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른 여섯, 전심 [셋째출산과 함께한 의대 1학기]

소망을 붙들지 않는 연습

by 이 길의 끝에서

36-2 전심


갑자기 누가 나를 지구 반대편 조용한 바닷가에 데려다 놓은 기분이다. 지난 5개월간 무슨 일이 있었던 건가. 내가 나이 36에 출산과 함께 의대를 시작했다니.


할 일이 분명하니 오히려 정신이 말짱해지고, 딱지 처럼 몸에 붙은 게으름이나 뚱뚱한 생각뭉치들이 우두두 떨어져 전력질주한 한 학기였다.


신생아 엄마에게 매일 적어도 3시간은 학교나 카페에서 조용히 공부할 수 있는 호사가 황송했다. 육아를 떠나 자유로운 팔 다리를 가진 시간이 몇년 만이었던가! 또 의대 수업이 정말 너무너무 재미있었다. 그 어떤 공부보다, 겉돌지 않으면서 핵심을 찌르고, 본질에 머물러 있는게 명쾌했다. 모든 배움의 순간이 하나의 축, 사람의 몸과 질병,에 모아져 있고, 매 과목이 그 배움에 겹을 더해가는게 맘에 쏘옥 들어왔다.

이 모든 고생과 시간이 내 가족과 이웃을 살게 하는데 쓰이는 것도 짜릿했고, 이제껏 배우던 클래식 음악과는 정반대의 신비에, 그리고 상승곡선의 내 점수가 나를 행복하게 했다.

출산과 의대를 동시에 시작하기로 할 땐 나름의 이유가 있었다. 일단 교칙이 입학을 한해 유예하는 것이 불가능했고, 임신과 출산 등 으로 인한 법적 권리를 수호해 주는 타이틀 IX 오피스 사람들의 도움이 있었고, 하나님이 의대와 출산을 함께 주신 것은 분명 해낼 힘도 주셨기 때문이라 생각했다.

그럼에도, 나와 남편은 당연히 재시험이나 유급을 염두에 두고있었다. 단지, 최선을 다해서 유급보다는 재시로 맞춰보자는게 개인적인 목표였다. 유급은 내년에 다시 시작해야하지만, 재시험은 방학 때 추가시험을 치고 통과하면 그대로 진행된다. 9개 과목중 재시의 기회는 2과목까지만이고, 3과목 부터는 유급인 상황.

아기를 낳은 후 8개의 과목 중, 5개의 과목에 재시 위험이 떴다. 힘들 줄은 알았지만 발등에 불이 떨어진 후로는 버리는 것의 연속이었다. 불필요한 공부방법, 습관, 루틴 모두 솎아지고 정말 남을 것만 남았을 때쯤 재시험 과목이 2개로 줄었다. 그 때가 11월 말, 학기가 10일쯤 남았을 때였다.


그대로 가면 2개로 끝나고 기적처럼 다음 학기로 넘어갈 수도 있겠다 싶었다. 그때, 대비되지 않은 곳에서 복병이 생겼다. 바로 페이션트 케어를 배우고 연습하는 비과학 과목이었다. 다른 과목들이 너무 중요하고 어렵다 보니 가장 신경을 쓰지 않고 있던 과목이고, 제일 쉬운 과목이라 아무도 낙제하지 않는 과목이었다. 찬양발표회가 있던 날, 아가를 데리고 2시간 거리를 다녀왔는데 그날 우리 모두 몸살이 났고, 그다음 월요일 아침을 혼미한 상태 그 과목 시험을 보곤 미끄러져 버렸다.


의대에 올 때, 너무 잘 해내고 싶었다. 이 나이에, 이런 기회가, 나 같은 사람에게 주어지니 정말 감사했다. 동시에 교회에서 맡겨주신 일도 할 수 있는 한 해내고 싶었다. 내게 교회 일들을 맡기신 분들은 집사님, 목사님이시지만 내게는 그것들이 하나님께 드리는 내 마음이었다. 그래서 사람들을 우리 집에 초대하는 일, 무료 바이올린 레슨을 하는 일, 크고 작은 교회 일에 내 몸을 갈았다. 근데 하필 찬양발표회를 다녀온 날 몸살이 나고, 시험이 미끄러지고, 이것 때문에 다시 처음부터 시작해야 한다는 지점이 너무 속이 황망했다.


