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독교 공인의 상징
A.D. 312년에 로마제국은 사두체제(Tetrarchy)의 혼란 속에서 단일체제를 향한 치열한 내전에 돌입하게 되었습니다. 당시 패권을 장악하려던 콘스탄티누스(Constantinus)는 로마제국의 황제를 스스로 자처하던 정적인 막센티우스(Maxentius)와 로마 북쪽 테베레 강의 밀비우스 다리에서, 로마제국의 운명을 건 전투를 치르게 되었습니다. 사실 이 전투는 정치적 관점에서는 제국의 패권을 결정짓는 중요한 권력투쟁이었으며, 종교적 관점에서는 기독교의 지형을 근본적으로 바꾸는 역사적 분수령이 되었습니다.
그런데 역사학자 유세비우스(Eusebius: A.D. 263-339)가 저술한 “콘스탄티누스의 생애(Vita Constantini)”라는 책에 따르면, 콘스탄티누스는 밀비우스 다리 전투가 발발하기직전에 꿈에서 신비로운 환상을 보았다고 기록되어 있습니다. 즉, 하늘에서 빛나는 십자가와 함께 “이 표징으로 네가 승리하리라(In hoc signo vinces)”라는 음성을 들었다는 것입니다. 콘스탄티누스는 즉시 환상에서 본 표징인 그리스어 ΧΡΙΣΤΟΣ(크리스토스: 그리스도)의 첫 두 글자인 X(카이/키)와 P(로)를 겹친 문양으로 군기(vexillum)를 제작하였는데, 이것이 바로 라바룸(Labarum)이라는 것입니다. 이러한 라바룸은 “키로/카이로”라고 발음하며, 이는 바로 그리스도를 상징하고 있습니다.
콘스탄티누스는 이러한 라바룸 군기를 앞세워 밀비우스 다리 전투에 임하였고, 결국 승리하여 로마제국의 황제로 등극하였습니다. 마치 신화처럼 극적인 승리로 인해서, 로마제국은 라바룸을 불패와 승리의 상징으로 인식하게 되었습니다. 나아가서, 이러한 라바룸을 앞세운 승리는 300여 년이라는 오랜 시간 동안 지속되어 온 로마제국의 기독교 박해의 시대를 종식시킨 결정적인 전기가 되었습니다. 따라서 라바룸은 지하세계에 숨어있던 기독교를 로마제국의 공적 영역으로 진입시킨 실체적 표상이라 할 수 있습니다.
결론적으로, A.D. 313년에 콘스탄티누스는 밀라노 칙령으로 기독교 공인을 선포하였는데, 이는 곧 불법적인 종교였던 기독교를 합법적인 종교로 인정한 것을 의미합니다. 즉, 로마제국은 기독교 박해에서 타종교와 공존으로 근본적인 종교정책의 변화를 가져오게 되었습니다. 따라서 라바룸은 이처럼 초기 기독교 300여 년 고난의 역사를 종식시키고, 기독교 공인시대를 열었음을 증거하는 역사적 상징이라 하겠습니다.
주1) 고대 로마의 사두체제(Tetrarchy)는 위기를 극복하고자 디오클레티아누스 황제가 A.D. 293년에 도입한 4인 분할통치시스템으로서, 로마제국을 동·서로 나누고 각 구역에 정제(Augustus)와 부제(Caesar)를 두어 국방과 통치 효율을 높이고 황제의 계승 문제를 해결하려 했으나, 20년간 유지되다 내전으로 붕괴되었습니다.
주2) 콘스탄티누스의 아내 파우스타의 오빠가 막센티우스이며, 막센티우스의 아버지인 막시미아누스는 사두체제하에서 로마제국 서방의 황제(정제)였습니다.
주3) 참고로, 우리는 가톨릭교회(보편교회)에서 X와 P를 겹친 라바룸을 흔히 볼 수 있는데, 이를 군부대 내 판매점인 충성마트를 의미하는 PX(Post eXchange의 약자)라고 말하는 실수를 하지 않길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