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장-아린의 이야기(4)

by 꿈그린

어젯밤에도 잠을 설쳤다. 학원에서 했던 생각이 다시 떠올라 도저히 잠을 청할 수가 없었다. 아, 학교에서 또 졸겠네. 안 되는데. 수업시간에 조는 건 용납할 수 없는 행동이다. 그래서는 안 된다.

커피라도 마셔볼까. 마셔봐야겠다. 나는 엄마가 마시듯이 우유에 커피 원액을 조금 부어 마셨다. 아, 쓰다. 먹지 못할 정도는 아니지만 쓴맛이 은은하게 깔려있어 기분이 나쁘다. 요즘 내 또래 애들은 다들 커피를 마시던데, 이런 걸 어떻게 마시는 거지. 도저히 못 마시겠다.

나는 그냥 마시던 커피를 싱크대에 버렸다. 아깝지만 어쩔 수 없지.

나는 나머지 준비를 마치고 학교로 향했다. 학교에 도착해 내 자리에 앉는 순간 다시 한번 다짐했다. 절대 졸면 안 된다.

1교시, 수학. 졸지 않았다.

2교시, 체육. 졸 수 없었다.

3교시, 국어. 졸지 않았다.

4교시, 영어. 고비다.

졸지 말아야 한다. 정신을 차려야 한다. 물을 마셔도 보고, 손등을 꼬집어 비틀어도 본다. 손등에 멍이 들었다. 하지만 잠이 깨지 않는다. 눈을 감았다 뜬다. 5분이 지나있다. 다시 눈을 감았다 뜬다. 10분이 지나있다. 또다시 눈을 감았다 뜬다. 점심시간을 알리는 종이 쳤다. 결국 자버리고 말았다. 불안장애 약 부작용과 잠 설침이 합쳐진 결과이다.

하, 난 왜 이러는 거지. 잠 하나 조절 못하고. 약 부작용과 잠 설침도 결국 핑계 아닐까? 그냥 내가 내 컨디션 관리 하나 못해서 생긴 문제 아닐까. 불안하다. 내 컨디션도 관리 못하는데, 나중에 회사는 어떻게 가려고 그러지? 또 생각이 걷잡을 수 없이 뻗어나간다. 싫다. 밥을 먹고 오면 좀 나아져있을까.

음, 아니다. 나아지지 않았다. 똑같다. 불안하고, 졸리다. 슬슬 이 감각은 익숙해졌지만, 그렇다고 해서 고통스럽지 않은 것은 아니다. 몇 번을 겪어도 고통스러운 건 매한가지다. 손이 떨린다. 싫다.

다시 수업 시작을 알리는 종이 쳤다. 이제 졸리긴 해도 졸 정도는 아니다. 생각이 많아서 자려고 해도 잘 수 없을 것이다. 하지만 수업을 똑바로 들을 수는 없을 것이다. 머릿속에 가득한 생각으로 인해 수업 내용이 귀에 들어오지 않을 것이다.

5교시, 사회. 수업 내용이 귀에 들어오지 않는다.

6교시, 과학. 마찬가지이다.

아, 별로다. 사회랑 과학은 학원에 다니지도 않는데, 큰일이다. 집에 가서 공부해야지. 그럴 기력이 남아있을지는 모르겠지만.

***

“아린아, 무슨 생각해?”

이시연이 물었다. 아, 이번엔 그냥 멍 때린 건데.

“그냥, 좀 피곤해서.”

“너도 그렇구나. 나도 요즘 피곤하더라. 미술과 공부를 둘 다 하려다 보니 힘들어.“

“너 미술해?”

내가 물었다. 입시미술, 힘들만하다.

“응, 나 입시미술해.“

“힘들겠네.”

“맞아, 부모님 반대도 심했어.”

“진짜 힘들겠다.”

“맞아 맞아. 그런 말도 있잖아. 입시미술은 정신병자 양성소다.“

음? 정신병자. 정신병자. 정신병자. 왜 그런 단어를 막 쓰지. 정신병자라는 단어는 본질적으로는 그냥 환자라는 단어와 다를 바가 없다. 하지만 심각하게 오용된다. 나는 그 오용을 매우 싫어한다. 정신병을 보유한 입장으로서 그냥 환자 이외의 욕으로 쓰이는 상황이 싫다.

아, 오용이 아닌가? 아니다, 오용이 맞다. 입시미술이 힘들다는 걸 강조하기 위해 쓰인 표현이다. 별로다. •••, 얘 잘못은 아니지. 그렇게 오용하는 문화가 퍼진 사회가 문제지. 속으로 짜증내서 미안하네. 아무렇지 않은 척해야지.

“하하, 진짜 힘들다는 말이 많이 들리긴 해.”

“그래서 나도 정신병 걸렸어.”

•••음? 아, 별로다 진짜. 정신병이라는 단어를 장난으로 쓰는 건가? 장애를 욕으로 쓰는 것만큼 별로다. 싫다. 진짜 싫다.

“우울증. 근데 병원엔 못 갔어. 부모님께 말씀드릴 용기가 없어서.”

아, 미안하다. 진짜 미안하다. 순간적으로 정신병이란 단어를 남용하는 아이라고 의심했다. 그리고 잠깐이지만 얘를 싫어했다. 아, 정말 미안하다.

“••• 그렇구나. 말씀드리는 게 어렵긴 하지. 나도 힘들었어. 불안장애 같다고 말하기가. 지금 다니고 있는데, 그래도 말씀드리길 잘한 것 같아. 너도 힘들겠지만 한 번 용기 내서 말씀드려봐.“

미안하다. 너무 미안해서 어쩔 줄 모르겠다. 내가 싫다. 사람 말을 끝까지 듣지도 않고 사람을 판단하고, 또 싫어하다니. 어떻게 그럴 수가 있지? 나는 제대로 알지도 못하고 판단하는 사람을 싫어한다. 나는 지금 제대로 알지도 못했으면서 판단했다. 나는 그래서 지금 내가 너무 싫다.

아, 또 걷잡을 수 없이 생각이 퍼져나간다. 이렇게 생각 하나 통제 못하는 나도 싫다. 나를 싫어하는 나도 싫다. 싫어하는 게 너무 많은 나도 싫다. 보통 이렇게 싫어하는 게 많고 자기혐오가 심한가? 아닐 것이다. 내 문제다. 또 새로운 문제를 발견했네.

아, 나는 정말로 문제투성이인 아이로구나.

월요일 연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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