익숙한 알람 소리에 나는 눈을 떴다. 오지 않았으면 했던 날이 왔다. 새 학기의 시작. 누군가는 설레고, 누군가는 우울할 날이다. 나는 따지자면 후자에 속한다. 단순히 방학이 끝나서 슬픈 것이 아니라, 새로운 것을 맞이하는 게 두려운 것이다. 익숙하지 않은 것은 언제나 두렵다. 가령 이미 몇 번이나 경험해 본 변화라고 하더라도.
무거운 몸을 침대에서 억지로 일으켜 방 문을 열었다. 슬리퍼를 질질 끌고 식탁 앞에 앉자, 아빠가 달걀 샌드위치가 담긴 접시를 내 앞으로 밀었다.
“우리 공주님, 일어났어요?”
아빠가 나에게 인사를 건넸다.
“네.”
아빠는 날 아직도 저런 식으로 부른다. 난 이제 중학교 3학년인데도. 그러나 지적할 생각은 없다. 들을 때 기분이 썩 좋진 않지만, 괜히 지적했다가 싸우게 될 수도 있으니 그냥 참는 게 나을 것이다.
”아린아, 새 학년 첫 날인데 긴장되진 않아?“
엄마가 내 옆에 앉으며 말했다.
“응. 괜찮아.”
이렇게 답했지만 내 머릿속은 걱정으로 가득하다. 이 걱정엔 수백 가지 원인이 있다. 그 중 가장 큰 이유를 꼽으라면 아마 반 배정 결과가 처참했기 때문일 것이다. 이번 반에는 그나마 친한 아이조차 없을 뿐더러, 학교에서 막 살기로 가장 유명한 애가 있다.
‘박유진.’
날 직접적으로 괴롭힌 적은 없지만, 나의 친구들을 건드린 적이 많다. 자기 눈에 조금이라도 약해보이면 시비를 걸고, 앞에서 대놓고 욕을 하며 물건을 훔쳐가는 등의 나쁜 행위를 일삼는다. 선생님께도 매 수업마다 반항을 하고 예의 없는 태도를 보인다.
같은 반이 되어 본적은 없다. 하지만 익히 들어 알고 있다. 물론 나에게 직접적인 폭력을 가하진 않을 것이다. 다른 노는 애들이 날 건드릴 때마다 난리를 쳤으니 소문이 났을 것이다. 뭐, 사실 박유진이 날 괴롭혀도 상관은 없다. 때리진 않을 테고, 시비를 걸거나 욕을 하면 무시하면 되고, 물건을 훔쳐가면 선생님의 도움을 받아 돌려받으면 된다. 그러니까 괜찮다. 정말로.
문제가 되는 건 그 애가 있으면 수업에 방해가 된다는 점이다. 그런 애가 반에 하나라도 있으면 수업 진행 속도가 심각하게 저하된다. 선생님들의 짜증 섞인 목소리를 항상 들어야 하는 건 덤이다. 아, 별로다.
나는 아침식사를 마치고 학교에 갈 준비를 마저 했다. 세수를 하고, 양치를 하고, 교복을 입었다. 준비를 마치니 어느새 학교에 갈 시간이 되어 있었다. 나는 문을 열고 나와 학교로 출발했다.
***
교실 문을 열자마자 시끌벅적하면서 어색한 공기가 느껴졌다. 겉으로는 화기애애해 보이지만 속으로는 서로를 가늠해보느라 바쁜 아이들이 잔뜩 있었다. 간혹 원래부터 친해서 정말로 화기애애한 아이들도 있었지만, 정말 조금이었다.
나는 다른 아이들에게 시선을 돌리지 않고 자리에 앉아 책을 읽었다. 다행히 자리 배치표를 봤을때 박유진의 자리와 내 자리는 멀었다. 이러면 신경쓸 일이 적어지니 좋다.
책을 한 장, 한 장, 넘기다 보니 금방 아침 조회 시간이 되었다. 하지만 종이 친지 한참이 지났는데도 담임 선생님께서는 들어오시지 않았다. 아이들이 수군거리는 소리가 들린다. 그러던 중, 교실 앞 문이 열렸다.
‘아.‘
소문이 정말 좋지 않은 선생님이셨다. 중학교의 소문은 믿을 게 못 된다지만 그래도 신경이 쓰이는 건 어쩔 수 없다. 아이들이 또 작게 수군거린다. 올해는 망했네 어쩌네. 하, 시끄러워. 불안하다. 올해 같은 반 아이들은 너무 시끄러운 것 같아서. 그리고 담임 선생님께서 혹시나 소문처럼 안 좋은 분이실까봐 불안하다. 불안해서 숨이 조금 가빠지고, 가슴이 조금씩 조여온다. 불편하다. 빨리 개학식을 끝내고 집에 보내줬으면 좋겠다.
***
“와, 설마설마 했는데 진짜 이게 끝이네.”
“교장이 귀찮았나보지 뭐. 일찍 끝나서 좋네.”
모르는 애들의 대화 내용이 들렸다.
주먹구구로 돌아가는 학교답게 개학식이 예정보다 한 시간이나 일찍 끝났다. 예정된 수업은 없었다. 그렇게 우리는 집으로 보내졌다.
나는 집에 도착하자 마자 침대에 누웠다. 오늘은 학원도 없으니, 그냥 이대로 쉬면 되겠다. 아무 생각도, 걱정도 하지 말고 편안하게. 머리를 비우자. 과도한 생각은 고통을 줄 뿐이다. 머리를 비우자. 비우자.
“하•••.”
결국 오늘도 머리를 비우는 데 실패했다. 나는 또 불안에 휩쓸리고 말았다. 학교 생활에 대한 불안, 나아가 대학에 대한 불안, 더 나아가 인생 전체에 대한 불안이 닥쳐온다. 오늘 약을 안 먹었던가. 아니다, 분명히 먹었다. 그런데도 이러네. 왜 이러는 거지? 난 언제까지 이렇게 불안해해야 하는 거지? 이것마저도 불안하다. 어떡해. 그냥 잠이나 들어버리고 싶다. 하지만 불안해서 잠도 오지 않는다.
난 그렇게 한참을 더 누워있다가, 그냥 문제집을 폈다. 자지도 못하는데 계속 누워만 있을 바엔 공부라도 하는 게 낫지. 나는 문제를 푸는데 집중하려고 했다. 아, 또 실패했다. 문제집 위의 글씨가 전혀 눈에 들어오지 않는다. 풀지도 못하겠다. 하, 불안장애는 참 고통스러운 병이다. 아무것도 못하게 만들다니.
나는 또 멍하니 휴대폰을 켰다. 그냥 sns에 올라온 글들을 훑어보았다. 불안하고 고통스러울 때는 이런 싸구려 도파민을 찾게 된다. 해롭다는 걸 알면서도. 무력감이 온 몸을 휩쓸고 지나간다. 내가 편하게 할 수 있는 건 이것밖에 없구나. 날 해칠 유희거리나 뒤적거리기. 내일은 달라질 수 있을까. 빨리 내일이라도 오면 좋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