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음 대신 커피콩을 갈아봅니다.

도를 닦는 수도승의 마음으로...

by 밤결


마음의 평화가 깨질 위기의 순간이 오면

나는 도를 닦는 심정으로 커피콩을 갈았다.

동료들은 나를 탕비실 죽돌이라고 불렀다.




나의 평온을 깨는 순간은 꽤나 규칙적이다.


우선 아침.


출근은 그 자체만으로 폭력적이다.

알람소리에 일어나는 순간 하루가 시작된다.


아무런 일이 일어나지 않아도.

그저 평온한 출근도 평범한 직장인에겐 괴롭다.

오죽하면 월요일을 '월요병'이라 부를까.



다음으로 점심.


1시간은 짧아도 너무 짧다.

식당에 가서 주문을 하고, 음식이 만들어 지고,

먹고 이야기하고,

가락을 놓을 즈음엔 어느새

다들 시계를 보고있다.


그렇기에 직장인들에게 점심은 특별하다.

오죽하면 하루 최대의 고민이 점심메뉴일까.


성과와 직업수행능력과 무관하게

온전히 근로자 자신들만을 위한

온전한 선택은 숭고하기까지 하다.



마지막으로 퇴근 즈음.


들이치는 손님들은 커피를 생각나게 한다.

그들의 자신들의 고민과 힘듦을 공감하길 원한다.


그들에게 나는 상담사 중 한 명 뿐이지만,

내가 상대하는 손님은 하루 열 명 남짓의

이야기 상대 중 겨우 한 명 밖에 되지 않는다.


열 명 분의

회한과 울분과 슬픔에 공감하다 보면,

충전해 온 내 마음 하나 둘 나눠주다 보면

어느샌가 내 속은 텅 비어갔다.


그 자리에는 손님들의 감정이

자연스레 스며들었다.





그렇게 나는 내 몸에 덕지덕지 달라붙은

아침의 피로와 점심의 바쁨,

손님들의 하소연을 한 데 모아서

원두와 함께 갈아낸다.


원두가 그라인더에 천천히 갈리는 소리,

찰나에 코 끝에 스치는 향기,

적당한 온도를 쪼르륵 따라내는 시간,

커피를 한모금 마시면

굳은 어깨가 조금 풀렸다.


그렇게 나는 오늘도

탕비실 죽돌이가 된다.


도를 닦는 심정으로

탕비실 수도승이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