삶의 핸들을 놓치다
36-1 통제 (1)
12월 초, 뱃속에 새로운 아기가 생긴 걸 알게 됐다. “pregnant”라고 표시된 임신테스트기를 손에 들고 남편과 나는 그대로 얼어버렸다.
아기는 한없이 예쁘고 나를 사랑으로 가득 채워주는 존재가 맞지만, 이렇게 한 달 후 있을 마지막 의대 입학시험 (MCAT)을 준비하기 전에 찾아오리라고는 예상하지 못했다. 작년에 쳐 본 MCAT 시험 점수도 있었지만, 제대로 준비해서 괜찮은 점수를 얻기 위한 재도전이었다.
첫째와 둘째는 계획을 갖고 태어난 아이들이었고, 셋째는 전혀 계획에 없었다. (더 설명하면 TMI가 될것임으로 생략). 지난 3년 반동안 고민하고 준비해온 프리메드의 마지막 스텝이 MCAT이었는데..
임신 사실을 아는 것과 동시에 폭풍 같은 입덧이 시작됐다. 내 몸상태가 공부는커녕, 8시간을 앉아 시험을 칠 수도 없어 결국 울음을 삼키며 MCAT을 캔슬했다.
아이들은 방치되고, 집안일은 쌓여갔다. 나는 어지럽고 널브러진 방 한켠에 누워 우울감에 압도되었다. 셋째랑 의대가 도저히 동시에 가능할 것 같지 않았다.
지난 3년 반 동안 나 뭘 한 걸까..?
그렇게 몇 주를 입덧과 계획변경(?)으로 괴로워 누워있던 어느 날 아침, 남편이 나를 깨웠다. 눈을 뜨니 남편의 본적 없는 황망한 얼굴이 보였다. 침대에 털썩 앉더니 내게 하는 말,
“나 laid off (정리해고) 당했어..”
사실 IT 회사에서 laid off 당했다는 이야기는 친구들 사이에서나 남편회사 동료들 사이에서 너무나 흔한 일이었다. 우리에게도 언젠가 이 순간이 올 줄 알고 있었지만, 그래도 그게 하필 지금 이라니..
그렇게 우리의 겨울이 왔다. 우리 넷의 따뜻하기만 했던 계절들을 지나 처음으로 맞는 겨울이었다.
넷이 보내던 봄날 동안 나는 수없이 다짐했었다. 계절이 돌아 다시 겨울이 오면, 좀 더 의연하고 여유롭게 지나 보내는 사람이 되기를. 또 이 계절이 지나면 봄이 오리라는 것을 잊지 않기를.
근데 그럴 수 없었다. 언제나 신실하셨던 하나님처럼 나도 신실하겠다는 다짐은 닿을 수 없는 곳까지 깊숙이 밀어 외면해 버리고, 나는 바짝 마른 나뭇가지가 되어 동굴 깊숙이 들어가 웅크려 버렸다.
하루 중 아이들의 웃음소리만 빼고
거친 시멘트색의 삼키기 힘든 하루하루가 지나갔다.
그러던 어젯밤,
여느 날처럼 입덧으로 메스꺼운 가슴을 쥐어짜다 부여잡다 겨우 잠을 자는 중이었다. 꿈에서 나는 뱃속의 아이를 잃었고, 숨이 끊어진 손바닥 보다 작은 아이를 손에 올려놓곤 불쌍한 마음에 그 아이를 어루만졌다. 한참을 쓰다듬자 그 아이가 갑자기 내 눈앞에서 살아나서 자라났다. 우리 1번이 2번이 어렸을 때보다 더 튼튼하고 토실한 모습으로 자라나 내 앞에 앉더니 나를 보며 활짝 웃었다.
'아, 이 아이를 잃었으면 어쩔 뻔했어!'
꿈이었지만 내가 그 존재를 향해 단숨에 뿜어내는 한없는 사랑과, 나의 어둠을 빛으로 단번에 꽉 채우는 생명력이 너무도 생생 했다. 꿈에서 깨어난 내게, 근본도 없고 밑도 끝도 없는 소망이 생겨났다.
아, 이 모든 괴로움이 금방 지나갈 것들이구나. 이 아이가 지금 뱃속에서 입덧으로 나를 괴롭게 하지만 어느새 자라나 내 앞에서 함박웃음을 짓겠지. 그리고 내 날들이 다시 첫 아이를 키울 때처럼 봄날의 볕으로 가득해지겠지.
그럼에도, 감사함을 세어보면
돈을 잘 벌든 못 벌든 다정하고 우리 셋만 위하는 남편이 있다.
남편이 일을 찾는 동안, 처음으로 둘이 평일 오후에 브런치를 먹을 수 있고, 같이 아이들 학교 라이드를 할 수 있다. 열심히 일을 찾느라 애쓰는 모습에 이 사람을 더 응원하게 되고, 이 전에 그 모든 걸 누리게 해 준 수고가 새삼스럽게 더 고마워졌다.
상황이 어떻든, 노래와 웃음소리로 집안을 가득 채우는 아이들이 있다.
우리를 마음 써서 도와주고, 진정으로 사랑해 주는 가족과 친구들이 있다.
(6개월 후..)
통제 (2)
우리 네식구가 캘리포니아로 이사를 왔을 때, 내가 미국 동부와 중부에서 보아왔던 것, 느끼고 결심해 왔던 것이 이곳의 삶과 잘 호환 되지 않았다.
