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1화. 링컨과 간디, 그럼에도 불구하고 존경하십니까?

위선과 진실

by 낭만적 반역자

회색인


우리는 앞선 여정에서 역사라는 밤하늘을 밝힌 위대한 별들을 만났다. 하지만 성인(聖人)들의 삶을 자세히 들여다보는 것은, 때로 눈부신 빛뿐만 아니라 그 빛이 만들어내는 어두운 그림자와 마주하는 일이기도 하다.

우리는 종종 위대함이 흠결 없는 단색(單色)의 빛일 것이라 기대하지만, 때로 진실은 그 기대를 배반하고 여러 빛과 어둠이 뒤섞인 복잡한 회색의 얼굴로 우리 앞에 나타난다.


여기 정치적, 인종적 회색의 풍경이 있다. 1963년 8월, 거대한 링컨의 석상 아래, 25만 명의 군중 앞에서 비폭력 저항의 상징인 마틴 루터 킹은 이렇게 외쳤다. “백 년 전, 한 위대한 미국인이 노예 해방령에 서명했습니다.”

그러나 킹이 ‘위대한 해방자’라 칭송했던 바로 그 링컨은, 생전에 노예제 폐지론자인 그릴리에게 보낸 공개서한에서 “제가 노예를 한 명도 해방시키지 않고 연방을 구할 수 있다면, 저는 그렇게 할 것입니다.”라고 말했다. 물론 이것이 분열된 연방을 지키기 위한 고도의 정치적 수사였다 할지라도, 링컨은 ‘인간의 자유’조차 국가의 존립을 위해 협상 테이블에 올릴 수 있었던 냉철한 현실주의자였던 것이다.


그런데 그림자는 링컨에게만 있었던 것이 아니다. 그를 칭송한 마틴 루터 킹 역시 FBI의 도청과 동료들의 회고록을 통해 확인된 수많은 혼외정사라는 도덕적 흠결과, 보스턴 대학 박사 논문의 심각한 표절 문제라는 그림자에서 자유롭지 못했다.


킹의 창의적 저항에 영감을 부여한 마하트마 간디는 또 어떠했는가. 그의 비폭력이라는 숭고한 빛 뒤편에는, ‘브라마차리아’라는 이름으로 자신의 금욕을 시험한다며 젊은 여성들과 한 침대에서 잠든 노인의 모습과, 인류의 아버지를 자처했으나 정작 큰아들 하릴랄은 알코올 중독으로 파멸하도록 내버려 둔 아버지의 비극이 그림자처럼 따라붙는다.

또한 그는 유색인으로서 백인 제국주의에 저항했지만, 동시에 남아프리카 시절에는 흑인을 경멸의 단어인 ‘카피르(Kaffir)’라 부르며 차별적 인식을 드러냈다는 비판에서도 자유롭지 못하다.


삶이 다각도였다면 각각의 각도로 삶을 평가해야 공정할 것이다. 한 인간 안에 공존하는 빛과 그림자, 우리는 이들의 삶 앞에서 쉬운 결론을 내릴 수 없다.

가령, 세상에서 가장 존경받는 종교 지도자가 나타나 링컨과 킹, 그리고 간디를 이 시대의 성인이라고 선언한다 해도, 우리는 그 선언의 권위에 기대어 그들의 삶을 무조건적으로 긍정해서는 안 된다. 그것이야말로 우리가 경계해야 할 또 다른 ‘신성모독’이자, 스스로 사유하기를 멈춘 ‘절름발이’ 신앙으로 향하는 길이기 때문이다.


실제로 지난 2015년, 프란치스코 교황은 미 의회 연설에서 링컨과 킹을 ‘위대한 미국인’으로 꼽으며 칭송했다. 물론 그 찬사는 정당할 수 있다. 그러나 최고 종교 지도자의 그 권위 있는 목소리조차, 그들의 명성을 칭송할 뿐 그 이면의 짙은 그림자에 대해서는 침묵하거나 간과할 수 있음을 우리는 직시해야 한다. 권위는 존중받아야 하지만, 진실을 가리는 장막이 되어서는 안 되기 때문이다.


이 글의 진정한 목적은 그 반대에 있다. 흠결 많은 그들의 삶은 우리에게 편안한 답을 주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고통스러운 질문을 던진다. 그들의 그림자는 그들이 외쳤던 빛마저 거짓으로 만드는가? 이들의 삶이 드러내는 거대한 모순과 위선 앞에서, 우리는 과연 무엇을 신뢰할 수 있는가? 이 질문은 ‘성인’이라 불리는 이들을 신화 속에 가두는 대신, 그 인격의 내용 전체를 정면으로 응시하라는 준엄한 요구이다.


