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상아저씨와 라포 형성 프로젝트
"아저씨, 이거 마시면 우리 일촌이다?"
그 아저씬 유명한 진상이었다.
나는 그날 아침 커피 대신
빈속에 까스활명수를 원샷했다.
표현이 불편했다면 미안하다.
그러나 이것이 내가 할 수 있는 최대의 배려이다.
사실 진상이라는 표현으로도 부족했다.
주변머리만 남은 채 씻지 않아 까만 얼굴.
잘 먹었는지 커다란 덩치에 항상 샌들을 신고 다녔다.
동네 불쌍한 삼촌들을 끌고 다니면서
강압적인 모습으로 사람들을 위협했다.
사무실 직원들에게 행패를 부리기도 여러 번이었다.
11:20. 슬슬 배가 고파지는 시간.
옆 팀 여직원이 큰소리를 버럭 냈다.
"저는 전화로는 못 알려드리니까
신분증 들고 찾아오시라고요. 지금 당장 와보시라고요.
저 여기 있으니까.... 소리 지르지 마시고요.
지금 폭언하시는 거예요? 여보세요. 여보세요!"
탕비실로 향하는 동료에게 물어보니
술에 취해 횡설수설했단다.
자기 버리고 간 엄마를 찾아내라며 폭언을 했다고..
"자기가 오면 뭐 어쩔 건데, 올 테면 오라지!"
큰소리로 씩씩대며 말하는 목소리에
묘한 떨림이 느껴졌다.
동료는 탕비실에서 한참을 나오지 않았다.
전화를 끊고 금방이라도 찾아올 것 같던 아저씨는
12시가 되도록 오지 않았다.
점심시간이 되고 다들 밥을 먹으러 갔고,
당번이었던 나는 홀로 사무실을 지켰다.
12:40. 굶주린 배가 지르는 비명인 줄 알았다.
그러나 그것은 현실에서 나는 소리였다.
화가 나 들어오던 아저씨는 대뜸 의자를 걷어찼다.
샌들을 신고 있는 발도 비명을 지르는 듯했지만
아저씨는 꿋꿋이 외쳤다.
"아까 나랑 전화한 그년 나오라고 해. 어디 갔어!!!"
또다. 전혀 다른 이유였지만,
저 손님도 또다시 여직원을 찾았다.
하지만 나는 시커먼 아저씨. 침착하게 앉아 말했다.
"제가 들을 테니까, 앉아서 말하세요. 그 직원 없잖아요.
점심 먹으러 갔어요. 다 먹고살자고 하는 일인데"
여직원이 없고 시커먼 아저씨가 있는,
아저씨들과의 대화는 예상하지 못했는지
아저씨는 당황하며 앉았다. 술이 약간 깬 것 같았다.
.......... 자세한 상담은 기억나지 않았다.
술에 취해 본인이 한 말도 제대로 기억하지 못했으니까.
다만 어딘가 억울해 보이는 모습이 의아했다.
상담을 하며 자세히 보니
그 아저씨는 오른손 손가락이 2개밖에 없었다.
선천적 기형. 어릴 때 놀림을 많이 받았단다.
그래서 일부러 목소리를 키우고, 덩치를 키웠다고 한다.
사실 데리고 다니는 삼촌들은,
오히려 자기가 불쌍해서 챙겨주는 고마운 사람들이라고.
어디를 가도 대접을 못 받고
무시하는 것 같았다고 했다.
그래서 목소리가 커지기 시작했다고.
"아저씨 그렇게 소리 안 지르면 더 잘 들려요.
아저씨 덩치에 소리까지 지르면 무섭지 않겠어요?
우리랑 싸우고 싶은 거 아니잖아요"
은근슬쩍 호칭을 아저씨로 바꿔 불렀다.
아저씨는 잠깐만 나갔다 오겠다고 했다.
잠시 후 돌아온 아저씨의 손에는
까스활명수가 들려있었다.
하필 오늘 아침 커피도 못 먹은 공복상태.
심지어 커피 대신 마음을 갈아 냈던 날이었다.
나는 아저씨의 마음을 기꺼이 받기로 했다.
공복에 까스활명수를 원샷하는 쾌감.
까스활명수는 역시 사람을 살리는 물이었다.
마음이 갈린 나와
편견에 상처 입은 아저씨를 살리는 마법.
그날 마신 까스활명수는 너무나도 시원했다.
호형호제...
까지는 아니지만 덩치 큰 아저씨와 시커먼 아저씨.
아저씨끼리 통하는 라포가 형성됐다.
아까의 나는 사람을 먼저 보지 못했다.
사실 진상이라는 단어는 본모습이라는 뜻.