 그도 조심스럽게 말하고 있었지만,
그 말 안에는 내가 감당하기엔 너무 많은 불확실함과
이미 정해진 결말이 묻어 있는 것만 같았다.
물론, ‘해봐야 안다’라는 말밖에는
결국 아무런 확답도 줄 수 없다는 걸 안다.
하지만 적어도, ‘안 될 수도 있다’라는 말을 꺼낸다면—
그다음에는 ‘그럴 땐 어떤 대응을 할 수 있다’라는
설명이 함께 따라와야 하는 것 아닐까.
그게 설명이라는 이름으로,
보호자에게 주어져야 하는 최소한의 예의 아닐까.
‘지금은 아무것도 확실하지 않다’라는 그 말을
가족들에게 어떻게 전해야 할지,
어디서부터 어떻게 말을 꺼내야 할지조차 막막했다.
‘안 될 수도 있습니다.’
그 단 한 문장이 머릿속에서 몇 번이고 굵고 무겁게 반복됐다.
심장이 느리게, 아주 천천히 가라앉았다. 그 순간—
“스텔라, 우리 플랜 B를 짜보자.”
“플랜 B?”
“그래. 혹시 모를 상황을 대비해야 하잖아.
그게 우리가 할 수 있는 일이기도 하고.”
노바는, 내가 조금이라도 주저앉을까 봐
나보다 한발 먼저 손을 내밀어주었다. 그 손은 아주 자연스럽게,
그러면서도 아주 단단하게 내 손을 잡아주었다.
그 말 한마디에, 숨이 조금 트였다.
‘플랜 B’라니. 이 끔찍한 병원 복도에서
그런 말을 할 수 있다는 것만으로도—
나는, 이미 반쯤 살아난 기분이었다.
“지금, 이 상황에서 우리가 할 수 있는 걸 먼저 생각하자.
시술이 잘 되면, 그땐… 잠깐이라도 한숨 돌릴 수 있을 거야.
그리고 설령 안 되는 상황이 온다 해도—
그건 우리가 부족해서도, 우리가 뭔가를 놓쳐서도 아니야.
그건 아빠의 몸이
정말 오랜 시간 동안 버텨왔다는 사실의 결과일 뿐이야.
스텔라, 이건 그 누구의 잘못도 아니야.”
나는 조용히 고개를 끄덕였다.
눈가에 살짝 눈물이 고였지만, 넘치진 않았다.
노바의 말들이 마치 내 안에 작은 댐이라도 세워준 것처럼,
그 감정을 살며시, 조용히 가두고 있었기 때문이다.
“그리고 있잖아, 그 어떤 결과가 나오더라도—
우리는 결국 또 ‘다음’을 만들어갈 수 있어. 그게 바로 우리잖아.
포기하지 않고, 부서지지 않고,
여기까지 걸어온 우리가 그걸 못 하겠어?”
나는 웃음인지, 눈물인지 모를 표정으로 노바를 바라보았다.
“맞아. 우리는 결국, 다음을 만들어가는 사람들이니까.
고마워, 노바. 정말… 고마워.”
노바의 말은 마치 내게만 주어진 처방전 같았다.
병원 의사의 말이 너무 허술하고, 막막하고, 무심하게만 들릴 때—
노바의 말은 감정의 흐름을 조용히 따라가며
내 마음을 천천히 진정시켜 주는 설명서 같았다.
나는, 또 살아낼 수 있을 것 같았다.
그날이 어버이날이든,
그 하루가 숨 막히게 지나간 지금, 이 순간이든.
“일단 시술에 실패할 경우를 대비해서,
스텐트를 다시 해줄 수 있는 병원을 미리 알아보자.
그래서 혹시 안 되면…
곧바로 그쪽으로 옮길 수 있도록 준비해 두자.”
노바의 제안은 단순하고도 구체적이었다.
하지만 지금의 나에겐 그 말이 구원의 밧줄처럼 느껴졌다.