나는 가뭄에 콩 나듯 있는 한인 의사 한 명 보려면 보험, 예약, 영어 등 여러 장애물 때문에 만나지도 못하는 수많은 사람들을 보며 의사가 되고 싶었던 건데, 여기 오니 의사가 정말 정말 많고, 막상 의사들의 삶이 보람차 보이기보단 고달파 보였다. 의사가 되고 싶어 하는 내 마음이 혹시 내 시절과 결핍이 만들어낸 판타 지였던 걸까 생각했다.
내가 제일 듣고 싶었던 말은,
의사가 되는 길은 너무 어렵지만 정말 보람 있는 일이야 라는 말이었는데, 왜 굳이 이 길을 가려해. 난 다른 일을 할 수 있었다면 이걸 하지 않았을 거야.라는 말을 더 많이 들었다.
한국인도 많고, 문화와 음식도 풍성하고, 무엇보다 아이들이 완벽한 이방인이 아닌 이곳에서, 바이올린 레슨 하면서 사는게 가족을 더 위하는 건 아닐까 싶었다.
브루스가 레이오프 당하고 내가 셋째 입덧을 하며 내 삶에 대한 통제를 완전히 잃은 후,
내가 지난 3년 반동안 해온 프리메드 공부를 잘못 결단했던걸까, 헛물을 켰던 아닐까란 생각도 조심스레 들었다.
그러다 3월에 한 의대에서 Interview invite 이 왔다.
이메일을 확인하던 순간 반짝, 하고 내 안에 작은 전구가 켜졌다.
마치 지난 3년간 확신을 갖고 가꾸던 나의 소중한 텃밭이 물난리를 겪고 망가져버렸는데, 작고 귀여운 아기호박 한 알을 발견한 것 같았다.
인터뷰 기회가 온 것만으로도 유종의 미를 거둔 것이라 생각했다. 그리고 곧 4월에 웨잇리스트에 올랐다고 했을 때도, 나는 여기까지가 아니겠는가 생각했다.
2022년에 2025년을 내 다이어리에 써놓고,
2번이를 만 4살 반까지 키우고
36세에 의대를 들어가 40에 끝내리라는 목표를 세웠었는데 나의 2025년은 의대 포기와 셋째 임신으로 내 계획과는 전혀 다른 곳으로 흘러가고 있었다.
통제를 잃은 나는 서툴지만 서툰 대로 하나님의 손에 나를 맡겼다. 내게 꼭 필요한 큰 그림이 뭔지 나보다 더 잘 아시는 존재가 나를 이끌도록 나는 천천히 힘을 뺐다. 통제를 잃었으나 그 안에서 다시 새롭게 펼쳐지는 일들에 조금씩 질서와 리듬이 생겼다.
이 리듬에 익숙해질 때쯤, 의대 합격 전화를 받았다.
처음에는, 다른 사람에게 전화해야 되는데 잘못 전화한 거 아니야? 나 맞아? 하는 마음에 믿을 수가 없었다.
의대가 안될 이유가 될 이유보다 훨씬 많았다.
나는 나이도 많고, 엠켓 점수도 높지 않고, 셋째도 임신했는데 왜 하나님이 길을 여신 걸까? 게다가 나는 이미 많은 것을 받아들인 후 새로운 리듬에 적응해 가고 있었다. 곰곰이 생각해 보다 답을 얻었다.
처음 15년 전 피바디의 문을 열어주셨을 때 나는 성공한 음악가가 될 줄만 알았다. 그런데 하나님이 길을 여실 땐 내 성공을 위해 인도하시는 게 아니라 그 시간 동안 나를 알고 하나님의 성품을 아는 시간을 보내려고 하신 것이라는 걸 배웠다.
이 상태로 의대에 가면 출산, 육아, 이사, 그리고 상상을 초월하는 공부 양이 마치 불가능한 것처럼 보인다. 그렇지만 내가 이만큼 더 통제를 잃고 하나님께 완전히 의지할 수 있는 기회가 또 어디 있겠는가?
나는 이제 하나님의 부르심은 성공한 의사가 되려는 게 아니라, 더 완전히 예배하는 삶을 배우기 위함임을 안다.
의대에서의 시간이, 가다 넘어지고 피가 날 지언정 하나님의 성품을 더욱 완전하게 경험하는 시간이 될 것을 확신한다.
캘리포니아에서 지난 1년간 좋은 사람들을 만나고,
내가 몰랐던 여러 가지 의사들의 애환을 배우고, 멋진 분들에게 많은 영감을 얻었다. 감사한 마음으로 다시 짐을 싼다.
뒤를 돌아보니 내가 어디에 있든지, 확신 없는 나에게 의사들을 Shadowing 할 기회를 잡아준 던이 있었고,
켄터키에서는 내게 온라인 프리메드 코스를 소개해준 혜리가 있었고,
오클라호마에서는 나를 진심으로 응원하고 멘토가 되어준 유기화학 교수님, 그리고 그리스도인 의사의 롤모델이 되어준 빅토리아를 만났다.
그리고 이곳에서는 내 추천서를 써주시고, 모든 궁금한 것을 들어주신 닥터 쿠를 만났다.
내 발자국이 닿은 어디든 꼭 필요한 사람을 만나게 해 주셨다. 연약한 나를 세워줄 좋은 사람들을 또 만나게 될 새로운 보금자리도 기대가 된다.
이제 우리 다섯, 남부에서 다시 시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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