킹의 유명한 연설 한 구절이 이 요구를 대신할 것이다. “나에게는 꿈이 있습니다. 나의 네 자녀들이 피부색이 아니라 인격에 따라 평가받는 그런 나라에 살게 되는 날이 오리라는 꿈입니다.”

그의 꿈처럼, 우리는 링컨과 간디는 물론이고 킹 자신까지도, 그들의 명성이 아니라 그 ‘인격의 내용’ 전체, 즉 그들의 빛과 그림자, 그리고 그로 인한 파멸까지를 모두 포함하여 평가해야 할 책임을 부여받았다. 그리고 이제, 그 고통스러운 평가의 법정으로 들어서야 한다.


위선의 시험대


우리가 앞서 목격한 숭고한 희생들과 달리, 링컨과 킹, 간디라는 ‘회색인’들의 적나라한 민낯은 우리의 기대에 찬물을 끼얹는다. 우리는 여기서 회의론자들이 던질 수 있는 날카롭고 정당한 반박과 정면으로 마주해야 한다. 그 이름은 다름 아닌 ‘위선’이다. 이 질문은 도저히 외면할 수 없는 무게를 지니고 있다. 그들의 숭고한 ‘사랑’이라는 메시지가, 그들 자신의 ‘흠결’이라는 행위로 인해 이미 돌이킬 수 없이 오염되고 훼손된 것은 아닌가?


이성적인 독자에게, 특히 1화의 ‘불편한 초대장’에서 초대했던 합리성을 추구하는 이들에게, 이 결론은 명확해 보인다. 메신저가 위선자라면 그 메시지는 오염되었다.

이들의 ‘사랑’은 보편적 가치가 아니라 가장 가까운 이들을 버린 선택적 이데올로기였을 뿐이다. 그러므로 이 책이 제시한 ‘증명’은 여기서 파산한다. 이것은 지극히 합리적이며 정당한 결론이다. 만약, 그 메시지가 메신저에게서 비롯된 것이라면 말이다.


하지만 과연 그러한가? 우리는 여기서 이성적 사유를 한 걸음 더 밀고 들어가야 한다. 끔찍한 인격 파탄자였던 과학자가 물리학의 위대한 법칙을 발견했다고 가정해 보자.

가령, 우리는 아이작 뉴턴이 그토록 괴팍하고 독선적이며 연금술에 집착한 인물이었다는 이유로 중력의 법칙을 거부하는가? 그렇지 않다. 우리는 뉴턴이라는 인물이 아니라 사과가 떨어지는 현상을 신뢰한다.


물론 회의론자는 여기서 날카로운 반론을 제기할 것이다. 과학의 ‘법칙’은 객관적 현상이지만, ‘사랑’은 주관적 윤리 가치이기에, 메신저의 윤리적 파탄과 분리할 수 없다고 말이다. 그 지적은 핵심을 찌른다. 두 가치의 ‘성격’은 분명히 다르다.

그러나 우리가 이 비유를 통해 말하려는 것은 그 ‘성격’이 아니라, 그 진위를 검증하는 ‘방식의 원칙’이다. 우리는 뉴턴의 ‘법칙’을 그의 인격이 아닌 ‘사과가 떨어지는 현상’이라는 독립된 현실로 검증한다.

마찬가지로, 우리는 킹과 간디의 ‘메시지(사랑)’를 그들의 인격이 아닌, ‘르 샹봉과 장기려 박사의 삶’이라는 독립된 현실로 검증해야 한다.


이제 나는 가슴 아프지만 이 책의 사상적 스승인 도스토옙스키를 이 시험대 위에 세워야 한다. 그를 향한 존경심이 깊기에, 그의 그림자를 마주하는 일은 그만큼 고통스럽다. 그는 소설 속에서는 그토록 처절하게 인류애를 절규했지만, 현실의 그는 도박 중독에 시달리고, 빚쟁이에게 쫓기며, 질투와 편협한 국수주의에 갇힌 초라한 인간이었다. 어쩌면 그는 자신이 그토록 비판했던 ‘작은 대심문관’이었을지도 모른다.


