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래, 좋아.”
이시연이 대답했다. 너도 박유진이나 남자애들과 짝을 하긴 싫겠지.
잠시 대기한 후, 나는 다른 아이들 앞으로 나가 공을 가져왔다.
“얘들아, 이제 시작해라. 종 칠 때까지 공 주고받기 연습해.”
선생님의 말씀에 나는 이시연에게 공을 던졌다. 아니, 이시연에게 공을 던지려고 했다. 하지만 공은 목표한 방향으로부터 훨씬 왼쪽으로 치우친 곳으로 날아갔다. 역시, 나는 늘 이런다.
“미안해!”
“괜찮아. 나도 이런 거 진짜 못해.”
이시연이 이렇게 말하며 공을 주우러 갔다.
데굴데굴. 공이 계속해서 굴러간다. 이시연은 공을 따라서 뛴다. 공을 잡기 위해서 노력한다. 하지만 야속하게도 그 공은 이시연이 아닌 다른 사람의 발에 먼저 닿았다. 그리고 그 사람은 하필 박유진이다.
박유진은 공을 향해 뛰는 이시연을 힐끔 바라보았다. 그리고는 공을 찼다. 이시연과 반대 방향으로. 뭐 이런 애가 다 있지? 주워주지는 못할 망정, 더 멀리 차버리다니. 그리고 배구공은 발로 차면 안 된다. 이런 나쁜.
공은 아까보다 더 빨리 굴러갔다. 그리고 또다시 누군가의 발에 닿았다. 이번엔 누구지. 어디서 본 얼굴이다. 이름이 뭐였지. 찬•••, 아, 최찬영.
전에 같은 반이었던 적이 있다. 하지만 내가 학기 말에 전학을 왔던 터라 대화 한 번 해보지 못하고 학년이 끝났다. 그래서 사실상 서로 모르는 사이이다. 아마 쟤는 나를 기억하지도 못할 것이다.
최찬영은 이시연에게 공을 던져주었다. 공을 받은 이시연은 나에게 돌아오기 시작했다. 인성 나쁜 박유진 때문에 너무 멀리 갔다. 아니, 나 때문인가? 나 때문이네. 내가 공을 똑바로 던졌더라면 공이 박유진 쪽으로 갈 일도 없었으니까. 역시 내가 체육을 끔찍하게 못하기 때문이다. 미안해서 어떡하지.
이시연이 내가 있는 곳으로 돌아왔다. 그리고 나를 향해 공을 던졌다. 하지만 공은 목표한 거리의 절반도 날아오지 못했다. 그리고는 천천히 나에게 굴러왔다. 못한다더니, 진짜구나.
나는 공을 주워 던질 준비를 했다. 아까 왼쪽으로 치우쳐졌었으니 이번엔 조금 오른쪽으로 던져야지. 공이 다시 내 손을 떠나는 순간, 나는 잘못됨을 감지했다. 이번엔 지나치게 오른쪽으로 치우쳐져 있었다. 이시연은 또 공을 향해 달려갔다.
이시연이 공을 주워와 다시 나에게 던졌다. 그리고 그 공은 또 목표한 거리의 절반도 날아오지 못했다. 나는 다시 공을 주워왔다.
우리는 계속 공을 던졌고, 계속 주워왔다. 받는 데 성공한 적은 없다. 당연히 공을 던지는 시간보다 주워오는 시간이 훨씬 길었다. 그러다 보니 종이 쳤고, 우리는 동시에 웃음을 터뜨렸다.
“진짜 못한다, 우리.”
“그러게 말이야.”
우리가 훌쩍 친해진 날이었다.
***
“너네 그따위로 하면 대학 못 가. 똑바로 해. 숙제도 안 해오고, 이게 뭐야? 공부하는 학생의 태도가 맞는 거야? 너네 좀만 있으면 고등학생이야. 정신 차리고 살아.”
분명 나를 향한 말이 아니다. 다른 아이들이 학원 수업 중임에도 떠들어서 나온, 그 아이들을 향한 말이다. 하지만 나를 향한 것처럼 느껴진다. 내가 그동안 했던 모범적이지 못한 행동들이 내 머릿속을 스쳐 지나간다. 숙제를 미루고 휴대폰을 한다거나, 할 일을 다 마치지 않은 채 피곤하다고 쉰다거나 했던 일들이.
불안하다. 내가 너무 나태해서, 그리고 내가 너무 멍청해서 대학을 가지 못할까 봐. 또 나를 향하지 않았던 화살을 맞아버렸더. 무섭다. 그리고 아프다. 아, 나는 이렇게 약해빠져서 앞으로 인생을 어떻게 살아가려는 거지? 약해빠져서는 안 된다. 쉽게 아프고 상처받아서는 안 된다. 그리고 나한테 한 말도 아니잖아. 그런데 왜, 왜 이러는 거야. 이럴 필요 없고, 이래선 안 된다는 것도 알잖아. 그리고 내가 객관적으로 보면 그리 나태한 것도 아니•••. 이런 생각을 하면 안 된다. 다른 사람과 비교해 안도하면 안 된다. 그들이 많이 나태하다고 해도 그것이 내가 나태할 이유가 되지는 못한다. 그리고 객관적으로 보면 그리 나태한 것도 아니라는 건 자만이다. 이렇게 생각하면 안 된다.
부정적인 생각이 꼬리에 꼬리를 물고 계속해서 이어진다. 선생님의 말씀은 귀에 들어오지 않은지 오래다. 어떡해. 수업 들어야 하는데. 생각을 멈추려고 해도 멈출 수가 없다. 나는 진짜 왜 이럴까. 내 머릿속 하나 마음대로 조절 못하고.
답답하다. 정말로 답답하다. 빨리 집에 가고 싶다. 엄마한테 위로를 받으면 좀 더 나아질 것이다. 사실 이래서도 안 된다. 나이가 몇인데 아직도 엄마한테 의존하는가?
병원에 가서 오늘 한 생각을 의사 선생님께 말하면 또 약이 늘겠지. 약이 늘면 졸려진다. 그러면 내가 더 나태해진다. 그리고 단약은 더 멀어진다. 정신과에 다니는 건 분명 좋은 일은 아니다. 정신질환으로 약을 먹는 것은 더더욱. 한국 사회에서 아직 정신질환은 심히 기피된다. 나 또한 이 사회의 일원인지라 정신과에 다니는 것이 부끄럽다. 불안장애라는 가벼운 질환으로 다니는 것이라고 해도 말이다.
불안장애가 나았으면 좋겠다. 하지만 나을 수 있을 것 같지가 않다. 완치는 너무나 멀게 느껴진다. 나는 한참 동안 약을 먹어야 하겠지. 1, 2년. 혹은 그 이상. 싫다. 정상인의 영역으로 돌아가고 싶다. 정신병자라는 낙인이 찍히고 싶지 않다. 별 거 아닌 질환이지만 사람들은 그걸 알아주지 않을 것이다. 두렵다. 어떡하지. 생각이 점점 더 부정적인 방향으로 흐른다. 내가 원하지 않음에도.
나 자신을 감당하기가 어렵다. 나 자신조차 내가 버거운데, 다들 나를 버거워할 것이다. 이걸 들키면 다들 나를 떠나갈 것이다. 얼마 안 된 친구인 이시연도, 그리고 다른 아이들도.
어쩌다 생각이 여기까지 왔지? 정말 어이가 없다. 나는 적당히라는 걸 모르나? 딴생각을 해도 정도가 있지. 심해도 너무 심하다. 이제는 수업에 집중도 못하나 보다.
나는 정말 왜 이럴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