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삶의 품위를 지키는 직관력
우리는 너무 쉽게 욕망이 문제인 것처럼 말한다.
더 가지려는 마음, 더 빨리 가고 싶어 하는 태도, 남들보다 앞서고 싶은 경쟁심이 사회를 병들게 했다고 말한다. 그러나 정말 욕망 그 자체가 문제일까. 아니면 그 욕망을 어떻게 설명하고, 어떻게 합리화해 왔는지가 문제였을까.
욕망은 무엇을 가지거나 이루고자 하는 간절한 마음이며, 인간의 행동을 이끄는 자연스러운 동인이다. 잘 먹고 편히 살고 싶고, 인정받고 싶고, 더 나은 삶을 꿈꾸는 마음은 잘못이 아니다. 문제는 욕망이 탐욕의 경계를 넘을 때, 그리고 자신의 욕망을 채우기 위해 타인의 욕망과 삶을 손상시키는 단계에 이를 때 시작된다.
성과를 냈다는 이유로,
성공했다는 이유로,
남들보다 먼저 도착했다는 이유로
그 과정의 불의가 묻히고 정당화된다면 어떤 사회가 되는가.
이때부터 욕망은 개인의 내면에 머무르지 않는다.
사회가 욕망을 부추기고, 조직이 욕망을 요구하며, 미디어는 욕망을 ‘성공’이라는 언어로 포장한다. 실적과 결과가 능력의 기준이 되면서, 양심과 정의를 접어둔 성과가 오히려 유능함으로 인정받는다.
욕심을 부리지 않으면 어딘가 모자라거나 무능한 사람처럼 취급되고, 해서는 안 되는 일 앞에서 멈춰서는 사람은 원하는 것을 가질 수 없는 존재로 밀려난다. 타인의 욕망을 존중하면서 자신의 욕망을 질서 있게 이루는 사회를 꿈꾸는 것이 과연 과한 욕심일까.
“다들 빨리 가는데 원칙 지키다간 근처에도 못 간다.”
“이상만으로는 안 된다. 현실을 직시하라.”
“물이 너무 맑으면 고기가 살지 못한다.”
이런 말들은 과정을 가볍게 무시해도 된다는 신호가 되고, 적당한 불의와의 타협을 지혜로 포장한다. “공부만 해서 세상을 모른다”, “현실은 책에서 배운 것과 다르다”는 말로 원칙을 무시 할 것을 권하고, “업무 능력과 진급 능력은 다르다”는 표현으로 부조리한 조직 문화를 합리화한다. 관행이라는 이름 아래, 다들 그렇게 산다는 말로 불의는 일상이 된다.
개인의 욕망이 현실 인식으로 둔갑하고, 양심이 집단의 평균에 묻히는 사회에서 우리는 과연 어떤 미래를 말할 수 있을까. 부당함에 맞서지 않았는데도 부조리를 알고 있다는 이유만으로도 위협을 받는 경우가 생긴다. 다수의 불의가 개인의 정의를 묵살하는 데에는 많은 조건이 필요하지 않다.
“절이 싫으면 떠나라”는 말에는 자신들만의 논리에 순응하지 않으면 배제하겠다는 메시지가 담겨 있다. 도덕은 나약함으로 치부되고, 옳은 말을 하는 사람은 불편한 존재가 된다. 그런 분위기 속에서 사람은 스스로를 의심한다.
시대를 잘못 타고난 것은 아닌지, 자신만 이상한 것은 아닌지.
그러나 분명히 해야 할 것이 있다.
욕망이 문제가 아니라, 욕망을 채우는 부당한 방법을 정당화하려는 말이 문제다. 그렇게 한자리를 차지하고 나면, 그 과정마저 미화되고, 심지어 존경까지 받겠다는 탐욕이 뒤따른다.
욕망을 욕심으로 키워 사회적 지위를 얻은 사람들이 정의로운 말로 위선을 떠는 것을 묵인하거나 용인해서는 안 된다. 그런 사람들이 세력을 이루는 순간, 바르게 살고자 했던 이들의 좌절은 반복된다. 욕심을 부리지 않는 사람이 힘이 없는 것이 아니다. 탐욕을 능력처럼 말하는 것에 부끄러움을 모르는 시대가 됐기 때문이다.
많은 정보가 공개되는 이때에 우리는 더 날카로운 분별력을 가져야 한다. 욕망에 눈이 먼 사람이 영향력 있는 자리를 차지하지 못하도록, 그 언어를 비판적으로 들을 수 있어야 한다. 쾌락과 자기보존을 위한 욕망으로 타인의 삶을 흔드는 이들이 득세하는 세상에, 우리는 분명한 거리를 둘 필요가 있다.
이는 우리 삶의 품격을 지키는 최소한의 노력일지 모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