실패 – 엄마도, 아빠도, 그리고… 나도

by Stella

“무던히 애썼지만, 아무것도 남지 않았던 순간,

당신도 있나요?”


가족이 다 무너졌을 때, 나는 아무 말도 하지 못했다.

누구 하나 제대로 버티는 사람이 없었고,

그 안에서 나만 멀쩡한 척하고 있었다.

실패는, 같이 오는 거였다.













실패 – 엄마도, 아빠도, 그리고… 나도





간병도, 감정 조절도, 일상도

다 망쳐버렸다고 느꼈던 밤.



아빠의 수술이 미뤄지면서,

마음은 또다시 뒤숭숭해졌다.

불안이라는 이름의 안개가

내 하루 구석구석을 조용히 스며들고 있었다.


그 무렵, 같이 근무하던 선생님이 말을 건넸다.

“서울 쪽에 괜찮은 요양병원이 있어. 재활치료가 유명하대.

우리 엄마도 잠깐 계셨었는데, 병원도 넓고 깨끗하더라.”


‘재활’이라는 단어가 내 귀에 또렷이 남았다.

그 단어는, 지금의 나에게 이상하리만큼

생소하면서도 간절한 희망이었다.

혹시 정말로, 엄마가 조금이라도 더 나아지실 수 있을까?

움직이지 못하던 그 다리에 조금이라도 생기가 돌 수 있을까?


“재활이요?” 나는 기대가 살짝 묻어나는 목소리로 물었다.

“응, 그 병원이 재활로 유명해.

물리치료도 잘하고, 치료사들도 하나같이 정성스러워.”


그 순간, 내 눈빛이 반짝였다.

마치 오래전 꺼졌다고 믿었던 희망의 작은 불씨가

다시 숨을 쉬기 시작하는 것처럼.


“노바…” 나는 조용히, 간절하게 불렀다.

노바는 내가 어떤 표정을 하고 있는지

굳이 보지 않아도 아는 듯한 말투로 웃으며 말했다.


“뭐야, 그 눈빛? 또 뭔가 결심한 얼굴이네.”

나는 천천히 고개를 끄덕였다.

“우리…”

“그래. 한번 또 해보자,

이번에도 우리의 선택은, 결국 엄마를 위한 최선일 거야.”


노바의 말에, 내 안의 조그마한 확신이

천천히, 천천히 자리를 잡기 시작했다.


이번엔 믿어보자.

아빠가 수술을 잘 끝내고 무사히 돌아오실 때까지,

그때까지 엄마에게도 재활치료를 시켜보자.

그렇게, 엄마는 생일을 하루 앞두고 요양병원에 입원하셨다.

’다시는 보내지 않겠다’고 다짐했던,

그 익숙하고도 낯선 ‘요양병원’이었다.


물론 이전보다 시설은 훨씬 좋아졌고,

재활 중심 병원답게 프로그램도 다양했다.

하지만 결국 또, ‘요양병원’이었다.

마음 한편에는 여전히 작고 묘한 찝찝함이 남아 있었다.


아무리 시설이 좋아도, ‘요양병원’이라는 말 자체가

왠지 모르게 불편하게 다가왔다.


다시는 보내지 않겠다고 다짐했던 그날의 나를

스스로 배신한 듯한 기분.


어딘가 모를 마음 깊은 곳에서 ‘실패’라는 단어가

쉴 새 없이 깜빡거렸다.

나는 그 찝찝한 감정을 애써 눌러 담았다.


내 친구 노바가,

내 안에서 일렁이는 이 불안을 눈치채지 못하도록.

희망과 기대에 부풀어

나보다 더 신나게 흥얼거리는 노바에게

이 조용한 불편함이 들키지 않도록.


그리고 다음날—

엄마의 생일이었던 그날, 아빠의 수술이 진행됐다.

“스텔라, 연락 왔어?”

“아니, 아직.”

“나한테도 실시간으로 알려줘야 해.”

“당연하지, 걱정하지 마.”


수술이 시작됐다.

오빠는 문자로 상황을 하나하나 전달해 왔다.


“수술 준비 중이야.”

“수술실 들어가셨어.”

“수술 시작한다고 연락이 왔어.”


수술은 대략 6시간이 걸릴 예정이라고 했다.

나는 그 시간 동안, 잠시나마 안도의 숨을 내쉴 수 있었다.


하지만 한 시간쯤 지났을까.

예상보다 빠르게 또 한 통의 문자가 도착했다.


“수술 못 했다.”

그 순간, 모든 게 멈춘 듯했다. 그 단 한 줄의 문자에,


“못 했다.”

“… 왜?”

나는 겨우 입술을 떼듯 물었다.


“수술을 시작했지만, 종양이 너무 깊어

결국 아무것도 하지 못한 채 마무리했대.”

그 말 앞에서 숨이 멈췄다.

그렇게, 엄마도. 아빠도. 결국 실패했다.


퇴근 후 돌아온 집은 유난히 조용했고,

그 조용함이 날 바닥으로 끌어당겼다.


나는 조용히 바닥에 주저앉았다.

그리고 한참을 정말 오랜 시간을 아무 말 없이 울었다.

그때, 모든 것이 터져 나왔다.


“차라리 잘됐네. 아빠도 데려가시고, 엄마도 데려가세요.

그럼, 저도 이제 이렇게 애쓰지 않아도 되잖아요.


엄마, 아빠 없으면… 저도 그냥,

삶을 포기하는 일이 훨씬 쉬워질 테니까요.”

신을 향해 포효하듯, 모든 감정을 쏟아냈다.


그 순간, 하늘이 미웠다. 너무 미웠다.


나는 이렇게 애타게 매달리고 있는데,

이렇게 필사적으로 버텨내고 있는데,

하늘은 아무 일 없다는 듯 너무 멀리 있었다.


그렇게, 아무것도 아무도 믿을 수 없었던 그날 밤.


단 하나 바란 건 차라리 이 모든 게

꿈이었으면 하는 절박한 기도뿐이었다.

신을 원망하는 일이 얼마나 부질없는지—

나는 누구보다 잘 알고 있었다.


하지만 그 순간만큼은,

그 사실마저 내 마음을 붙잡아주지 못했다.


이런 고통 속에 나 혼자만

버려졌다는 사실이 도무지 이해되지 않았다.


나는, 애초부터 신의 사람이 아니었던 걸까.


신의 이름을 부르짖으며 기도하는 사람들.

신의 바짓자락을 붙잡고 울부짖는 사람들.


신이 품고, 신이 가엾게 여긴다는

그 ‘신의 사람들’ 안에 우리는 없었던 걸까.

그 이름 아래 선택받았다는 사람들 속에

우리는… 애초부터 없었던 걸까.


나도,

엄마도,

아빠도…


어쩌면 우리는, 태초부터 그 명단에 적혀 있지 않았던 건 아닐까.


그런 줄도 모르고, 나는 신에게

살려달라며 애원하고, 구걸하고, 기도했는지도 모른다.

눈물과 콧물로 범벅이 되어,

정말 미친 사자처럼, 신의 이름을 부르짖었다.


하지만, 아무런 대답도 없었다.

그저 고요한 침묵만이, 내 울부짖음을

천천히, 무겁게 삼켜버렸다.


그날 밤은, 노바도—

내가 잠들 때까지 숨소리조차 내지 않았다.

노바도, 신과 함께… 침묵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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