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발로 들어간 정신병원>

우울증 무기징역형

by 내면아이

정신과 문을 열고 들어가 앉았을 때, 나는 여전히 내가 얼마나 망가져 있는지 알지 못했다. 그저 잠시나마 내 상처받은 내면아이가 쉴 수 있는 의자 하나를 빌리러 온 사람처럼 의자에 축 늘어져서 고개 숙이고 있었다.

간호사가 건넨 문진표에는 질문이 너무 많았다.

잠은 잘 자는지, 밥은 잘 먹는지, 죽음을 생각한 적이 있는지, 가족과의 관계는 어떤지.

문진표를 다 쓰고 쭉 읽어보는데 온통 무기력, 공허, 불안, 죽음 같은 단어들 뿐이었다. ‘내가 이 정도로 망가져있었던 건가.’라는 생각이 스쳤다. 내 마음을 펼쳐 놓고 보니 이제는 도망칠 구석이 없었다. 의사를 대면했을 때 나는 거의 자포자기한 심정이었다.

나는 속으로 이렇게 물었다.


‘제 우울증은 징역 몇 년형인가요?’


재판결과를 기다리는 피고인처럼 초조하면서도 멍하게 앉아있었다.


“ 중증 우울증이네요.”


진단명을 듣고도 크게 당황하지는 않았다. 마치 오래전부터 알고 있었던 사실을 이제야 공식적으로 통보받은 사람처럼 무감각했다. 끽해봐야 몇 년이겠거니 생각했는데, 중증 우울증이라니, 무기징역이라고 말하는 거 같았다. 내가 내면아이를 이해하지 못하고 방치한 죄를 이렇게 치르게 되는구나. 그래서 힘들었던 거구나.


‘아 그래서 그랬구나…’


아침에 침대에서 일어나는 게 그렇게 힘들었던 이유, 먹지 못해서 앙상하게 말라가는 몸을 보면서도 남의 일처럼 생각했던 이유, 슬픔에 잠겨 바닥으로 한없이 가라앉았던 이유.

의사가 언제부터 그랬는지 물었다. 대답할 수 없었다. 말로 꺼내기엔 너무 오래된 시간, 너무 작고 여려서 위태로웠던 긴 시간, 내 안에 사는 내면아이는 단순한 감정이 아니었다. 병들고 찢긴 나 자신, 그 자체였다. 아이는 여전히 여섯 살에 멈춘 채, 밤마다 아빠의 폭력을 예감하며 숨을 죽이던 그 자세 그대로 내 안에 갇혀 있었다.


아이가 감당하기에 너무 무거웠구나. 그래서 우울증이라는 이름으로 내 몸에 스며들었구나. 어떻게 달래줘야 할지 몰라 일단 약을 처방받아서 집으로 돌아왔다. 그날 이후로 나는 조금씩 연습했다.

나로부터 도망치지 않고 아픔을 인정하는 연습, 괜찮지 않고 분하고 억울하다고 말하는 연습. 여섯 살의 아이를 다시 전쟁터로 밀어 넣지 않겠다고 생각했다.

나는 아직도 자주 가라앉고, 여전히 괜찮지 않으며, 매일밤이 너무나도 어둡고 길다. 하지만 적어도 이제 내 고통에는 이름이 생겼다. 사람들이 물어보면 이제 내 상처의 크기, 내 상태의 심각성을 구구절절 설명할 필요도 없어졌다. 대신 이제는 딱 한마디만 한다.


“의사가 중증 우울증이래, 나보고 입원을 권하더라. “


일반 사람들보다 현저히 에너지가 부족한 우울증 환자로서 이렇게라도 사람들과 대화를 빨리 끝낼 수 있으니 다행이라고 생각하기로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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