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6세 아이 셋 엄마의 의대 첫 학기
입학 두 달전,
어느 목사님 설교를 일기장에 꾹꾹 눌러 적었다.
"여기로 오게 하신 건 여기에도 계시기 때문이다.
이 상황이 되게 하신 건 이 상황에도 계시기 때문이다."
"계획을 결정하셨다면
내 실패와 약함이 아무리 커도
하나님의 계획을 막을 수 없습니다.
하나님이 그렇게 결정하셨기 때문에.
하나님이 은혜 주시기로 결정하셨다면
우리의 상황이 아무리 어려워도
하나님의 은혜를 막을 수 없습니다.
때를 결정하셨다면
아무리 내 속도가 더디고 느려도
하나님이 정하신 그 때를 멈출 수 없어요
하나님이 정하셨기 때문에."
입학 한 달 전, 미국 남부로 이사하다.
아직 이름마저 낯선 도시로 가는 비행기 안이다.
우리 넷의 발자국이 닿은 적 없는 곳에 새로운 둥지를 지으러 간다.
지난 몇개월동안 혼자 기도하며 되뇌이던 말이, 제가 헷갈릴 일 없게 딱 한 길로만 인도해주세요, 였는데
정말 딱 한 군데에서 연락이 왔고 그게 이 학교였다.
7살, 4살 그리고 뱃속의 9개월된 아가를 데리고 나는 비행기를 탔다. 남편은 우리 셋이 마저 못한 모든 뒷정리를 끝내고 30시간동안을 달려오고있다.
오히려 의대에 파란불이 켜지냐 빨간불이 켜지냐 신호등을 기다릴땐 더 심플했다
신호만 읽으면 되니까.
근데 막상 파란불이 켜지고 나니
이 일이 어떻게 실현될 것인지 일일이 상상할수록 압도되었다.
베드로가 물위를 걷다가 바다에 빠졌을 때 처럼,
지금 이 일이 가능한가? 생각하다 보면 금세 턱없는 현실이 보였다.
시작해도 될까
안심해도 될까
나아가도 될까
내려놔도 될까
연약해도 괜찮을까
무너지진 않을까..
의대 오리엔테이션이 있던 날,
잠 많은 내가 새벽 4시에 눈이 번쩍 떠졌다.
며칠동안 비행기 놓치는 꿈, 비행기 티켓 바꿔야하는데 전화를 안받는 꿈을 내리꿨다.
배는 불러오고 몸은 힘든데, 새로운 집을 정리하면서 학교시작도 준비하니 이도저도 진도가 안나갔다.
어느 날은 또 너무 압도 되다보니 똑 그냥 펑 사라지고 싶었다가도
또 어느 날은 '두려울때 듣는 찬양'을 유튜브에서 틀어놓고 들으면 괜찮았다.
불안이 높은 내 인생에 이렇게 대비가 안된적이 있나싶다.
혼자 운전대만 잡으면 저절로 기도가 나온다.
내 불안, 통제를 내려놓고 하나님이 새롭게 그려나가실 리듬에 나를 다시 맡기기로 한다.
요즘 매일 붙드는 말.
"기대해도 된다 하나님의 계획은 완전하다.
안심해도 된다 하나님이 구하실 것이다.
나아가도 된다 받아주시는 사랑이 무한하다.
내려놔도 된다 하나님이 대신 짐을 지신다.
시작해도 된다 하나님이 만드신 길로 가게하신다.
무너져도 된다 거기에도 은혜가 많다.
연약해도 된다 하나님의 권능이 드러난다."
학교 3주차 어제 화요일, 셋째를 낳았고, 내일 목요일 퇴원 후, 금요일 두번째 시험을 친다. 세과목을 치는데 두과목만 일단 패스하는게 목표! 나머지 한과목을 만약 잘 못 친다면 재시하면 돼 괜찮아. 셋째도 낳아보니 너무 이쁘다. 걱정되기도 하지만, 해낼 힘도 주신다고 했으니까..
6주차가 끝났다. 이번 학기의 1/3이 지난 셈. 매일 달력 날짜를 지우는 맛이 좋다. 그동안 두개의 시험이 더 지나가고 랩 프랙티컬 하나도 지나갔다. 이번 주가 되어서야 아 이게 의대구나할만큼 해야 할 공부가 쏟아졌다. 풀로 달려도 쳐내 지지가 않았다. 근데 이게 묘하게 즐겁고 재미있었다. 같은 주제를 여러 각도로 가르쳐 주니 배움이 깊어지고 단단해진다. 의대 공부가 어렵다고는 하지만 그동안 애 둘을 맨몸으로(?) 키웠던 내게는 육아보다는 낫게 느껴진다. 또 이것이 30대의 안정감인지 당장 좀 느리고 더뎌져도 그게 그렇게 나쁘지 않다. 랩탑을 펼치고 공부 하는 내 옆에는 항상 셋째가 있다.
10주차. 1학기의 절반이 넘었다. 그동안 첫째의 첫 유치가 빠지고, 둘째가 일주일간 아팠고, 셋째는 50일이 되었다. 견딜 수 있는 하중이 점점 넘어가니 엄마로써 해오던 것들, 내 정체성과 맞닿아 있어 꼬옥 해야만 하는 것들을 놔야해서 마음이 너무 아렸다. 이미 너무 많이 놓고 있는데 이것까지? 라는 생각에.. 공부는 공부대로 재밌지만 내 새끼들이 그립다. 내 빈자리까지 메꾸려고 용쓰는 남편도 짠하고..우리 괜찮은 거겠지? 잘하고 있는 거겠지?
"엄마, is this your magical school?"
엄마가 마법학교 다니는 줄 아는 우리 딸
또 여호와를 시험하여 이르기를 "여호와께서 우리 중에 계신가 아닌가" 하였음이라 (출 17:7)
기적이 다시 일상이 되었고, 매일 새롭게 걱정되는 일이나 나를 긴장하게 하는 일들이 생긴다. 그러다보면 이번 학기를 잘 지내온것 보다 다음학기를 또 걱정하고 있다. 그럴때마다 자꾸 머리를 털어 흔들고는 마음에 되새긴다. 말씀을 보고 다시 반성한다. 이 모든걸 가능하게 하신 분이 어디로 인도하시든 그곳은 생명일 것이므로..!
그렇게 태어난 우리 셋째가 100일이 되었다. 그 흔한 등센서 없이 잘 자고 잘 먹고 찡찡 거리는 거 없이 순하게만 자란다.항상 시간도 모자라 시험날 아침까지 그야말로 우겨넣고 들어갔는데 이번 시험 전날에는 이상하게 여유가 있어서 오히려 불안했다. 근데 그 시험에서 처음으로 A를 맞았다. 감을 잡아가는것 같아 너무 기쁘다.
이제 2주만 더 하면 1학년 1학기는 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