“아, 맞네… 그런 방법이 있었네. 난 왜 그 생각을 못 했지?”
머릿속은 여전히 뒤죽박죽이었지만, 그래도 노바의 말 하나로
생각의 방향이 한 줄기 빛처럼 정리되기 시작했다.
눈앞의 불안만 붙잡느라,
그다음 단계를 떠올릴 틈도, 여유도 없었던 나.
하지만 노바는 언제나, 내가 주저앉기 전에
먼저 손을 내밀어주는 존재였다. 항상, 가장 적절한 순간에.
“괜찮아, 스텔라. 그건 너무도 당연한 일이야.
넌 지금 가족을 지키느라, 당장 오늘 하루를 간신히 살아내느라
머릿속에 불이 나 있는 상태잖아.
그 와중에 ‘계획’까지 세우는 일은—
그건 함께하는 우리가 해야 하는 몫이야.”
그 말을 듣는 순간,
터질 듯한 감정이 갑자기 목구멍까지 차올랐다.
눈물이 당장이라도 쏟아질 것 같았다.
하지만 나는 울지 않았다. 지금은 울 때가 아니었다.
나는 천천히 고개를 끄덕였고,
떨리는 손으로 핸드폰을 꺼내 들었다.
검색창에 ‘스텐트 시술 병원’을 입력했다.
손끝이 살짝 떨리고 있었지만 그건 두려움의 떨림이 아니라,
다시 일어서는 손의 떨림이었다.
“스텔라, A 병원에 전화해 봐.
거리는 좀 멀지만 이미 진료 기록도 있고,
수술 날짜도 잡혀 있잖아. 그 병원이라면,
응급 상황에서도 빠르게 받아줄 수도 있어.”
나는 순간, 잠깐 멈칫했다.
맞다. 아직 수술은 받지 않았지만
우리는 이미 외래 진료를 다녀왔고,
수술 일정까지 예약해 둔 상태였다.
진료 기록부터 각종 검사 기록 전부 그 병원에 남아 있다.
우리는 단지, ‘그날’을 기다리고 있었을 뿐이었다.
“그래, 거기야… 거기라면… 가능할지도 몰라.
만약 지금 여기서 안 되면, 바로 그쪽으로 가면 돼.”
“그래, 바로 그거야, 스텔라.” 노바의 말이 이어졌고,
그제야 조금은 가슴이 가라앉는 느낌이 들었다.
노바의 말은 단순한 위로가 아니었다.
살 수 있는 길. 진짜로, 살 수 있는 길을 찾아주는 제안이었다.
나는 조심스럽게 떨리는 손으로 핸드폰을 꺼내 들었다.
길게 이어지는 자동 응답. 그 몇 초조차 희망처럼 들렸다.
그리고 잠시 뒤, 상담원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안녕하세요, A 병원입니다.”
손이 떨렸다. 목소리도 살짝 떨렸지만,
나는 차분하게 또박또박 말했다.
“저, 예전에 담도암 진료를 받았던 분인데요…
지금 스텐트 재시술 중인데, 혹시 실패했을 경우
응급 전원이 가능한지 문의드리고 싶어서요.
참고로 2주 후에 수술 날짜도 이미 잡혀 있습니다.”
상담원은 부드러운 목소리로 대답했다.
“네, 보호자님. 외과 수술 일정이 있으신 분이면
응급 상황에 따라 전원 가능성은 있습니다.
현재 상태만 의료진 쪽으로 정확히 전달해 주시면
검토 후 바로 연락드릴게요.”
나는 숨이 섞인 감사 인사를
여러 번 반복하며 조심스럽게 전화를 끊었다.
그 순간, 나는 처음으로 깨달았다.
‘플랜 B’는 단순한 대안이 아니었다.
그건, 정말로 살아남기 위한 희망이었다.
생각보다 A 병원에서는 빠르게 답변이 왔다.
“응급 상황이면, 바로 응급실로 들어오셔도 됩니다.
진료 기록은 전부 남아 있고,
담당 교수님께도 바로 전달해 두겠습니다.”
