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쩔 수 없다고 말하면 어쩔 도리가 없어진다
조직 안에는 자주 반복되는 말들이 있다.
그 말들은 규정집이나 매뉴얼에 적혀 있지 않지만, 회의실과 복도, 메신저와 술자리에서 자연스럽게 공유된다. “그게 말이 되나” 싶은 순간, 먼저 튀어나와 판단을 멈추게 하는 말들이다.
이 말들은 명령처럼 들리지 않는다. 조언처럼, 현실 인식처럼, 경험에서 우러난 충고처럼 들린다. 그래서 더 강력하다. 조직은 어쩌면 규칙보다 먼저 말에 의해 움직이는 공간이기 때문이다.
조직에서 가장 자주 들리는 말 가운데 하나는 “원칙대로 하자”이다.
그러나 이 말은 정작 원칙을 지키자는 뜻으로 사용되지 않는 경우가 많다.
원칙은 상황에 따라, 필요에 따라 해석이 달라지고 선택적으로 호출된다.
원칙을 말하는 사람이 누구인지, 그 원칙이 누구에게 유리한지에 따라 의미가 바뀐다. 그 과정에서 원칙은 기준이 아니라 도구가 된다.
“사람이 하는 일인데.”
이 말은 문제를 덮는 데 가장 효과적인 표현이다. 부조리는 인간미나 필요성으로 포장되고, 문제 제기는 각박함이나 융통성 없음으로 되돌아온다.
이 말이 반복될수록 옳고 그름의 기준은 흐려지고, 결국 ‘불편함을 감수하는 사람’만 남는다.
“다들 그렇게 해.”
“혼자만 너무 애쓰지 마.”
이 말 앞에서 개인의 판단은 무력해진다. 책임은 집단의 평균 속으로 흐려지고, 결과에 대한 부담도 사라진다. 이쯤 되면 개인은 더 이상 선택의 주체가 아니라 관행을 따르는 한 사람이 된다. 하지 않는 사람이 오히려 문제적 존재가 된다.
“지금은 그럴 때가 아니야.”
이 말은 문제를 해결하지 않으면서도 문제 제기를 멈추게 만드는 가장 안전한 방식처럼 포장된다. ‘지금’은 늘 적절하지 않고, 그 말은 다음을 약속하지만
그 다음은 오지 않는다. 문제는 그렇게 유예되고, 유예된 문제는 일상이 된다.
“괜히 튀지 마.”
조직이 개인을 관리하는 방식은 대개 이런 말로 완성된다. 눈에 띄지 않는 것이 미덕이 되고, 그저 그런 정도의 행동이 무난함으로 해석된다. 그 순간부터 조직은 개인의 능력보다 순응하는 태도를 긍정적으로 평가한다.
이런 말들이 반복되면서 조직은 그들만의 문화를 형성한다. 그 문화는 특정한 행동을 요구하지 않아도 스스로 선을 긋게 만든다. 말하지 않아도 될 것을 먼저 계산하고, 묻지 않아도 될 이유를 찾아낸다. 그러면서 조직 내의 부당한 말이라고 여겼던 것이 자신의 말이 되기 시작한다. 처음에는 낯설고 잘못된 것이라 느껴졌던 표현들이 어느 순간 입에 붙고, 그 같은 말로 후배나 직원에게 조언을 하게 된다. 조직의 언어가 개인의 가치관을 통과해 개인의 언어로 재생산되는 순간이다.
그다음부터는 결정을 미루는 표현이 늘어나고, 옳다고 생각하는 말을 어떻게 말해야 덜 위험한 지부터 계산하게 된다. 말의 기준은 진실이나 신념이 아니라, 조직 안에서 살아남는 방식으로 바뀐다.
이 과정은 대개 악의 없이 진행된다. 누군가는 살아남기 위해, 누군가는 갈등을 피하기 위해, 누군가는 조직을 지키기 위해 처음 품었던 생각을 말하지 않고, 조직에서 길들여진 말을 반복한다. 그러면서 "나 혼자서는 어쩔 수 없다"고 변명한다. 그러나 그것이 쌓이면 조직은 생각하지 않아도 되는 공간이 되고, 구성원은 판단을 위임한 존재가 된다.
그렇다면 이런 부당한 조직의 말 앞에서 우리는 무엇을 할 수 있을까.
언제나 맞서 싸울 수는 없다. 큰 목소리로 고발하는 것이 최선도 아니다.
최소한, 그 말에 동조하지 않는 선택은 가능하다.
듣고 반응하지 않는 것만으로도 조직이나 사회는 이를 적극적인 동의로 오판하거나 포장하려 한다. 그렇기에 가능하다면 질문의 형태로 되묻고, 침묵을 선택하더라도 그 순간 자신의 기준과 원칙을 기억해야 한다. 기록으로 남기는 것은 동조하지 않음을 행동하는 것이다.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그 부당한 말을 그대로 누군가에게 다시 건네지 않는 일이다. 조직의 언어를 개인의 언어로 무비판적으로 물려주지 않는 것.
조직은 완벽할 수 없다. 그러나 조직의 말이 개인의 생각과 가치까지 대신해 주어서는 안 된다. 조직의 말에 나를 내맡기는 순간, 나는 더 이상 판단하지 않는 사람이 될 수도 있다.
그것을 경계하는 것.
어쩌면 그것이 조직 안에서 내가 할 수 있는 최소한의 현실적인 저항일지도 모른다.
물론 가능하다면, 잘못된 말에 대해 “원칙에 어긋난다”라고 분명히 말하고 개선을 요구하는 것이 가장 바람직할 것이다. 다만 그 결과를 감당할 각오가 되어 있다면. 그러나 대개의 경우 “모난 돌이 정 맞는다”는 비판에서 자유롭지 못할 것이다. 그러므로 조직이 아무렇지 않게 사용하는 부당한 말 앞에서 우리는 더 진중하고 지혜로울 필요가 있다. 그것이 나를 지키고, 조직을 조금씩 건강하게 바꿔나가는
방법일 것이다.