유급이 확정된 후에도 잘 믿어지지 않았다. 그럴 거면 왜 시작하게 하셨을까? 나는 당연히 1년 후에 시작하려고 했는데? 왜 모든 게 맞아 떨어졌을까? 한 곳으로 인도해 달라고 했고, 그게 이곳이었다.


이사와 보니 내 아픈 손가락 2번에게 사랑을 넘치도록 부어주는 학교가 걸어서 가는 거리인 것, 또래 앞집 아이와 함께 가고 싶은 덕분에 1번 이가 6:50분에 기쁘게 학교버스를 타고 가는 것, 3번 이가 순해서 밤새 공부할 수 있었던 것, 엄마가 사는 도시와 내가 사는 곳에 80불짜리 왕복직항이 있는 것, 아이들이 엄마의 빈자리를 덜 느끼도록 주신 교회 친구들, 동네 친구들 모두. 공부를 하라고 하나님이 내 궁둥이를 힘껏 밀어주시는 느낌이었는데.. 그게 틀렸을까? 이번에도 내 욕심이었을까?


“하나님! 왜요?

저를 위해 고생한 남편과 친정엄마 그리고 갓난아기까지.. 우리 모두 어떤 노력을 했었는지 아시잖아요..”


아무리 내 이성이 내 상한 감정을 멱살 잡고 끌고 가려고 해도 나는 상처받은 그 자리에 머물러있었다. 찬양발표회에서의 연주를 거절했다면 난 유급하지 않았을까? 교회일을 줄였다면 내가 덜 피곤했을까? 난 하나님께 감사한 마음에 다 하고 싶었던 것뿐인데.. 내가 미련한가?


내 원망과 질문이 메아리만 칠 뿐 하나님께 답을 얻지 못하는 시간이 지났다.


새 학기가 시작되었고 나는 학교로 복귀하지 못했다. 의대에 간적 없는 것 처럼 나는 다시 애셋맘 일상으로 복귀했다. 풀액셀로 달리다 완전히 멈춘 시간이었다. 다시 아이들 도시락을 싸고, 라이드를 했다. 하루 종일 아기도 봤다. 하루는 내가 뭔가 잘못했겠지 내가 부족했던 거지 결국. 하며 나를 몰아세웠다가. 또 다른 하루는 아니야, 아무리 생각해도 이건 이럴 일이 아니었던 거 같아. 아 너무해!! 하며 삐져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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열두 정탐꾼 이야기가 나에게 왔다.


애굽을 나와 40년을 광야에서 방황하고 오랫동안 목표했던 가나안 입구에 도착했을 때, 그들은 가장 큰 두려움을 느꼈다. 이 모든게 다 소용 없어질지도 모른다는 두려움.


열두 정탐꾼 중 10명은 이 상황이 우리에게 미칠 해를 헤아렸고, 2명만이 과거에 하나님이 주신 약속같은 선언을 붙잡았다. 10명은 조금은 믿었으나 끝까지 믿지 못했고, 2명은 전심으로 끝까지 믿었다,


나는 10명의 정탐꾼처럼 조금은 믿으나 끝까지 믿지 못하고 있었다. 그러고 보면 내가 기도했던 그대로 응답을 주신 거다. 나는 최대한 빠르고 효율적으로 우수한 의사가 되려고 의대에 오게 된 것이 아니고, 나의 통제를 완전히 내려놓고 하나님께 어느 순간이든 같은 마음으로 예배하는 법을 배우러 오게 된 것일거라 하지 않았는가.


뾰족뾰족했던 억울함과 황망함 모두 일상적 소동과 일과들에 깎여 이젠 더 이상 내 마음을 찌르지 않게 되었다.


치명상을 당한 줄 알았지만

사실은 소중한 모든 것이 그대로 있다.


아이들의 건강,

남편과의 화목,

다시 오지 않을 셋째 아기와의 시간


그리고 다시 평안을 얻었다. 내게 주어진 6개월의 시간 동안 체력을 보강하고,

내 새싹 같은 아이들에게 더 큰 사랑으로 무럭무럭 건강하게 자라길 도와주다가

다시 시작하면 되는 거야.


지금의 이 예상치 못한 멈춤은 내 플랜의 실패가 아니라, 하나님이 더 깊은 신뢰로 초대하심이다. 조금은 믿었으나 끝까지는 못 믿음에서 전심으로 믿음으로.



미국으로 오게 된 사연:

https://brunch.co.kr/@melodyandscrubs/1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