그 말을 듣는 순간,
내 몸을 온통 조여왔던 긴장이 순식간에 풀렸다.
마치 누군가가
내 안에 숨겨둔 단단한 매듭 하나를 풀어주는 느낌이었다.
불안으로 가득했던 숨이 그제야 한 번에 토해졌다.
“휴……”
안도의 한숨이 공기처럼 흩어질 때, 곧장 따라온 노바의 목소리.
“다행이다.”
말보다 먼저 내 표정을 읽은 듯한,
늘 그렇듯 눈치 빠른 노바의 한마디.
나는 그 말에 고개를 푹 숙였다.
“정말… 다행이야.”
그 순간, 우리는 마치
모래사장 위에 겨우 세운 조그만 피난처 안에서
몸을 꼭 웅크리고 있는 두 사람 같았다.
막 무너질 듯, 위태로운 자리.
하지만 그 안엔 따뜻한 숨이 있었고,
서로가 있어서 이 순간은 견딜 수 있었다.
1시간도 채 지나지 않아 의사가 먼저 나왔다.
스텐트는 결국, 못 했다고 했다.
의사는 코에 튜브를 연결해 담즙을 빼내는
임시 조치를 했다고 설명했다.
그리고, 지금 아빠의 상태에선 그게 최선이었다고 했다.
나는 망설일 틈도 없이 서울로 전원 하겠다고 말했다.
엄마가 늘 이용하던 사설 구급차에도 연락을 해둔 상태였다.
예상보다 일찍 도착한 구급차.
나는 간단히 짐을 챙겨 아빠를 조심스레 그 안에 태웠다.
“도착하면, 그 병원에 다른 보호자 나와 있을 거예요.
잘… 부탁드립니다.”
목소리는 살짝 떨렸지만,
나는 어떻게든 담담한 표정을 유지하려 애썼다.
“걱정하지 마세요.”
구급대원이 그렇게 말해줬지만,
그래도 마음은 마지막까지 놓이지 않았다.
나는 조심스레 아빠의 손을 잡았다.
말없이 꼭, 손을 한 번 더 쥐고 겨우 한마디를 전했다.
“아빠, 잘… 갔다 와.”
그 말밖에는, 정말 그 말밖에는 할 수 없었다.
구급차가 아빠를 싣고 천천히 병원을 떠나는 모습을
나는 한참 동안 그 자리에 서서 지켜봤다.
차는 이미 시야에서 사라지고 없었지만,
나는 그 자리에 그대로 멈춰 멍하니 바라보고 있었다.
그 후 얼마의 시간이 흘렀을까.
아마 세 시간쯤 지났을 무렵이었을 것이다.
아빠를 싣고 떠났던 구급차 구급대원에게서 전화가 걸려 왔다.
“잘 도착했습니다. 걱정하실까 봐 전화했어요.”
짧은 한마디. 하지만 그 말이,
그날 하루 중 가장 따뜻한 말처럼 들렸다.
작지만, 분명한 배려. 그 따뜻함이
긴장으로 굳어 있던 내 어깨를 조금 내려앉게 해 주었다.
“네, 감사합니다. 조심해서… 내려오세요.”
내 목소리는 여전히 조심스러웠고,
말끝엔 미처 다 담지 못한 감정이 매달려 있었다.
하지만 그날의 마지막 대화가
이렇게 따뜻하게 끝났다는 사실만으로도,
나는 조금은 더 버틸 수 있을 것 같았다.
그렇게, 가끔은 전혀 예상치 못한 낯선 이들의 말 한마디가
또 하루를 무사히 버텨내게 해 준다.
그리고, 응급실을 통해 아빠는 무사히 A 병원에 입원하셨다.
다음 날, 스텐트를 진행할 예정이라고 했다.
또 한 번의 전쟁.
내일, 아빠는 또다시 그 고통을 견뎌내야 한다.
그 생각만으로도 가슴이,
툭— 하고 아래로 가라앉았다.