그러나 여기서 우리는 한 걸음 더 깊은 역설을 마주해야 한다. 도스토옙스키의 삶이 그토록 엉망진창이었기에, 오히려 그가 인간 내면의 가장 깊은 바닥을 그토록 생생하게 길어 올릴 수 있었던 것은 아닐까? 만약 그가 도박장의 매캐한 연기를 마시지 않았다면, 빚쟁이에게 쫓기는 공포를 몰랐다면, 시베리아 유형지의 차가운 바닥을 구르지 않았다면, 과연 로지온 라스콜니코프(『죄와 벌』의 주인공)의 영혼을 파괴하는 죄의식이나 이반 카라마조프(『카라마조프가의 형제들』의 주요 인물)의 지옥 같은 내면의 분열을 그려낼 수 있었겠는가?


그의 삶은 비루했으나, 바로 그 비루함 덕분에 우리는 깨닫는다. 그토록 모순적이고 타락한 영혼조차도 구원을 갈망할 수 있음을, 진흙탕 속에서도 연꽃은 피어날 수 있음을. 도스토옙스키는 자신이 ‘환자’였기에 누구보다 절실하게 ‘의사(사랑)’를 찾았고, 그 절실함이 인류에게 가장 강력한 구원의 서사를 선물했다. 그의 더러워진 손이 길어 올린 그 투명한 진리는, 불완전한 우리에게도 여전히 희망이 있음을 증명하는 역설적 은총이다.


반면, 이 비루함의 반대편에 진실로 위대한 영혼이 한 명 서 있다. 그는 도스토옙스키가 문학적으로도 깊은 존경을 표현한 레프 톨스토이이다. 그는 도스토옙스키와 달리 ‘백작(Count)’이라는 고귀한 신분과 모든 것을 가진 귀족이었으나, 그 작위가 주는 안락한 삶과 자신이 쓰는 숭고한 글 사이의 괴리를 견딜 수 없어했다.

그는 “진리는 말해지는 것이 아니라 살아내야 하는 것”이라 믿었기에, 백작의 지위마저 헌신짝처럼 내던지고 펜 대신 쟁기를 잡았다. 비단옷을 벗고 농부의 누더기를 걸친 채, ‘지행합일(知行合一)’을 위해 처절하게 투쟁했다.


도스토옙스키가 ‘어둠 속에서 빛을 갈구하는 자의 절규’를 들려주었다면, 톨스토이는 ‘빛을 향해 걸어가는 자의 뒷모습’을 보여주었다. 한 사람은 자신의 상처를 통해 사랑의 필요성을 증명했고, 다른 한 사람은 자신의 실천을 통해 사랑의 가능성을 증명했다. 이것은 ‘사랑’이라는 진리가 도스토옙스키나 톨스토이 같은 ‘인간’보다 더 크고 위대하다는 것을 증명한다. 도스토옙스키는 자신의 혐오를 이기지 못해 비틀거렸고, 톨스토이는 자신의 이상을 다 이루지 못해 고뇌했지만, 그들의 펜 끝과 쟁기질은 정확히 ‘사랑’이라는 북극성을 가리키고 있었다.


이 글은 킹이나 간디, 혹은 도스토옙스키와 톨스토이를 ‘사랑’이라는 가치의 ‘창조자’나 ‘원천’으로 제시한 것이 아니다. 그들은 그 가치를 가리킨 불완전하고 때로 심각하게 뒤틀린, 그러나 치열했던 ‘관찰자’이자 ‘확성기’였을 뿐이다.

그들의 위선과 고뇌는 우리에게 ‘사랑’이라는 가치가 거짓임을 증명하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그 가치가 얼마나 다루기 어렵고 강력한지를, 그리고 인간이 그것을 살아내기 위해 얼마나 처절해야 하는지를 폭로한다. 우리는 그들의 비틀거리는 발자국(인간)이 아니라, 그들의 손가락이 가리킨 곳(진리)을 보아야 한다.


그러므로 ‘회색인’들의 등장은 우리에게 ‘흠결에도 불구하고 결단하라’는 비이성적 요구를 하는 것이 아니다. 그것은 정반대이다. 그들의 위선과 역설을 딛고, 이제부터 시작될 새로운 파트 ‘사유’라는 절벽을 오르는 여정에서 ‘사랑’이라는 가치 자체의 철학적 기반이 과연 독립적이고 튼튼하게 설 수 있는지를 함께 따져보자는, 가장 이성적이고 치열한 초대의 시작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