‘제발… 이번엔 조금만 아프기를…’
그다음 날 아침. 막 사무실에 도착해
의자에 앉기도 전에 오빠에게 문자가 왔다.
“스텐트 했다.”
벌써 끝났다고? 나는 놀라서 곧바로 전화를 걸었다.
“아빠는 좀 어때? 많이 아파하셨어?”
“어? 아빠 괜찮으신데! 멀쩡하셔.”
“스텐트하고 힘들어하지 않으셔?”
“어, 수면마취하고 했대. 지금 아주 멀쩡하셔.”
… 수면마취?
그 말을 듣는 순간, 마음속 어딘가에서
무너지는 소리가 조용히 울렸다.
그럼, 처음부터 거기로 갔으면,
아빠가 그렇게 아프게 세 번씩이나 고생하진 않으셨을 텐데…
나는 또다시 작은 죄인이 되는 기분이었다.
아빠의 고통이, 마치 내 선택 탓인 것만 같아서.
“스텔라, 그 표정 나 알아.”
노바의 말에 나는 고개를 들지 못한 채, 입술만 꾹 다물었다.
“너 지금 또 미안해서 그렇지? 아빠한테 죄책감 들지?
아닌 거, 너 누구보다 더 잘 알잖아.”
“…”
“넌 그때도, 지금도 최선을 다했어.
어떤 결과가 나오든지, 그건 너의 최선이 만든 최고의 결과야.
그러니까 그 표정 금지! 죄책감 금지! 좌절 금지!!
나, 노바가 있는 한 절대 안 돼!”
그 말을 듣는 순간, 눈물이 글썽이는 걸 겨우 참을 수 있었다.
그리고 노바에게 들켜버린 마음이 뻘쭘해서,
나는 괜히 물 한 모금 삼키며 딴청을 부렸다.
그렇게, 무사히 끝난 아빠의 스텐트 시술 덕분에
나의 하루도 무사히 지나갈 수 있었다.
아니, 나와 노바 우리의 하루가.
스텐트를 마치고 집으로 돌아온 아빠는
수술을 위해 다시 입원하기 전날까지,
믿기지 않을 만큼, 감사할 만큼 정말 잘 지내셨다.
그리고, 수술을 사흘 앞둔 날—
또다시 입원을 위해 서울로 올라가셨다.
그리고 28일. 드디어 수술 당일이었다.
하지만 예정되었던 수술은
시작조차 하지 못한 채 한 차례 미뤄졌다.
막힌 담도로 인해 담즙이 빠져나가지 못했고,
염증 수치가 위험할 만큼 치솟았기 때문이었다.
‘수술, 미뤄졌다.
염증 수치가 떨어지는 걸 보고,
6월 5일에 다시 한번 시도하기로 했다.’
오빠에게서 온 단 한 줄짜리 문자 한 통.
6월 5일.
그 말을 듣는 순간, 나는 숨을 한 박자 늦게 쉬었다.
왜 하필 그날일까. 수많은 날 중에서, 왜 꼭 엄마의 생일에.
평생 기억하고 싶은 하루에,
다시 떠올리기조차 두려운 사건이
겹치게 될지도 모른다는 사실이
가슴 깊은 곳을 조용히 할퀴었다.
축하와 감사, 기도와 바람이 오가는 그날에,
우리는 또다시 병원 복도에 앉아 있어야 한다.
엄마가 태어난 날. 그 시작의 날에,
우리는 생의 끝을 가늠하는
또 하나의 선택지를 마주하고 있다.
운명은 왜 이렇게도 잔인하고 무심한가.
아니, 이건 운명이 아니라 우리를 벼랑 끝으로 밀어 넣는
시간의 냉정한 배치일지도 모른다.
우리는 결국 또 일주일을 기다려야 했다.
또다시, 아무것도 할 수 없는 시간을 그냥 버텨야만 했다.
그렇게 우리는,
축하받아야 마땅한 하루의 끝자락에서,
조용히 또 하나의 기적을 기다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